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받지 못하는 눈물
(QT본문: 신 1장 34절~ 46절)
2012-11-3 토요일.
[본문: 신 1장 34절~ 46절]
[관찰]
출애굽 첫 세대의 가나안 입성금지 (34~39)
1.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1세대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선언하시며, 지도자 모세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하셨다.
2. 하지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그리고 출애굽 2세대는 제외되었다.
egrave;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여 약속의 땅을 밟게 될 것을 약속 받았고, 자손들도 동일한 약속을 받았다.
egrave; 여호수아에게는 담대케하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셔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하신다.
이스라엘의 경솔 (40~46)
1. 불순종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광야로 돌아가라 지시하셨다.
2. 그러자 그 동안 싸우러 못 가겠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싸우러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하셨고, 또 가지 말라는 지도자 모세의 만류에도 경솔히 무장을 하고 이길 것처럼 으스대며 적지로 달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전쟁에 무슨 승리가 있겠는가?
3. 벌떼와 같은 아모리 족속의 공격에 도망쳐 호르마까지 미치게 된 백성들
4. 결국 여호와 앞에서 통곡했지만, 대답없는 메아리 뿐인 울음소리뿐 그곳에 하나님의 위로는 없었다.
[교훈 적용]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소리 높여 슬프고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그들은 위로 받지 못했다.
회개의 눈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5:4)라 말씀하셨지만, 그들의 통곡은 자기 죄를 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오는 애통이 아니라, 실패와 이로 인한 고통 때문에 온 것이요, 자기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자기연민에서 온 슬픔이기에 그들은 결코 위로 받을 수 없었다.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열 하루 길을 40년 만에 온 그들은 호렙산에서 십계명 받고, 하나님 예배하는 규례까지 다 받았지만, 가데스바데아에서 올라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또 불순종할 구실을 찾고, 토를 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더 나아가 이런 자신들의 불신앙을 백성들에게 전염시켰으니, 급기야 하나님께서 이들의 불평을 들으신 것이다.
몹시 노하신 하나님.
이 악한 세대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선언하신다.
지도자 모세까지도 그렇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도 보통 나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는 발길을 돌려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 하신다.
크고 두려운 광야, 40년 길 광야를 지나 겨우 가나안 땅 문턱까지 왔건만, 가나안 원주민 무서워 하나님께 불순종하니 그들에게 되돌아 온 것은 혹독한 순종의 훈련, 광야생활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끔찍했던 광야생활만큼은 싫었다.
얼마나 싫었으면 그 무서워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싸우겠다 하니 혀를 내두를 정도였나 보다.
하지만, 어떡하냐?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이 이미 선포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그들이 가겠다고 하는 순종의 모습은 또 다른 불순종의 모습인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나 보다.
첫 번째 명령을 내리실 때는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며 백성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 모세가 이야기하였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겠다 하신다.
그래서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또 거역하고 교만하게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전쟁에 임했으니, 그 결과가 뻔하지 않겠는가?
아모리 족속의 벌떼와 같은 공격
그리고는 도망치는 이스라엘
참, 웃음이 절로 난다.
무슨, 애들이 부모님께 혼날까 무서워하여, 부모님이 분명히 다른 거 하라 했는데도, 그것은 잊어버리고 처음 말씀하신 거 할께요 하며 나아가지만, 욕이나 실컷 얻어먹는 꼴이 연상이 된다.
혼날까 두려워 하나님 명령을 따르는 듯, 순종하는 듯 보였지만, 이것은 자기 뜻대로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을 거역한 것이니, 첫 번째 명령도 거역했고, 두 번째 명령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없는가 돌아본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혼날까 무서워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들, 위선적 종교 활동들…
주일 성수하지 않으면 무슨 일 당하지 않을까? 십일조 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으면? 뭐 안 되는 일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들…
주님은 이런 모습을 일컬어 “회칠한 무덤” (마23:27)과 같다 하셨다.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빠진 뼈다귀와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무덤과 같은 모습.
겉으로는 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거짓과 위선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
주님은 이런 위선적 행위를 원치 않으시기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하셨다
순종함이 없이, 마음이 없이 드리는 제사와 예물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는 가인의 제사를 통해 깨닫는다.
추수한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제사를 드리면 뭐하나? 시기가 가득하여 동생을 쳐 죽였으니
이렇듯 마음에 없는 순종, 마음에 없는 제사는 백 번 천 번을 드려야 자기 의만 쌓을 뿐,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으니, 헛수고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갈렙과 같이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듯” 순종하는 마음과 순종을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솔했고, 또 교만했다.
그래서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했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갔다” (41, 43)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들의 뜻이 앞섰고, 지도자의 말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이래선 안되지만 웃음이 나올 뿐이다.
정복하겠다고 위세 당당하게 산지에 올라갔는데, 적들이 벌떼같이 쫓아온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싸우기는커녕 도망치는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지 않는가?
그리고 하는 짓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통곡하고 있으니, 자기들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도 안 도와주시고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며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겠는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갈렙에게는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고,
여호수아에게는 “너의 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고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약속하신다.
온전한 믿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을 약속받는 갈렙과 여호수아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가나안 입성이 거절된 출애굽 1세대,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 모세
어떤 류의 사람이 될 것인가?
이 또한 나의 몫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갈렙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경솔하고 천자히 행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돌아보며, 또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한 갈렙과 여호수아를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순종의 모습을 가장한 또 다른 불순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으며, 죄로 하나님과 멀어진 것 때문에, 수고를 하여도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때문에 애통해 하는 자 되어 주님의 위로를 받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에 대해 늘 깨어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붙잡아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