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dy Godiva,
1898 / John Collier,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Museum
11세기경 잉글렌드 중부지방의 코벤트리. 레오프릭 영주가 농노들을 대상으로 한 지나친 징세를 보다못한 사람은 농노의 대표도, 민중 봉기의 우두머리도 아닌 레오프릭 영주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버 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의 과중한 세금청책을 과감히 비판하고 세금을 낮출것을 요구했지만 거만한 레오프릭 영주는 너의 그 농노사랑이 진심이라면 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라.
만약 당신이 완전한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바퀴 돌면 세금감면을 고려하겠다. 라고 빈정대며 말을 했지요.
영주의 아내가... 그것도 알몸으로 자의로 걸을 수도 없이 말을 타고
숨지도 못한체 영지를 도는 것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제로였기에 영주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제의를 고민끝에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느날의 이른 아침에 전라로 말등에 올라 영지를 돌게 됩니다.
영주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영지를 돈다는 소문을 접한 농노들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레이디 고다이버가 영지를 돌때, 누구도 그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고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잠그고 커튼을 내려서 영주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때 레이디 고다이버의 나이는 겨우 16세였습니다. (전해내려오는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 행동을 고다이버이즘 (godivaism)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당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역설논리로 시위했던 고다이버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사항/1971 작가 달리도 레이디고다이버를 그렸으며 그녀의 이름을 딴 유명한 벨기에의 고디바쵸코
릿이 있기도하다.무엇보다도 레이디고다이버 그녀는 6세기 이후 영국에 들어온 기독교를 신실하게 믿으며,신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진 정직하고 숭고한 여인이었다
...큐티나눔은 말씀을 통해 나를 보고 본 나를 번제로 드려 그 향기로움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얼마전 한지체의 나눔에 마음이 아리고 아퍼서 금방 리플을 달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위로해주고 격려 해 주고 싶은데 적당한 말도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성을 건축하려는 그 지체에게 성주의 부인으로 자신을 보여 성의 모든 식구와 결국 성주까지 살린 고다이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수치를 보일 수 있다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로 잘 처리되지 않으면 겸손과 희생을 가장한 생색 이 될 수도 있고....
여하간 이런저런 이유로 늘 생각만 많을 뿐 적용 이 없는 저로써는 이렇게 자신을 드려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주는 지체들에게 그 향연에 참여하게 해준것에 대해 감사하고 축복할 따름입니다.
말씀없이는 시시콜콜한 얘기가 적혀있는 공간으로 보여 질 수 있는 이곳이지만 말씀때문에 죽음같은 적용을 하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늘 소상히 이곳에 올려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 저도 피비린내 진동?하는 적나라한 나눔을 진정한 눈물로 올리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