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 있는 나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으랴!
(QT본문: 신 3장 1절~ 11절)
2012-11-6 화요일.
[본문: 신 3장 1절~ 11절]
[관찰]
바산 왕 옥 정복 1~11
1. 헤스본 왕 시혼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모리 북 왕국을 향해 진격하였고,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 에드레이에서 접전하게 되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과 그 땅을 너희에게 넘겨주었으니 두려워 말라 하시며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셨다.
3. 이에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을 쳐서 왕과 백성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진멸하였다.
4. 이 곳에 있는 60개의 성읍은 높은 성벽과 문과 빗장으로 요새화되어 있었고, 이 외에도 골짜기나 하천을 중심으로 자연 발생한 개방적인 촌락들도 심히 많았다.
5. 이스라엘은 이 모든 성읍들을 진멸시키고, 각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진멸하였으며, 모든 육축과 그 성읍에서 탈취한 전리품들은 이스라엘이 소유하였다.
6. 그 때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요단강 건너편의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에 이르는 지역이었고, 취한 지역은 평원의 모든 성급과 길르앗의 온 땅, 그리고 바산의 온 땅인 살르가와 에드레이까지였다.
7. 이때 르바임 족속 중에서 남은 자는 바산 왕 옥 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으로 길이는 약 4미터였고, 그 넒이는 약 1.8미터였다.
[교훈 적용]
바산 왕 옥의 침상이 가로 1,8미터에 세로가 4미터라 하고, 또 그 성읍들의 성벽 높이가 9미터나 된다 하니, 누가 봐도 이런 곳에 사는 거인 백성들과 싸운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도저히 이길 것 같지가 않다.
이렇게 두려워할 법한 상황에 놓여있는 지도자 모세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인가?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모든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2)
그러니까, 함께 하시고, 앞서 가 싸우시며,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두려워 말라는 것이며,
또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군대와 그 땅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셨다고 하시며,
이전에 시혼 왕과 그 군대를 쳐부수고 그 성읍들과 전리품 취한 것들을 상기시키신다.
그러면 뭔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쟁도 하나님이 하시고,
그 땅은 이미 넘겨주셨다 하셨으니, 믿음이 있는 자라면 이미 내 것인데 주장하며 차지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멈칫 멈칫 주저하면, 상대가 뭐라 하겠는가? 당신 주인 맞아? 이렇게 하지 않겠는가?
당당히 내 것을 내가 차지하러 가는 것이니, 내 땅에 다른 악한 자들이 들어와 차지하고 있다면 다 쫓아내고 주인 노릇 하는 것이 맞다.
또 이미 역사를 통해 잃었던 내 땅 찾기 경험에 하나님 함께 하심으로 잘 차지하였으니 이 경험 또한 소중하다.
눈으로 보는 적들의 외모와 그 성읍들이 비록 크고 강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내 것으로 구분해 주시기만 하면, 그 하나님에 힘입어 약속의 땅들을 정복할 수 있으니, 오직 믿음의 길이다.
예수님은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2~33) 말씀하셨다.
눈 앞에 보이는 환난과 시련
그래서 미래가 불확실하고, 앞이 뚜렷이 보이지를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돌파할 것 같지 않은 암담한 현실.
이 현실은 이미 예견된 것이며, 세상 사는 동안 주어진 상황이라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길이 바로 우리 인생 길이라 주님은 이미 정의 하셨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담대하라!
왜?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으니까!
그러면 세상은 주님이 이기셨는데, 내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나 또한 주님 안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간다면, 인생 길에서 부딪치는 이런 환난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으니, 그 안에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승리하는 길은 주님과 연합하는 길 외에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주님과 연합되었을 때, 담대할 수 있으며,
주님과 연합되었을 때,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를 포함한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말한다.
이래서 졌고, 저래서 망가졌고,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고……
모두 다 안 되는 타령이다.
또 승리로 나갈 수 있는 믿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에는 “뭐 그렇게까지 하냐?”며, “신앙이 무슨 금욕주의자의 삶이냐?” 하며 다들 피해간다.
내 죄는 보는데, 진정한 회개가 없는 삶
그러니까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돌이키는 삶을 살지 못하니 실패에 실패의 연속만을 되풀이하며, 또 내 죄 보며 안주하는 삶이 바로 나의 삶이요,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한다.
내 죄보고 회개하며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사는 길은 오직 한 길 믿음의 길 외에는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길은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외로운 길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주님과 함께 사랑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누구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세상 부귀영화 누리며 사는 것보다 하나님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것이 더 귀하고 소중하며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은 저 천국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한 훈련도장으로 여기며, 이 훈련 잘 받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살 수 있어야 언제 어느 때고 찾아오는 시험 유혹 이겨낼 수 있다.
어제는 아내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였다.
십자가 이야기만 들으면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 마음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있으니,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으니 이 같은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목사님께서 기도하실 때마다 울컥 하시며, 흘리시는 눈물의 의미를 안다.
그 힘든 세월을 곁길 가지 않으시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오셨으니, 주님만 생각하면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나야 탕자생활 끝에 주님께 다시 돌아와 너무도 큰 은혜 때문에 감사하며 눈물로 살고 있지만, 목사님의 그 체험의 세월은 나와는 말도 안되게 깊으시니 감격에 감격으로 사심을 믿는다.
그 눈물의 믿음이 교회를 일으켜 세우셨다.
나는 나를 포함한 우리들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다 주님 때문에 감격하고, 주님 때문에 눈물 흘리며, 주님 때문에 감사하고, 주님 때문에 평안하며, 주님 때문에 승리하는 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시련과 환난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음이 주님과의 연합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고 강대해 보이는,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바산 왕 옥과 그 군대들을 눈 앞에 두고 두려워 떨고 있을 지도자 모세와 이스라엘을 향해, 두려워 말라 하시며, 이미 그들을 넘겨주셨다며,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승리하게 하셨던 일들을 상기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격려하시니 믿음으로 잘 감당하며 승리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세상을 감당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