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QT본문: 신 1장 19절~ 33절)
2012-11-2 금요일.
[본문: 신 1장 19절~ 33절]
[관찰]
가나안 정탐꾼 파송
1.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호렙산에서 출발하여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을 통해 가데스바데아에 이르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 두려워하거나 조금도 주저하지 말라 하셨다. (19~21)
2.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령에 즉각 순종하지 않고, 먼저 그 땅을 정탐하기 원했고, 모세는 이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여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모두 12명을 선발하여, 그들은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곳을 정탐하고, 그 땅의 과실을 손에 들고 돌아와 그 땅이 좋은 것을 인정하였다. (22~25)
가데스바네아 반역 사건 26~
1. 그러나 백성들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해야 할 수고는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려 하신다고 원망하였다. (26~27)
2. 정탐꾼들은 백성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며, 가나안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크고 강하며,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고 보고하였다. (28)
3. 하지만,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하여 애굽에서 행하신 것처럼, 지금도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백성들을 안으시고 이곳까지 오게 하셨다고 했다. (29~31)
4.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갈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이심을 상기시켰다. (32~33)
[교훈 적용]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자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다.
주시겠다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믿음과 적극적인 수고 대신 잔 꾀와 자신의 지혜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겠다는 그럴듯한 합리화로 포장하여 불신앙의 길을 걸어간다.
모세 또한 이를 속아주지만, 그들의 불신앙은 정탐 후 돌아와 보고한 내용을 보면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려 하신다 하였고, 백성들에게 희망은커녕 도리어 낙심케 할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이 엄청나게 크고 강하며, 그들의 성곽은 하늘까지 닿았다고 보고했다.
각 지파의 정탐꾼으로 뽑힐 정도면 믿음에서나 지혜에서나 용맹에서나 그래도 안 뽑힌 사람들보다는 여러 면에서 나았을 터인데도 하나같이 불신앙의 보고를 하니, 나머지 수준은 안 봐도 알 것 같아, 기가 찰 노릇이다.
지도자 모세 하나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명령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손과 발이 있어야 하는데, 그 수족들이 모두 다 병들어 막상 쓰려고 하니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더 나아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은 수족들의 모습이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그러면 함 돌아보자.
그들이 잘나고 똑똑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나?
지들이 지혜가 있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 이 자리까지 왔느냐 말이다.
40년간을 왕궁에서 또 40년간을 광야에서 훈련시킨 지도자를 준비하셨고, 애굽에 내린 10재앙을 보지 않았는가? 장자들이 다 죽어가는 애굽 땅에서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받았고, 홍해 바다 건널 때 자신들을 죽이려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한 순간에 휩쓸어 죽여버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지 못했는가?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광야 길을 인도하셨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아무 수고 없이 얻었고, 어린 새끼 돌보는 어미 새의 사랑과 같이,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이렇게 사랑으로 보살피며, 보호하며 여기까지 인도하여 오셨는데, 지들이 한 것이라고는 하나님 믿지 못해 열 하룻 길을 40년에 걸쳐 원망하며 돌아 돌아 이 자리 온 것 뿐인데, 입이 열 개라도 부끄러워 할 말이 없고, 지난 날을 돌아보기만 해도 그 은혜에 감사하여 눈물 흘리며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이 꼴이 뭐란 말인가?
그런데 지난 날의 내 모습이 이 꼴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 동안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하지만 이제라도 주님께 돌아와 부족하나마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순종하려 애쓰니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은혜를 주신다.
아직은 나이를 먹었다 할 때가 아닌데도 새벽 잠이 많이 없어졌다. 알람 소리가 나기도 전에 눈을 뜨면, 하나님께서 일찍 만나자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용히 기도하며 말씀 앞에 앉는다.
오늘 주님이 이렇게 나를 일찍 부르신 것을 보니, 내 죄를 보라 하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신다.
똑 같은 죄, 동일한 죄라도 어느 때는 계속 반복하여 보아야 한다. 이것이 겸손의 훈련이요 낮아지는 훈련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과감하게 죄책으로부터 자유하여 하나님의 손과 발 되어 움직여야 한다.
과거에 죄를 지었다 하여, 죄값 치른다고 기죽고 말 못하는 것은 믿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죄지은 거로 말 할거면 누군들 자유한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면 모두 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맞겠지만, 나의 나 된 것은 내 힘이 아닌 주님 은혜임을 깨닫고, 믿음 안에서 내 죄보고 겸손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살 것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49489;팅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는 지난 날, 죄악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되, 토해 낸 것을 아무 거리낌없이 먹어대는 개와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동행할 것을 매일 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가득한 백성들을 이대로 두면 안되었다.
지도자 모세는 그들에게 “백성들아 너네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냐? 눈에 보이는 크고 강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고, 지금까지 우리를 위하여 앞서 행하신 하나님 바라보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여 오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거야”하며 백성들을 격려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처음부터 수고하고 싶지 않았다.
애굽 땅에서 편하게 시키는 데로 노예 짓이나 하며 편하게 살았던 때가 더 좋았다.
하나님 행하신 기적을 믿고 눈에 보이는 크고 강한 아모리 사람들과 싸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합리를 가장한 불신앙으로 자신들이 생각한 그대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정탐 길이었을 뿐이다.
생각한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였으니,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보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믿음의 눈,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작게 보이나.
불신앙의 눈, 세상의 눈, 나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크게 보인다.
선택은 자기 몫이다.
광야에서 돌아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붙어있으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믿음의 경험들을 하면서, 믿음의 눈이 키워 지는 것을 체험한다.
하지만 이 눈은 저절로 키워지지 않았다.
수고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가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명령하실 때 행할 믿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고는 싶은데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너나 할 것 없는 믿는 자들의 딜레마다.
그래서 경건의 훈련이 필요하다.
경건의 훈련이 이 믿음의 근육을 키워준다.
이 훈련을 통해 하나님 말씀하실 때 순종할 힘을 얻게 하고, 그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다 보면 더 큰 믿음 갖게 되고,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눈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그는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33)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도 혼자 싸우는 것 아닌데도 잔 꾀를 부리며 불순종할 구실을 찾아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불신앙을 전염시켰습니다.
하나님 보지 못하고 내 눈으로 내 힘으로 세상을 보니, 상대적 조건이 열악한 자신이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 또한 이러한 불신앙으로 주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음을 자백합니다.
주님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이 믿음 더욱 굳세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붙잡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