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되기를 주저주저하는 여인아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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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22
아무리 말씀대로 응한다하지만 막상 말씀이 응할 때 암,당근이지~~ 이런 반응을 보일 자신이
있을까?
어제 오후 2시경
접니다 라는 전화를 받고는
뉘신데요? 아니 물을 수 없었던 나-
마침 어제 말씀가운데 블레셋의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스가랴 9장 7절) 는 양식을 먹은 후 다시 끄집어 내여 고스란히 제 믿음의 이로 곰씹고 있는 중이였는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어떻해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일상적인 목소리인가?
아니면 특상적인 목소리인가?
나는 무던히도 특상이 일상이 되도록
그리고 일상이 특상이 되도록 말씀으로 그 괴리감을 극복하며 이제껏 살아왔을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목사님이셨다
수석 졸업생-
민첩함과 영민함과 말과 행동에 능한 목사님이셨다
넘 사랑해 캐나다와서도 잊지못해 캐나다로 그분을 불러들인 남편-
그리곤 사랑한만큼 피차 아팠던 그 세월 남편은 근 칠년간 머나먼 영혼의 방랑을 떠났었고
그분 역시 이민 목회를 접고 고국으로 돌아거신지 벌써 7년차-
울 주님 목적은 한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으시니 기여히 방랑하는 남편을 장로라는 직분의 틀속에 끼어 놓고 오도 가도 못하도록 오직 그 틀속에 메어있도록 하셨는데......
남편과 내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그 목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더구나
그 주님의 종이 떠나면서 내게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말씀이 진실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이스라엘을 선두에서 지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였는데.......
그래 어제 유다의 한 지도자같겠고 라는 말씀을 본 순간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뜻밖에 전화로 어제 밤에 토론토에 도착하셨다며 가게에 오셨으니.....
남편의 안부를 묻길래 여차여차 설명해드리고 낮에 목사님 내외분을 못만난 남편은 한 밤중에
그분들을 뵙고 새벽 2시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셨네요
산다는 것이 묵상이로 고백한다는 것-
이것에 때로는 두렴도 있지만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해본 어제를 통해 오늘
주어지는 말씀속에 또 만나지는 살아계신 주님을 기대해봅니다
9장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유독 아들 아들로 가득찬 성경에 유난히 딸! 딸!을 반복해서 부른 이 귀절-
그야말로 딸로 태어난 영광을 만끽하는 아침입니다
왕과 나-
왕과 나란 관계를 맺기까지 나는 수많은 관계들을 경험하며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이젠 다른 그 어떠한 관계도 왕과 나와의 관계보다 더 뜨겁고 강렬하고 냉철하고 오묘하고
신비하고 기이하고 영원한 관계는 없습니다
이런 왕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병든 자 외로운 자 헐벗은 자 어린 소자 등등
그런 나귀새끼같은 자리에 무던히 눈길을 주는 것이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들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늘 신비함에 젖어 살았던 것이지요
성인의 몸체로 나귀새끼를 타신 주님의 모습 상상해보셨나요?
아인슈타인은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스꽝스럽다는 표현을 하였다지요?
안정감도 없고 그래 무엇하나 주님을 주님답게 드러내는 것이 없는 나귀새끼....
그래서 주님을 보지못하도록 오히려 가려주는 나귀새끼-
원래 가장 귀한 것은 함부로 보여주는게 아니랍니다
거만하고
교만하고
자아로 충천한 사람에게는 주님이 잘 안보이는 것입니다
나귀새끼가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뒤뚱뒤뚱 세련되지 못한 자태를 끊임없이 연출하시는데 그 나귀새끼를 탄 자가 바로 왕이심을 인정하는데는 그 나귀새끼앞에 죽어지는 자기 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차라리 나귀새끼에서 내려서 명마를 타시던지 아니면 차라니 아무것도 타시지 않고
당당히 걸어오시면 왕이라 인정하겠는데.....
그놈의 나귀새끼가 왕되신 주님을 보는데 걸림돌이니.........
하나같이 우리들은 미련하고 약하고 외소한 나귀새끼마냥 보잘 것 없어 나의 조국은
조국 교회에 임하신 우주적인 왕을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분의 통치는 활과 말과 병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외치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들려지는 목소리입니다
그 작은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목소리의 테마는 화평 입니다
내 목소리의 테마는 무엇일까?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실제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하며 흘렸던 피
이삭과 야곱과 그외 허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생각하며 흘렸던 피
그 언약의 피를 완성시킨 새 언약의 피가 아직 이르기전에 스가랴가 선포하는 이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루살렘 회복의 소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70년동안 살면서 제법 안정감을 가졌을 포로의 삶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
아 온 자들입니다
이들의 후예들이 먼 미래 즉 예수님 지상 사역시 예루살렘 본토인이라는 명명으로 주님앞에 찾아온 자들이 된답니다
스가랴는 이 소망을 품은 자들에게 요새로 돌아오라합니다
즉 예루살렘 재건을 소망을 두었다면 포로의 그 땅을 떠나 요새(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권합니다
이것은 긍극적으로 우리들이 샬롬의 예루살렘 회복(유토피아)을 꿈꾼다면 주께로 돌아오라는 뜻이겠지요
돌아오기 위해 소모되는 금전이나 체력 그외 여러가지 손해보는 것들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반드시 갑절로 갚아준다 하십니다
내가 갑절로 보상받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왔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삶의 증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보상은 그때만 한정된 보증수표가 아닙니다
지금도입니다
저는 그분의 은혜로 돌아 온 자 되여 지금 갑절로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내가 소망하는 것은 영혼의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내 자녀들의 영혼들이 영생으로 보상받는..............
조승희 사건을 통해 다시한번 간절해지는 소원입니다
우리들의 후세들이 우리들의 이세들의 영혼이 영생으로 보상되어져오는....
헌신한 주의 백성들이 있을 때 새벽 이슬같은 젊은이들 나타나게 되어있다지요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13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14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1)빛나리로다 또는 높이 들리리로다
17 2)그의 형통함과 2)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사에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고 높이 들리운 사건은
마카비 왕조사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갑절로 보상해주시는데 그 갑절의 보상이
물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빛나는 역사로 갚아주겠다는 것이지요
나는 역사로 보상받기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나라는 것에 붙어있다면 나는 이렇게 날마나 미친 짓같은 큐티엠 안합니다
내 조국이 초림과 재림사이 높이 들리움 받기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께로 귀화한 것이
내 조국 교회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 선 것의 보상을 역사로 받기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알몸이 될 수도 있어야되는데..................
나는 이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기에 주저주저하는 것입니다
주님
날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