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신명기 1:1-18)에 보면 모세는 출애굽 여정을 시작하면서 지도자로서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식하고 동역자를 구했다고 합니다. 동역자를 구한 이유는 혼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의 별같이 많게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괴로운 것과 무거운 짐과 다툼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고 동역자를 뽑아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괴로운 것과 무거운 짐과 다툼을 담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로 그 때에 (이미)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너희에게 '다 명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신1:18). 그 때에(출애굽때에?) 모세가 백성에게 준 명령을 백성들이 귀담아 듣고 적용하지 않아 열 하룻길이면 올 가나안을 40년이 걸려서야 오게 되었고 그것도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는 모세 자신을 포함하여 광야 1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잠시 교회 뜰을 밟았고 성가대도 잠시 했었지만 고난이 없었거나 마음이 강팍해서 하나님은 없는 것 같다며, 말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을 믿지 못해 진화론을 옹호하고 ,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 삶이 어찌 이러냐며 서서히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던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교회로 인도하는 손길들이 있었지만 설교시가에는 졸기 일수였고 그러다 늦잠이나 길게 자는 게 낫다고 생각하였었고 결정적으로 고등학교 때 친구에 의해 인도 받은 교회에서 어느 주일 설교 시간에 실컷 졸다가 끝나고 흠모하던 오빠가 왔나 안 왔나를 탐색하던 자신을 바라보며 이건 예배드리러 오는 게 아니고 사람 만나러 오는 것 같다며 교회의 발길을 딱 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 인생의 쓴 맛을 보고 우여곡절 끝에 2003년 교사가 되었지만 2004년 뇌하수체 선종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몸이 망가져가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는 교사 되기 이전보다 더 궁핍해졌으며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마찰 등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졌을 때 2005년 친구의 인도함으로 교회를 찾았고 그 때 예수님을 눈물로 영접하고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에 처음으로 용서와 평강과 안식이 찾아왔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흘러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다니다가 교회에 다닌 이후에 마음이 어느 정도 좀 편해지자 나의 열등감을 내 힘으로 극복해보겠다면 다시 세상의 성공을 향해 영어를 우상으로 놓고 나의 유일한 밑전이라고 생각한 나의 몸, 건강을 제물 삼아 열심을 내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병실에 있으면서 웬지 부모 형제도 나를 돌보지 않고 세상은 나 없이도 잘도 돌아가니 처량하고 외로운 생각이 들어 나를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니 죽기 전에 영어의 정점이나 찍어보자고 악을 품었었습니다. 선데이크리스챤이으로 안식일을 잘 지키지도 못 했고 불신결혼 후에는 더욱더 교회와 멀어졌었습니다. 출산 후 생긴 알수 없는 통증으로 잠시 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걷거나 서있기도 힘든데 어린 아기까지 챙겨서 예배에 가는 것이 힘들어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 병명을 알게 되어 수술하게 되어 병이 낫자 다시 나의 성공을 위해 연수 등 받으러 다녔습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여 미움과 원망과 생색과 시기, 질투, 혈기와 싸우느라 마음이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눈앞에 성공이 보이는 것 같았기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 언니의 교통사고를 통해 우리들교회로 인도 되어 와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아! 이 교회다!'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직장에도 나가고 있었고 2011년에 영국으로의 유학이라는 나의 15년간 꿈꾸던 일이 코 앞에 있었기에 큐티도 너무 어렵고 어린 아들 데리고 직장목장에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곧 유학을 갈 것이기에 시댁 밑으로 들어가 사는 것도 참을 수 있었고 긴 예배 시간도, 그 후의 직장 목장도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작년 나의 열등감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웃시야 왕이던 영국 유학이 좌절되고 유일한 밑전이었던 몸은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던 건장한 남편의 아킬레스 건은 파열되어 나을 줄 몰랐고 시댁 밑에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지 기약도 없고 다섯 살이던 아들은 교회 안 가겠다고 누워서 발버둥치며 울고 남편의 핍박은 시작되고... 그제서야 하늘 보좌가 눈에 보이며 수요예배로 자진하여 달려 가게 되었고 말씀이 들리고 울며 회개하게 되기 시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말씀과 양육에 들려 떠내려 오면서 내 성전의 가증함을 보며 회개하고 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이 너무 좋고 세상 가치관이 남아서 영국 유학도 못 가고, 집도 잃고, 건강도 잃은 망한 모습으로 직장에 복귀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에스겔은 망한 모습으로 표징이 되어 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에 순종했다 하시는데도 나는 못 하겠다 몸부림치며 변화산의 베드로처럼 말씀으로 살아나셔서 사람 살리시는 대단한 집사님들 보며 그냥 지금 이대로 휴직한 상태에서 예배 드리며 이곳에 초막짓고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다가오는 복직날짜(내년 삼월)로 인해 두렵고 불안하고 낙담되고 혈기나는 일이 많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 딱 제게 주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게 작년 5월 말 휴직해서 지금ㄲ지 호렙산(우리들교회 공동체)에 거한 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가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들어 가서 얻을찌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아 부러움과 두려움에 못 갈 것 같다고 낙심하고 있는데 나의 열조에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이니 안심하고 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서 영적 후사 많이 나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의 지질한 모습을 잎사귀로 내어 놓고 가정 불화로 죽어가는 아이들 살리라 하시는 부담은 교사가 된 후부터 늘 있었지만 자존감 낮고 열등감으로 인해 수치를 감당할 수 없어 겉으로 그럴싸하게 꾸미며 옷깃을 꼭 여미고 있었는데.. 들은 말씀으로 용기내서 옷깃을 풀고 발가벗으라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혼자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동역자를 구해서 그들의 괴로운 것을 들어주고 무거운 짐을 덜어주며 다툼을 공정하게 판결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 예수님 영접하였을 때, 세상에서 출애굽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였을 그 때 처음 드린 예배의 설교가 '믿음'이라는 주제였던 것 같고.. 우리들교회에 와서 드린 첫 예배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 칭함을 입었다는 것을 믿고 겸손히 낮아져서 섬겼으면 빨랐을 길을 나에게 의로운 것이 있는냥 교만하게 남을 정죄하고 또 죄많은 내 자신에 대해 낙담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영어와 학벌과 돈을 우상삼고... 나에게 허락된 모든 것이 나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했고 나의 물질과 시간과 감정을 이기적으로 나을 위하여 사용하려 했고 낮아지는 것이 싫어 질서에 순종 못해서 잘 섬기지 못하니 열 하룻길이면 되었을 것을 40년이 걸릴 수밖에 없구나 생각이듭니다.. 처음 영접한 시점으로부터 치면 7년이 지났고 우리들교회에 온 지는 2년이 지났습니다.. 광야 40년 중 어느 해쯤에 있나 생각해 봅니다.. 얼마가 남았든 앞으로 남은 기간 조급증 내지 말고, 왜 나는 고생만하고 가나안에 못 들어가냐고 하나님께 따지지 말고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땅이 앞에 있음을 믿고 남은 기간을 광야에서 잘 훈련 받아야겠습니다. 그래도 딱 40년이라고, 끝이 있다고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