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점심에 약속있어?"
작성자명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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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22
그러니까 저의 신앙이라는게 참 보잘 것이 없습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일성수하기로 하고 주일에는 일이 망가져도 일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오늘 저는 지금 사무실에 있습니다. 이제 마치고 김종철 집사님 상가에 문상가려는데. 반성문 쓰고 가려구요.
일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요즘 그룹(작은 그룹입니다, 안알려진)에서 인수한 회사의 경영진단을 하러 지방을 왔다갔다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사장이 불러서 묻습니다. 주일 점심 때 약속이 있느냐고. 약간 당황하면서도 머릿 속으로 번갯불처럼 계산을 해 본 후 (삼만번은 회로가 돌아갔지 싶습니다)에 시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배 끝나고 잠깐 만나면 되겠지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 진행경과에 대해서 그룹 회장님과 기조실 전무에게 보고해야 12시까지 모모 호텔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싶었지요. 그러나 사실 그 앞전에 머리 수만번 회전하던 그 짧은 순간에 내 머릿 속에서 그럴 가능성을 따지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럴지도 모르는데.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이 그렇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서 아 점심 약속이 있는데요 라고 말해 버렸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주님과 만나는 약속이 늘 있는데. 왜 약속이 없겠습니까. 게다가 어제 문득 생각이 났는데. 박성근 형제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전화가 왔었더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만나서 다시 사과해야 겠어요. 주안에서 믿는 형제와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난 또 그것을 잊고.
나중에라도 교회에 가야하니, 사장님 혼자 보고하시라고 말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고 또 그래도 되었건만(그래도 세상 하나도 변치 않는다는 사실, 수도 없이 겪었고, 우리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관할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내게 주신 증거가 얼마인데. 나는 믿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이 두렵기도 했고, 사실 내 속에서 욕망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었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저 욕심이 생겼고, 욕망이 생겼고, 그걸 정당화하려니 두려움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룹 회장에게 단독으로(사장이 옆에 있기는 하지만) 보고할 기회가 어디 흔하겠느냐? 나에 대한 강한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이것이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선언이 더 강한 인식이었을 텐데요.
토요일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스가랴 9장 10절) 아 정말 가슴을 치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의지하는 병거와 말을 끊으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나를 무능하게 하셔서,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 없는자로 만드셔서, 화평을 전하를 자로 삼으신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아침에 묵상하는 데, 정말 부끄럽기 한이 없더군요. 나는 여전히 병거와 말과, 활을 의지하고 있으니, 세상에서 업무 능력과 일하는 능력을 의지하면서 인정받는 것을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사장을 만나서 다음날 보고할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저의 장래 계획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오래 회사를 다닐 것이 아니고, 결국은 나의 길을 갈 것이라는 뜻으로요. 나에 대한 기대나 인정의 씨앗을 스스로 꺾어야할 필요를 느꼈고, 내가 스스로 병거와 말과 활을 끊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더는 기대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마음이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아침 1부 예배가 끝나고, 사무실에 미진한 자료 준비하러 부랴부랴 가다가, 전화를 받고는 갑자기 회장님 자택으로 달려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보고를 하고 점심을 함께 들게 되었습니다. 와인을 권하시더군요. 이분이 와인 매니아시라. 술을 완전히 끊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지 수년이 넘었고, 어떤 자리에서든 한 마디로 잘라왔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와인의 효용성에 대해 참 여러가지 말로 권하더군요. 술일 뿐이라는 사실 옛날에 많이 마셔봐서 다아는데. 그 말앞에 그냥 미소지으면서 있었고, 기독교인이라서 술을 안마신다고 했더니, 목사 장로도 다 마신다. 모모 목사(무지 유명하신 분)도 와인 매니아라는 둥. 한국 기독교가 잘못된 것이라는 둥. 심지어는 정히 못 마시겠으면 신앙 때문에 안마신다 하지 말고, 몸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라더군요. 정직한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훈계도. 그런 훈계야 뭐 예전에도 항상 듣던 이야기니 새로울 것이 없었지요. 강권에 못이기는 척하면서 입을 댓습니다. 한 모금은 아니고, 한 숟가락 분량 정도 마셨습니다. 좋은 와인이더군요. 순간 옛날 생각도 낫구요. 마음 속에 허용하는 핑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른에 대한 예의라고 말이죠. 사실은 썩어져 버릴 세상 권세에 대한 두려움이나 혹은 동경, 혹은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잔을 굳이 내려 놓는다고 입을 벌려서 내 목구멍에 채우고 삼키게 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사람 앞에서 잘 보이고 싶고, 그 사람 앞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사무실로 돌아와 나머지 일을 마치고 나서 오늘의 본문을 다시 펴들었습니다.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스가랴 10장 2절) 진정 이것은 헛된 드라빔이요. 헛된 복술이었습니다. 술을 강권하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실천해 왔었지만, 세상 권력과 돈 앞에서 간단하게 무너졌습니다. 그가 무너뜨린 것이 아니고, 그냥 저 스스로 홀라당 자빠져 버렸던 것입니다. 헛된 드라빔과 복술에 스스로 무너진 척 하면서 말입니다. 저의 신앙은 순엉터리였던 것입니다.
일요일 점심에 약속있어?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움직인 백만번의 회전 그리고 그 순간의 타협이 그 이후의 모든 타협과 굴복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내 욕망의 결과,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이후로 줄줄이 이 순간까지 주욱 모든 것들이 이어졌습니다. 금주도, 주일성수도 못하고.
지금은 한없이 참담하고 부끄러운 심정이 듭니다. 이제 어디가서 누구에게 주일성수 해야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술 앞에서 너의 신앙을 지켜라고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무 지나치게 당당하고 자기 의에 빠져서 사람들을 정죄하니, 너도 어쩔 수 없음을 깨달으라고, 밟히는 사건을 주셨나 봅니다.
일 앞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일이 참으로 힘이 듭니다. 지금은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이라 감히 다시 새 힘을 얻어서 바로 서겠다고 말하기도 주님 앞에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항상 함께 하시며, 위로를 주시며, 새힘을 주시는 예수님을 또 기억합니다.
예수님, 저는 참 어쩔 수 없이 한심하고, 불쌍한 영혼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사, 주앞에 바로 서게 해주세요. 주앞에 바로 서게. 내 힘으로 주님 믿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사오니. 주여 믿음 주시고, 믿게 하여 주시고, 세워주세요.
날마다 배신하고, 날마나 범죄하고, 날마다 세상에 무너지고 굴복하는 약하고, 음란한 영혼을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주의 은혜로, 주의 긍휼로.
그래도 나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예수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삶을 거룩에 이르도록 이 죄구덩이에서 꺼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