행복한 착각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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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10
2007-05-09 창세기 29:21-35 행복한 착각
31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하나님은 택한 자녀를 골라 고난과 축복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 ‘절대치’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절대치의 고난....절대치는 원점에서의 거리를 뜻합니다.
몇 주 전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가진 목자 모임에서
내 차례에 앞서 발언하신 목자님들 중에
자녀 고난이 큰 목자님 몇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내 고난을 생각해보니
그 분들의 고난이 위치한 자녀의 축이 아닌
재물의 축, 같은 거리에 찍혀 있는 내 고난의 점이 보였습니다.
방향만 다르지 크기가 같은 개념, 이게 절대치의 의미 아닐까...
오늘 본문의 레아와 라헬에게서, 공평하신 하나님과
모든 일을 태초에 정하신 주권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오신 하나님의 주권에 경외함을 갖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방향을 생각하고 好, 不好를 선택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각자 믿음의 분량만큼의 거리에
찍어 놓은 고난의 점 속에 축복의 점을 감춰 놓으셨는데
우리는 고난의 점을 지나야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에 다다르게 된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 아닐까.....행복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크기를 인간의 자로 재려 하지만
하나님의 자로는 아무리 작은 눈금으로도 잴 수 정도로 작아서
각자의 고난은 다 같은 크기이며 고난이 곧 축복이기에
누구나 같은 크기의 축복을 향유하면서도
지금 가는 길이 끝나면 행복의 파랑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행복한 착각 속에 사는 게 인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시시껍적한 것’이라는 목사님 말씀이 이해됩니다.
‘고난은 축복’이라는 말씀에 감동했던 우리들교회 첫 출석 이후
‘고난은 축복의 통로’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고난을 받아들이다가
오늘 본문에서 절대치의 고난을 묵상하며
고난은 진정한 축복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7년 씩 속으며 고난의 여정을 걸어가는 야곱을 보며
나의 지난 7년과 앞으로의 7년이
진정한 축복의 길이었음을 깨닫고
또한 축복이 될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