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을 가져간 자는 나였는데...
작성자명 [신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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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24
주일예배시 건축헌금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에 그동안 주저해왔지만, 이제는 올려도 되리라는 마음이 들어 헌금에 관한 저의 문제를 올려드립니다.
스가랴서로 큐티가 시작 되는 첫 날이었습니다. <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너희 열조를 본 받지 말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는 회개하라는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최근에 승진을 했기에, 붙으면 회개하라는 목사님 말씀을 생각하며, 가족 각자가 저녁때 만났을 때 회개 할 것을 하나씩 생각해 보자 하며, 각자 일터로, 학교로 향하였습니다.
아침 9시경 교회에서 간사직분을 맡은 집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부활절 헌금봉투에 헌금이 들어 있지 않다며 확인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순간 내가 헌금 봉투만 넣었나.., 다른 헌금 봉투와 바뀌었나… 하다가 가슴을 탁 치는 것이 있어 확인해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지난 주에 외국 출장이 있어 우리들 교회에서 주일 성수를 못했고, 부활절 헌금 봉투를 미리 받지 못했기에 입구에서 봉투를 받아 자리에 가지고 와서 헌금을 넣고, 같이 예배에 참석했던 아들에게 헌금함에 넣으라고 했었습니다. 아들은 현재 타 교회에 출석하는 중 3 학생이고, 부활절 예배를 저와 함께 보기로 하고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헌금이 없다는 말을 듣는 동시에 아이가 그 헌금을 빼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마…하는 맘과 확실하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떨려 어쩔 줄을 모르겠더군요. 사실 아이가 헌금에 손을 댄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작년에도 한번 아빠가 준비 한 헌금에 손을 대서 호되게 혼이 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내 착각일거야… 하지만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침 큐티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나를 회개시키기 위해 아들이 수고하고 있구나 생각되었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것을 내 마음대로, 내 소견에 옳은 데로 손을 대었습니다.
교회 생활 초기에는 믿음이 없어 몇 년간 십일조를 하지 않았고, 신앙심이 좀 생겼다 싶은 후에는 십일조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십일조였습니다. 일중독적인 생활로 살아와 일이외의 것은 거의 가지치기하며 살아온 성격이라 월급 명세서도 눈 여겨 보지 않고 살아 온지라, 통장에 온라인으로 들어오는 것을 십분의 일로 하여 드리는 것이 제 십일조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은퇴 목사님의 곤고함을 보고, 십일조 금액을 적절히 분배하여, 섬기는 교회와 그 목사님이 소속된 교회에 나눠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한 전도사님의 간증을 듣고, 제가 혼돈스러워했으면서도 게으름과 무지에 더하여 얄팍한 계산이 깔린 마음으로 이렇게 드리는 십일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봉급 생활자는 ‘세전’으로 하여 철저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그 분의 말씀에 그동안 잘못된 십일조를 드렸구나 하며, 온라인 통장의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 ‘세후’ 십일조를 내던 것을, 명세서를 기준으로 한 ‘세전’ 십일조로 하여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임의로 나누었던 은퇴 목사님 몫의 십일조는 감사 헌금 방식으로 따로 은퇴 목사님께 드리기 시작 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달마다 교회에 드리는 금액은 배로 증가했지만 마음이 편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아들이 이렇게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했다는 것은 월급만 생각했지 은행에 맡겨 놓았던 것, 이사를 하면서 남은 차익 등등을 십분의 일을 떼서 내 맘대로 십일조를 내고 싶으면 십일조로, 건축헌금을 내고 싶으면 건축헌금으로, 감사헌금으로 내었던 것입니다. 정말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었고, 헌신의 마음으로 드린 건축헌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구분하여 드리기 싫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깊은 심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액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분간하기 싫은 마음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며 일견 사회적 정의를 외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내 판단으로, 내 의로 살고자 하며 돈을 사랑하여 은 30량에 예수를 판 유다의 행위가 제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자리에 앉아 내 마음대로 했던 그 완악함을 사실 하나님께서는 계속 경고해 오셨는데, 제가 그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치하지 않고 내 열심으로 절약하며 모았다고 생각하며 투자한 곳에서 연달아 손해를 보고 마이너스 상태로 나와야 했던 일들이 있었고, 작년에 아들이 아빠의 헌금중 일부를 빼갔을 때도, 체벌로 다스리고 이후에는 별 일 없겠지..운이 없어서 투자를 잘 못한 것이야…하며 지내온 것이 제 신앙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것을 자기 맘대로 사용한 것이나 제 행동이나 별 차이가 없는, 아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저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아들의 문제가 스가랴서의 큐티 말씀과 겹쳐지며 저를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수고하게 하셨구나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규모있게 용돈을 주어 본적도 없고, 용돈주는 것도 종종 잊으면서 왜 네가 챙기지 않았느냐며, 책임을 돌리던 역기능 엄마였던 것입니다. 아들은 풍요(?)속의 빈곤에 허덕이던 2차 역기능자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정작 두려웠던 것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알려야 하는 것인지, 알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지난 번 헌금 사건으로 남편과 아들의 신뢰관계가 문제가 있는데….집안이 시끄러워 질 것이 두려웠습니다.
오후에 집으로 전화해서 아들에게서 헌금에 손을 대었다는 말을 들었고, 고민 끝에 목사님과 목자님에게 상의 후 남편에게 알려야 한다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아빠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하자 아들은 자기는 죽게 될 것이라고 떨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남편에게 알려야 할지 다시 고민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현재 타 교회를 다닙니다만 수요예배에 같이 참석 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목사님의 큐티 강해 말씀에 힘입어 남편에게 놀라지 말라며 아들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던 남편이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던 내 죄의 결과라는 말에 수긍을 하며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화내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대신 아들이 가져간 헌금의 2배를 아들의 통장에서 찾아서 헌금을 하자고 아들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일에 중독되어 아이들을 말씀으로, 사랑으로 키우지 못했고, 내 의로 살아온 날들의 결론으로 찾아 온 이 사건을 보며, 이제는 아이의 곤고함을 내 죄로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헌금함에 헌금을 넣으라고 한 것도 헌금의 중요성을 가르치려는 것도 있었지만, 헌금을 통해 네가 복을 받는다는 기복신앙이 제 마음의 바닥에 있었던 것도 부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옥합을 깨기는커녕 옥합의 뚜껑 열기도 주저하였으며, 그저 몇 방울의 향유만으로도 생색이 나는 그런 삶이었고, 아직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감사한 것은 우리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우리 부부는 우리의 죄는 보지 못하고 이 문제로 인해 다시 한번 인본주의적 도덕관을 앞세워 아이를 질타하며 서로간에 영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말았을 것을, 내 죄를 보라는 구원의 말씀을 통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입니다. 아이가 지금 믿음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깊이 반성 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우리 부부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간다면 아이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정말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목사님 말씀이 다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들 교회와 김양재 목사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