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그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의 오픈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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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28
어젯 밤 늦게까지 만들어야 할 과제가 하필이면 동성애인 호모에 관한 것인지라 네이버 여기저기를 뒤지며 전문지식을 구해보았다
프리섹스국가인 이곳은 동성애가 더이상 불법이 아닌 것으로 의회에서 통과되고 그에따른 동성 결혼제도가 합법화된지도 벌써 이삼년은 된 것 같다
이곳 부모님들은 자기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면 파티를 해준다
너무 기뻐서이다
그 기쁨의 첫번째 요인이 무엇인가하면 아들이 호모가 아니라는 정상적인 성때문이다
나는 이곳 거리에서 여자가 여자를 껴안고 짙은 키스를 하는 현장을 자주 본 사람이다
또한 남자다운 울퉁불퉁한 근육질 얼굴임에도 곱디 고운 분가루를 바르고 짙은 아이라인에
새빨간 루즈를 바르고 긴 머리 가발과 브래지어로 가슴을 한껏 부풀린채 가성인지 진짜 자기 목소리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가느다란 목소리로 인사하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이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면 영낙없이 매우 껄꺼로운 고체 알갱이같은 감정과 한없이 녹아지는 물같은 액체의 감정들이 신경세포 세포곳곳에서 움터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그 이질적인 감정들은 서로 엉키어 혈관 곳곳에 뭉쳐 들어간듯 답답해지는 숨결을 느낀다
사단은 때와 법을 바꾸는데 명수이다
재림의 때를 수없이 정하기도하고 바꾸기도하는 수법을 보기때문이다
또한 법을 바꾼다
가령 동성애합법화도 그렇다
동성애는 엄연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그 불법을 바꾸어 합법으로 만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바로 불변함 때문이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대신 그분께서는 말씀대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자하는 자에게는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성적 질환도 능히 고쳐줄 수 있는 분이시다
오래전 하나님께서는 한 성직자가 연루된 동성애 사건의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동성애는 간음 그 이상으로 오픈하기 힘든 웅덩이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외 그 무엇을 달리 그녀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허나 하나님앞에서는 할 말이 있었다
오늘 다윗이 고백한 말씀을 알기 때문이였다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한번 두번으로 끝나는 기다림이 아닌 기다리고 기다리는 지속적인 기다림속에 다윗의 부르짖음은 점점점 더 치열해지고 더 열렬해지고 더 간절해지고 더 사무치는 기도로 승화되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위대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을 볼 줄 아는 영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자신이 서있는 곳이 반석이라고................
허나 다윗은 그게 아니였다
자신이 얼마나 기막힌 본성의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있는 자인가를..........
머리카락처럼 셀 수 없는 죄악의 본성 -
그것이 간음이든 살인이든 동성애이든 정욕이든 탐욕이든 그 웅덩이로부터 자기를 건져줄 자는
아버지뿐인데 그 아버지의 손이 언제끔이면 내 손을 잡아 끄집어 줄 것인가?
다윗은 그렇게 구원자되신 여호와께 집요한 시선을 둔채 한 시도 떨어질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적인 죄악에 익숙해지다보면 죄를 죄로 보기보담은 하나님을 설득하다못해 홀로 하나뿐인 하나님을 자기 뜻에 맞도록 형상화 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첫째되는 십계명인 것이다
스가랴서 14장에 보면 홀로 하나인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말씀의 백그라운드를 알면 참으로 기막히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인간은 자기 역사와 더불어 자신의 구미대로 형상화시킨 결론이 바로 하나님의 다원화이다
이런 하나님!
저런 하나님!
우리들이 각기 자신들의 하나님을 찬양할 때
반드시 성찰해야 할 것
나는 진정 내 본성의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손을 잡아보았는가이다
이런 자들은 수많은 파편처럼 분산된 하나님의 조각들을 다 불태우고 오직 홀로 하나이신
구원자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잡아 본 자는 더이상 그 웅덩이와 수렁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
내가 아직도 웅덩이와 수렁에 있다는 것은 역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잡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함께 묵상으로 알게 된 한 의사 형제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는 자기가 진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확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아직도 정과 육에 연연하고 있다면 아직 주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나 확실해서 그 십자가에 자신을 내주는 죽음을 날마다 치르는 한 내 속의 정과 육도 죽어지는 것을 날마다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웅덩이와 수렁을 정과 육으로 보면
그가 그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받아 서있게 된 반석은 우리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그리스도를 뜻한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고백한 동성애의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벗어났다는 기별을 듣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녀와 연루된 그 독신 여성의 성직자가 완전히 동성애로부터 구원받았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래 오늘은 다윗처럼 그 구원의 소식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가 되여 부르짖는 기도를 주님께 아뢰어야하는 영혼의 부담감을 갖게 된다
나아가 동성애도 여기에 수없이 오픈되어지는 성적죄악들처럼 편안한 자세로 오픈되어지길
바라는 것은 그렇게 고백되어지는 것들로 인하여 본인은 물론 주께로 전적으로 돌아 올 영혼들을 보기 때문이다
다윗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기도할 정도로 믿음을 지닌 자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귀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준 자다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위의 말씀은 그가 얼마나 주님으로 인하여 얻게된 것들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오픈시켰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렇듯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자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주로 인하여 체험화된 사건들을
선포했던 것들을 기억해달라는 다윗의 기도-
내 심금을 울릴 수 밖에 없지요
나도 나를 날마다 아니 분초마다 주님과 함께 못박지 않는다면 여전히 그러한 존재니깐요
다윗이 만일 자신을 역력히 노출시키지 않았다면 이천년 기독교 역사의 강단에서 수없이 선포되어진 다윗의 영광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 말씀을 설교할 때마다 좇아오는 다윗의 영광은 상상할 수도 없었겠지요
다윗처럼 기막힌 웅덩이와 수렁가운데에서도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는 기도의 영성은 결코 강성이 아닌 한없이 연약한 갈대와 같았다는 것을 오늘 새겨보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연약한 것을 자랑하겠다는 사도바울을 떠올려봅니다
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