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가처럼 산 삶
작성자명 [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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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07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나는 아이들이 시댁의 “안 믿는” 문화에 동화되어 버릴까봐 두려웠습니다.
시아버님과 남편은 특히 큰 아이를 종손가의 장남으로
키우는 것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도 앞에 저는 두려웠고,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야곱의 어미처럼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제사가 있는 날이면 서너 살 밖에 안 되었던 아들을 제사가 시작되기 전 10시 이전에
재우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잠이 안 온다며 아들이 잠을 안 잘라치면
무서운 눈을 하고 윽박지르며 자는 척이라도 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번번이 불려나갔고, 불려나가 제사에 참여하는 아들을 보며
저는 혼자 부엌에서 거의 주문에 가까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편이 집안의 시제를 위해 결석을 시키면서까지 아들을 대동한 날에는
비가 와주기를, 아니면 가다가 차 타이어가 펑크나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내 열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주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시댁을 비판했습니다.
아빠는 참 어처구니없다, 어떻게 학교를 결석하고 그런 델 가게
하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무덤과 족보를 빼 놓고는 도대체 관심있는 게 없다,
밥상머리에서 웬 무덤과 족보라니~, 할아버지도 아빠도 지독한 분들이다...
엄만 그런 할아버지나 아빠 싫다...뭐 이런 식으로요.
시댁을 방문할 때면
할머니는 어쩜 그렇게 아들 밖에 모르시는지, 할아버지는 엄마한테 허구헌날
부엌에만 있으라고 해, 엄마가 이 집안의 식모냐 뭐냐,
할아버지 집에 오면 엄만 하루 종일 일만 한다, 아휴 너무 싫어...하며
얘들 앞에서 불평을 한 날이 많았습니다.
시댁의 전통적 문화가 너무 싫었던 나는 그들의 문화는 교양 없는 문화로
내 문화는 교양있는 문화로 은근히 몰아가며 아이들이 그것을 닮지 않도록
그물망을 쳤었습니다.
두려워서요.
우리 아이들이 시댁의 문화를 따라 갈까봐, 두려워서
리브가처럼 사건 사건마다 계락을 세웠고, 열심히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 계락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른 새에 의인 또는 판단자가 되고 있었고
남편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있었습니다.
지혜가 없었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믿음도 없었던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 제 계락이 꼭 실현되도록 간절히 기도까지 했드랬습니다.
내 열심으로 아이들을 애굽의 문화에서 떼어놓기 위해 열심을 다했고,
내게 그것은 “선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런 열심이 죄를 낳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가정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자라면서 아들은 아빠를 싫어했습니다.
엄마로부터 아빠가 부당하다는 얘기를 수없이 듣고 자란 아들은
아빠를 존경하지도 않았고 아빠와의 동일시도 거부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비판은 아들에게는
자신의 ‘터’를 부인하는 것이었을테니까요.
결과는 반목과 불화 - 혼돈이었습니다.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모에게 많은 반항을 했고,
딸은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사랑해주는 아빠를 마음놓고 사랑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죄를 보기 시작한 나는
아이들 앞에서 엄마의 죄를 말하기 시작했지만,
한참 길을 떠나버린 아이들, 특히 아들을 되돌리기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그간의 삶의
모습은 불신결혼의 결과로 내가 짊어 지고가야 할 죄의 결과물이긴 합니다.
불신결혼은 구조적으로 가족을 어렵게 하는 죄의 씨를 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갈등 속에서 통과해야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노력으로 죄를 이기려는 나의 열심은 그러한 죄의 씨가
더욱 왕성하게 자라도록 하는 거름 노릇을 했습니다.
계속되는 나의 부인과 비판은 아들과 딸이 아빠를 죽이도록 충동질 했습니다.
그러한 충동질을 눈치 챈 아빠는 거세게 나와 그런 싹을 아예
잘라버리고자 했습니다.
강경한 대치와 반목 --- 많은 부분이 내가 리브가처럼 산 삶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선물로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한 “온전하지” 못한 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무지했던 삶,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삶.
오늘 그런 삶을 회개합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