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신명기 4:1-14)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순간까지 대를 이어 이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행함으로 믿음의 본을 보이며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입으로만 가르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하는 가르침 말입니다. 그런데 내 맘대로 하는 행함이 아니고 반드시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듣고 준행하라', '지키라', '지켜 행하라', '스스로 삼가라', '마음을 힘써 지키라'(목도한 일을 잊지마라, 마음에 새겨두라), '알게 하라', '배우며 가르치게 하려 함이다',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라는 말들이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들었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가르칩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물고 빨고 만져보며 배우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시청각 교육이 가능해집니다. 조금 더 성숙해지면 읽기 교재만으로도 교육이 가능한 것을 생각해보면 모세가 광야 2세대들을 데리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전쟁에 두 번 이긴 후에(온 몸으로 체험해보게 한 후에, 목도한 후에) 이제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합니다. 광야 2세대들이 두 번의 전쟁을 통해 성숙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65279;#65279;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문득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광야 2세대만 가나안에 입성시켜야 하는 입장에서 모세가 그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며 얼마나 불안했을 것이 공감됩니다. 사람은 보고 배운데로 행하는데, 광야 2세대이긴 하지만 광야 1세대가 하나님께 불순종 하는 것을 보았고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하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하며 사는 본을 본적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진정한 신앙으로 따지면 믿음의 1세대로 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당대 신앙으로 본디 배운 것도 없는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두렵건대 두렵건대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모태신앙, 3, 4, 5대 신앙이 중요한 것 같아 부럽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책이 생각난 것은 자라면서 '나는 커서 엄마처럼 되지 않을꺼야.'하며 컸지만 결국 엄마의 성정을, 조상의 성정을 닮아 그대로 행하는 부분이 많음을 우리들교회에 와서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엄마 거의 고아처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질이 고생만하다가 돈 한 푼 없이 스무살에 결혼 하여 갖은 시집살이 격고 아이들 셋 키우며 무학이라 여자의 몸으로 수치스러운 육체 노동밖에 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열등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부던히 애쓰셨지만 남편과 자식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밖으로 밖으로 도셨습니다. 황혼 이혼을 하신 후에는 '내가 너희때문에 어떻게 살았는데~'가 주제가 였고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할 때면 어마어마 했습니다. 열등감과 화와 분노와 원망과 생색이 뒤엉켜 아빠 얘기가 나올 때면 '갈아마셔도 모자란다'고 했다가 다음 날에는 '그래도 너희에게는 아빠니 잘 해라~'는 말씀을 하시니 도무지 설득 되지도 않고 저까지 정서적으로 불안증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우리 교육시키며 사는 것이 힘들었노라 생색을 내셨지만 제 입장에서는 쉬는 날이면 우리와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한주동안 힘들었는데 집구석에서 있어야 하냐며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신 엄마였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엄마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부재중 아빠와 부재중 엄마로써 나에겐 도깨비 방망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신발 나와라 뚝딱 하면 신발 사주고 바지 나와라 뚝딱 하면 바지 사주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어려운 친정과 후진 상고 출신에 전문대에서 4년제로 편입한 학벌이 열등감이 되어 열등감을 감추고자 대학원도 진학하고 각 종 연수에서 열심에 열심을 내어 상을 받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나의 아이는 하나님의 상급, 나의 기쁨, 나의 기업이 아니라 족쇄로 여겼었습니다. 반짝 반짝 빛나 예쁘긴 하지만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은빛 족쇄... 내 시간과 계획이 너무 귀해 누가 그 시간을 침범하면 혈기가 올라와 참을 수가 없고..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도 이 시간이면 뭐를 할텐데 하며 아까워 하고.. 도무지 마음에 여유가 없이 늘 뭔가에 쫓기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상처가 많고 열등감, 비교의식, 피해의식, 피해망상, 인정중독, 애정결핍 등으로 똘똘 뭉쳐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 뜻대로 안 되면 폭풍혈기가 올라오고.. 강한 자 앞에서는 억눌렸다가 약자에게 퍼붓는.. 거기다 친할머니가 큰 아버지가 자신의 뜻을 어기고 서울로 올라가시겠다고 했을 때 농약을 드시고 자살하셨고.. 아빠는 한국에 정착하지 못 하시고 중동지역으로 일을 나가셨습니다.. 마치 향수병에 걸린 사람처럼.. 그곳에서 외로우셨을 텐데도 한국에 조금 있다 보면 벌이가 그곳이 더 낫다며 나가셨습니다.. 엄마는 우리에게 아빠에게 힘들어도 한국에서 같이 살자고 매달렸찌만 아빠가 뿌리치고 나간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우리가 어렸을 때 아빠가 힘들면 고아원에 갔다줘버려 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어서 아빠에게 버림 받은 느낌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아마 이런 저런 모든 조상의 저주가 보태져서 인지 내 맘대로 안 되면, 수치스럽다, 힘들다 느껴지면 도망가고 싶고 죽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하는 충동을 너무도 극심하게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듣고 또 들어 오면서.. 말씀을 반복해 듣고 나누는 구조속에 있으면서 관계속에서 늘 전투태세로 '누가 나 건드리기만 해봐~', '다 내 맘대로 할거야~' 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이제는 나도 들은 것을 준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자식이 있어도 이기적으로 오직 나의 유익만을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듣고 들은 것을 하나씩이라도 준행하여 아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내 속에 끊어내야 할 죄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 넘어지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가 아니라 내 맘대로 하려고 하고 어쩔때는 가르침을 받는 것도 거부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속으로 들어가고 규례와 법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고무줄에 시속 50Km로 돌진하는 것 같아 늘 튕겨져 나오는 저이지만 100에서 50으로 줄은 것을 감사하며 혈기를 줄이고 남편을 무시하지 않고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가는 삶을 살아 나의 자녀가 나는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거야 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나도 엄마, 아빠처럼 살다가 천국가고 싶어 하고 천국에 소망을 둘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죽을 때에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라고 떳떳이 말 할 수 있도록 날마다 나의 죄를 보고 나의 죄를 고백하고 가야할텐데 하고 슬쩍 걱정이 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할 수 없지만, 믿음의 공동체가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붙어만 있으면.. 내 자녀를 붙어 있게 할 수만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을 믿고 붙어 있게만 해주시라고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