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1-3:11까지 묵상하면서 가나안은 요단의 서편인데 왜 요단의 동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을 취하게 하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목사님 창세기 설교를 듣고 있는데 어제 들은 설교의 본문이 창세기 15:12-21절 이었습니다. 거기서 뭔가 감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횃불언약을 체결하시는데 15장 17-21절 말씀을 보면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모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이것은 에서와 롯에게 주신 기업을 지켜주시기 위해 에서 자손의 땅과 모압과 암몬 족속의 땅을 괴롭게도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때 왜 요단강 동편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 하여 광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음을, 모세의 혈기를, 가나안을 강 하나 차이로 눈앞에 두고도 현재의 이익에 눈이 멀어 머무르겠다고 할 백성이 있을 것(인간의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너무 잘 아셨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신실한 하나님의 종 모세의 혈기를 만져주지 않으셔서 가나인에 입성시키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궁금해서 톰슨 주석을 찾아 보았습니다.
톰슨 주석에 보니 모세의 가나안 입성을 불허 하신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공로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과, 둘 째, 단 한 번의 경거 망동한 행동(반석을 두 번 내려친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은 모세를 가나안 입성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신세대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에 반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를 생생히 교훈하고 있다는 사실과, 셋 째, '율법'으로 상징되는 모세의 제외를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에 대한 율법의 한계성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요단 동편 땅의 정복과 소유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줌으로써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 신세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향후 전개될 가나안 정복 역사의 뚜렷한 전조를 보여 줌으로써 죽음을 앞둔 모세에게 마음의 위로와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이 설명들을 읽는데 목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인 '하나님이 만세전에 택하셨다'는 말이 화~악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도 치밀하고 세밀하게 다 알고 계셔서 하나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에서 벗어난 것이 없으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들으며 큐티하고 목장에서 나누고 가는데도 질기게 변하지 않는 나의 진펄과 개펄인 이기심,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등도 하나님이 쓰실 곳이 있어서 남겨두시는 것이 아닌가, 변하는 것 같지 않는 남편과 시댁도 하나님의 때에 정복하게 해주실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지난 주부터 여섯 살짜리 아들을 태권도장에 적응시키는 중입니다. 내년 삼월에 복직하면 시어머니가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 가고 오고 하셔야 하는데 하원시간이 일러서 태권도장에 복직 전에 적응시키기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악 때문에 아들은 새로운 환경에 또래보다 적응속도가 많이 느리고 저와 떨어지는 것도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장에 유치원 단짝(?) 친구와 같이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아들 친구는 바로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제 아들은 아직도 구경만 하고 싶다며 참여하지 않고 혼자 한 시간을 앉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혈기가 올라왔지만 목자님이 잘 인도해주어 혈기를 가라앉히고 내가 잘 못 키운 댓가라 생각하며 태권도장 문밖에서 기다려주는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라 자기도 따라가 본다고 하길래 좀 망설여지기는 했는데 아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좋다고 했고 그래서 같이 태권도차에서 내리는 아들을 따라 태권도장으로 올라가 문 앞에서 둘이 같이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과 수업에 참여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제 왜 저러냐?'며 '문제가 있다'고 하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 아이들이 다 똑같겠어~ 그냥 인내하며 기다려줘야지'라고 했습니다.(이것도 남편 입장에서는 재수없었겠죠?!) 우리들교회에 와서 아들의 소심함과 분리불안(?)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해석이 되었지만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있는 남편과 그런 것을 나누려면 벽을 마주한 것 같아 답답함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결론으로 아들이 수고하는 거다 라는 이야기가 먹히지 않으니 말입니다. (사실 속에서는 당신이 교회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어서 영적으로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니 아들이 수고하는거라며 남편 탓을 하고 있었습니다. ㅠㅠ) 그래서 슬쩍 부부목장에 나오지 않겠냐 했더니 '내가 부부목장 가면 싸움난다'고 합니다.(이건 얼마 전에도 했던 말이라 익숙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내가 다 꼬투리를 잡을 거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싸우는 거 보고 싶냐고 하기에 '싸워도 괜찮으니 오기만 와 달라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예전 반응에 비하면 많이 순해졌지만 제 속에서는 아들에게서 문제점과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는 남편이 무식(?)해 보여서 짜증이 났고 말이 안 통할 거 같아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한숨을 있는 대로 쉬니 남편이 금새 눈치채고 기분 나빠하는 게 보이는데 얼른 스탑이 안되서 남편을 외면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부부목장에서 피터지게 제대로 싸워보는 게 소원인데.. 한편으론 왜 이렇게 쉽게 교만해져 남편을 무시하고 혈기가 올라오나 제 자신을 정죄했습니다.. 말씀 듣는 사람으로써 금방 꼬리 내려야 할 것을 말입니다... 그래도 아들이 잠든 사이 말씀을 다시 묵상해보며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반드시 정복하게 하시는 신실하심을 보니 제 자신을 정죄함에서 조금 자유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속히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고 잘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나는 가나안에 못 들어 갈 것을 알면서 순종할 때 헤스본과 바산을 정복할 수 있고 내 후손이 그것을 보고 기억하여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전쟁을 해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아들이 장성하여 얻게 될 가나안의 지경을 산 꼭대기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