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
(QT본문: 신 2장 26절~ 37절)
2012-11-5 월요일.
[본문: 신 2장 26절~ 37절]
[관찰]
화친제의 26~30
1. 교전에 앞서 모세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화친제의를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헤스본 왕 시혼. 왜?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를 쳐부수고 그 땅을 점령하게 하시려고 시혼을 완고하며 반항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egrave; 화친제의는 합법적인 전쟁이라도 될 수 있는 한 폭력과 피흘림을 피하기 위해 정하신 하나님의 규례다.
egrave; 어떤 악인이라도 처벌받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헤스본 정복 31~37
1.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왕과 그 땅을 쳐서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삼으라 명령하셨다.
2. 시혼 왕이 군대를 이끌고 나와 대적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에 맡기셨으니, 가축과 전리품을 제외한 시혼 왕은 물론 왕의 자손, 모든 군대와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 진멸되었다.
3. 그 날에 이스라엘은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읍을 정복하였고,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였던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곳 뿐이었다.
[교훈 적용]
이제 아르논 강을 건너 헤스본 왕 시혼과 그 땅을 넘겨주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진군명령에 모세는 그데못 광야에 이르러 시혼 왕에게 화친을 위한 사자를 보낸다.
우리가 당신 땅을 통과할 것이니 허락하라. 큰 길로만 가겠다. 먹을 것 마실 것은 사 먹겠다 는 내용이었지만, 시혼은 허락하지 않았다.
모세는 이렇게 전쟁을 눈 앞에 두고도 하나님의 법은 이렇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뒤에 든든히 계시니, 내 생각, 내 지혜는 멀찌감치 뒤에 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 20:15)
이는 모압 연합군과 전쟁에 앞서 두렵고 낙심이 되는 상황에 있는 여호사밧 왕을 향해 레위 사람 야하사엘이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한 말이다.
그러니까 훌륭한 작전계획과 우수한 군사력에 의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라면, 하나님의 모략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원리다.
하나님의 눈으로 전쟁을 보고 있다면,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전쟁이 생각되고,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전쟁이 진행될 것이니, 하나님께서 싸워주셔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주신다.
내 앞에 놓여진 전쟁은 무엇인가?
육의 전쟁, 영의 전쟁, 사단과의 전쟁, 유혹과의 전쟁, 욕심과의 전쟁, 인정과의 전쟁, 교만과의 전쟁, 돈과의 전쟁, 여자와의 전쟁……
이렇게 끝도 없는 전쟁 속에 놓여진 우리네 인생길이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과연 내게 이런 모든 전쟁을 이길 힘과 지혜는 있으며, 지난 과거를 돌아볼 때, 이런 계속적으로 걸어오는 전쟁에서 승리하며 승전가를 불렀던 적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목장 예배는 이런 실패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래서 실패, 저래서 실패, 너도 실패 나도 실패 우리 모두 실패 실패, 실패
실패로 가득 찬 인생만 보인다.
그러면 이길 수는 없는가?
어떻게 하면 날마다 승전가를 부르며 주님을 찬양하며 휘파람 불며 다닐 수 있을까?
성령 안에서 사는 길이다.
성령을 약속으로 주지 않으신 구약시대에도 이렇게 특별한 때에 성령에 감동된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비전을 보며 승리할 수 있었다.
다윗이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단지 물맷물 뿐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 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한 몸을 던졌으니 주의 성령에 사로잡혀 승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이 잡혀가시던 날, 예수님 눈 앞에서 3번씩이나 예수님을 저주를 해 가며 부인했던 베드로도 성령을 받자 그 무식했던 어부였던 자가 하나님 나라와 구속사를 꿰뚫는 설교로 수 천명의 군중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으니,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니, 세상이 감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일까?
성령 안에서 =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 성령충만 = 말씀충만 = 갈등충만
내가 생각하는 공식이다.
어제 우리 목장의 주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말씀이다.
그러면 먼저 하루 중에 일정한 시간을 내어 말씀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그 다음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삶의 현장에 나아가 사건이 올 때마다 말씀과 사건을 비교하여 해야 할 바를 정하고,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죄성, 그러니까 녹슨 가마와 같이 내 육신에 끈질기게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죄된 습성들과 말씀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전쟁을 한다.
아주 치열하게 전쟁을 한다. 이것이 갈등충만이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내 안의 영과 육신대로 살려고 하는 죄된 본성이 싸우는 것이다.
이때 의지가 필요하다. 훈련된 의지
육신대로가 아닌,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적 선택
이것이 쌓일 때, 갈등충만에서 말씀충만으로, 그러니까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건의 훈련을 하라 하지 않는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8)
이기고 또 이기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길이다.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나에게 말씀충만,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모든 전쟁을 물리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루가 되게 달라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법에 따르는 길이 승리하는 길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의 선조들을 돌아볼 때, 그들 모두 다 하나님의 의지하였고, 하나님께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믿음의 선조들처럼 오직 주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믿음의 뿌리를 견고히 세워가며 성령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시며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