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불리우는 브엘세바가 내게 있는가?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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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03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브엘세바는 이삭이 태어난 곳이다
나도 이 순간 55년도에 내가 태어난 곳을 추억한다
내 태어난 곳(서정리)을 추억함에는 삼십년전 전능자 하나님과 씨름했던 추억을 끄집어냄과 같다
그때만해도 내게 있어 전능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셔야만 되는 전능자였다
그 좋은 직장 팽개쳐버리고 산속에 들어갈정도로 나는 하나님의 전능에 얼마나 목이 탔는지 몰랐다
주일 하루 지키겠다고 6일을 혹사했던 나의 삶이 과연 올바른 삶이였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해 살아야할지..........
어떻해 먹고 살아가야할지가 아닌 어떠한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로 나는 애타고 있었다
결혼전이니 그게 가능했다
젊은 시절에 진리 탐구는 그렇게 이해 타산과는 거리가 멀어 참 좋다
78년도는 79년 12.12사건 터지기 직전의 해로 지금은 사모로 사역하는 작은 언니는 경찰에 좇기고 있었다.
나는 직장생활하면서 남은 시간들은 소외된 사람들과 접촉점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였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나의 신앙은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하나님 살아계시면 왜 저사람들을 도와주시지 않을까?
공의없는 휴머니즘속에 살던 시절이였으니............
산중에서 육일을 기도해도 기별 없으시던 하나님-
원체 나도 완전수 7을 좋아해 그래도 7일은 하리라 맘먹고 하산하고픈 마음을 억제하며 기다린 칠일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내게 나는 전능자 라는 것을 온전히 체득되도록 한 100여일간 특별한 권능으로 함께 해주셨는데 비록 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분은 진정 전능자라는 걸 깨닫게 해주신 분이시다
그 이후 나는 모든 것을 구할 때 순리라는 질서와 균형과 조화와 배려라는 틀을 전제로 구하는
영혼의 정방향을 갖게 되였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바로 그 질서와 균형과 조화와 배려로 이 삼라만상 거대한 우주를 붙잡고 통치해나가는데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신다
역으로 그 질서와 균형과 조화와 배려를 무너뜨리면서 그분은 당신의 힘을 보여주시지 않는
분이시다
혹 해가 뒤로 물러선 것이나 달과 해가 멈춘 사건은 구속사적인 특별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으로 앞으로 다가올 종말에 구속받은 당신 백성들을 위하여 또 다시한번 보여 주실 초자연적인 징조일 것이다
얼마전 묵상제목으로 올렸던 알몸 되기 주저주저하는 여인아 에서 말하는 알몸은 인간 본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알몸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몸을 뜻하는 것이다
허나 그게 나는 지금도 안된다
그 심리상태를 나는 주저주저로 표현한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앞에서 알몸으로 삼년간 다닌 것을 기억해보라
어디 그 일이 쉬울 것인가?
그게 어디 야하다며 욕망을 부추길 일인가
사도바울은 그가 삼층천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순간 그만 입을 닫아야겠다는 의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결국 삼층천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하나님 품에 안기였다
나도 그렇다
그렇게까지 나와 함께 100일을 함께 해주신 하나님과 나사이의 말할 수 없는 사랑에 관하여는
정녕 나홀로 간직한채 그분앞에 서게 될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사랑을 설명하려한다면 사랑은 자꾸만 멀어질뿐이다
뜻밖에 오늘 그때 그 추억을 떠올려봄은 오늘까지 불리울 수 있는 브엘세바가 내게도 있는가라는 내면의 질문에 응하기 위해서이다
그분께서는 내게 친히 하얀 종이위에 내가 태어난 서정리 를 한문으로 써주시며 우물 정 자를 강조시켜주시였다
결국 나는 구원의 물을 날마다 길어 나르는 우물을 소유하게 되였다
이 우물은 영생의 우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했던 그 씨앗의 우물이다
나는 감히 주님앞에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그나마 한마디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내 인생은 당신을 알기 위한 대서사시였다는 것이다
우물을 팠다고 팠는데 그래서 나도 뭔가 안다고 자부하며 디렵다 우물물을 길어 먹인 적도 있었다(주님 용서하소서)
허나 여전히 다툼과 시기가 있는한 아직도 그 우물은 신적그리스도의 우물이 아닌 자아의 우물일뿐이다
즉 그때부터 오늘까지 불리우는 항구적인 브엘세바의 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여 세겜과 벧엘을 거쳐 안착한 곳이 브엘세바이다
그는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는 조카에게 주고 또한 가나안의 비옥한 지중해 해변 평야지대나 갈릴리해변이 아닌 유대 산악지대나 네게브 광야지역을 떠돌며 평생 우물만 파다 간 인생이다
우리의 위대함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광야를 거치면서 이 세대의 화려한 문명속에 세속화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을 바라며 신뢰하는가운데 뿌리를 내리는 삶이 바로 우물을 파는 인생인 것이다
내가 아직 지경이 넓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시기와 다툼의 헛된 영광이 헛된 영광인줄 모르고
여전히 퍼올리는 자아의 물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이전의 깊이는 깊이가 아니였다는 것을 인식하게된다
그리고 그런 자는 아는 것이 얼마나 모르는 것인가와 늘 벗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나로 인하여 벌거벗은 채 피흘리고 계시는 십자가의 주님앞에서
재림 주앞에서
온천하만국다스리는 왕앞에서
나는 얼마나 무지한 인생인가?
그렇다
그렇게 내가 얼마나 무지한 자인가 인식하는 순간 내 안에 솟구치는 샘물을 나는 알고 있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일컫는 맹세의 우물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의 우물이 아닌 것은 다 사라질 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