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재건을 위해 스가랴에게 말씀이
작성자명 [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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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19
인생에서 해, 달, 별은 늘 떨어지지만 이번엔 정말 큰 해, 달, 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성경은 죄인의 기록부라고 하셨는데...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써내려가야겠습니다. 그냥 묻어두고 살 수는 없을까?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 자꾸만 주님이 ‘너는 내 것이라’고 부르십니다. 복음이 나를 부르시고 홍해 바다를 가르시며 빨리 건너가라 하는데도 갈라진 바다가 무섭기도 하고 애굽이 아깝기도 해서 머뭇거리다가 뒤쫓아 오는 애굽의 병사들처럼 사건이 자꾸만 와서 안 건널래야 안 건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 남편이 월급을 못 줄 정도로 회사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런가보다... 할 수 없지.... 내가 너무 교만하니까...’ 추상적으로 저의 죄를 보면서 ‘그래도 살아지네’ 하는 은혜를 경험하려고 하는데...
금요일 밤 남편이 치질이 심해서 피가 나와 집으로 일찍 들어왔습니다. 스트레스가 극심하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게 일이 있고 ‘어떻게 하나, 죽어도 병원은 안 가는데 어떻게 하나’ 하는데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 남편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옵니다.
남편은 핸드폰을 결혼 이후 죽 잠궈놓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문제로 좀 언짢았지만 오히려 더 무안을 주며 화를 내길래 그 다음부터 자존심이 상하여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넘기려고 하다가 그냥 아무 번호나 아무 생각없이 막 눌러보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풀리길래 ‘내가 어떤 번호를 눌렀지?’ 혼자 신기해하며 그래도 저의 생일 번호로 해놓은 것에 대해서 잠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본 순간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나 지금 막 들어와서 씻고 누웠엉... 당신 많이 아프지... 요즘 신경쓸 일 많지... 잘자요.’
자기의 번호는 지워져 있었습니다.
발신 메시지 함에 남편이 보낸 문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좀있다갈게’ 남편도 자기의 번호를 지우고 보낸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번호로 걸어보니 회사의 여직원 이름이 뜨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눈을 크게 뜨고 봤습니다. ‘설마 이 여직원이랑...’ 얼른 끊었습니다.
‘지금 일났옹... 당신 잠이 안오나부다...’
그 여직원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은 하얗게 샜습니다. 큐티 말씀을 폈지만 계속 같은 줄만 읽히고 잘 읽어지지 않았습니다. 손 발이 차고 배가 아프기 시작해서 그 날 밤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 날락 거리며 설사를 하고 베란다에 서서 밖을 쳐다보았다 누웠다, 방에 들어가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나와 부엌에 웅크리고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내 몸이 조절이 안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왔다 말랐다. 통곡을 했다, 말았다....
‘나에게는 손도 안 대는 남편이... 일만 하는 남편이... 일 중독에... 그렇게 잘 난 내 남편이... 어떻게.... 이 때까지 난 뭘 한거지? 난 뭐하면서 산거지? 그 공허함에 공부한다고 하고, 아이 하나 키우면서 부들부들 떨며 아이 이름만 부르며 뭘 했던거지?’
‘남편기도를 늘 할때마다 회사직원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이 회사가 그들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내가 늘 이름을 부르던 그 이름... 그 여직원....’
그러고보니 기도 응답입니다. 구원의 통로... 맞네요.
그러나 그 여직원에게 갈 것도 없고 그냥 딱 내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스가랴 1장 1절 말씀처럼 저는 말씀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다리오 왕의 연호를 쓰며 살았습니다.
학벌도 갖추고 명예도 좋고 권력은 당연하고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자손들은 번창하여 자자 손손 대대로 이 모든 것들을 대물림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한 삶인 줄 알고 쌓지 말아야 할 다른 성전을 쌓다보니 지어야 할 여호와의 성전은 16년간이나 방치된 채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라고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셨습니다.
외 할머니가 권사님으로 하나님을 믿으시다가 이단에 빠지시고 나중에는 다시 영접을 하셨는지도 확실치 않은 체 세상적으로 제일 힘이 있는 이모의 주관에 따라 천주교 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를 비롯하여 일곱 남매 모두 참.. 최고 학벌로 키우셨지만 신앙을 물려주지는 않으신 것이 저에게까지 내려오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별로 사이가 좋으시지 않고 어려서부터 집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여과없이 보면서 자라 그런지, 가계에 흐르는 저주도 주어졌지만 저에게로 말씀이 들려 말씀이 임하는 은혜도 받게 되었습니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하시며 만군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니 저의 대에서 이 모든 죄들을 본받지 말고 저주가 끊어지며 만군의 여호와께로 돌아가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곳 골짜기에서 인생의 칠흙같이 깜깜한 밤에 예수님 만나 화석류나무가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소망이 되버립니다.
저도 당연히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신앙 조건만 보지 않고 모든 조건들을 갖춘 남편과 결혼을 위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그야말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부부생활을 회피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남편과 저는 그 어떤 것도 교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도 못 물어보게 방어하고 차단하고 아주 어렵게 하는 대답은 참 당황스런 단 한마디 ‘너와 너네 부모님이 무시해서... 도저히 안돼.’입니다. 부모님이나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무시했는지 도무지 얘기는 안합니다.
그래서 혼자 여러가지 상황들을 떠올리며 맞추어보고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저도 넘어갈 수 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저를 찾고... 뭔지 모를 복수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같은 태도... 구속하지 않는 듯 구속하는 이중적이고 모호함..
그러면 나는 뭔가? 나도 강적입니다. 이대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세상에서 노력하던 것처럼 또 노력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행동한 것 그대로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내 상처의 굴레와 남편 상처의 굴레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져 굴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다리오 왕 연호를 쓰느라고... 돈이고 학벌이고 명예고 뭐고 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못해서 이혼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을 다시 지으려고 시작하신 주의 일입니다. 그래서 밤 열두시를 넘기며 주시는 그날 스가랴 4장 1절 말씀처럼 그 문자로 인해 천사가 다시 와서 정말 자고 있는 나를 깨우셨습니다. 그야말로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만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성전이 재건된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말씀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가랴 4장 7절 말씀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남편을 만나기 위해 회사 앞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과 남편 앞에서 큰 산으로 있었던 것을 회개해야 했습니다. 큰 산이 깎여서 평지가 되어야 성전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온 문자 메시지 ‘자기야 사랑해. 많이 아프지 마. 내 마음도 아프다. 잘자. 주말 잘보내’ 를 보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으로 말씀을 폈습니다.
스가랴 5장 5절 말씀, 에바 환상을 보여주시며 문자적으로도 에바 속에 여인을 던져 넣고 납 조각으로 덮으시는 것을 보며 ‘이렇게 해주시겠구나’ 하며 위로를 얻고 나는 나의 죄를 에바 속에 넣고 보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불쑥 불쑥 올라오는 감정으로 힘이 듭니다. 잠도 잘 못자고 밥도 먹기가 싫고 배도 안 고픕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아이에게도 신경을 못 쓰게 되었는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자식을 어떻게 내가 키우나. 나의 역기능만 물려줄 뿐이지. 하나님이 키워가셔야 되는구나. 내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절절히 스며듭니다.
스가랴 7장 말씀, 금식에 대해서 물어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말씀해 주십니다.
제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남을 해하려 했다고 하십니다.
이제 제일 어려운 상대 부모님에게도 갈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서도 여전히 세상 가치관으로 살고 계시는 엄마에게 제 이야기와 우리 집안 이야기를 말씀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고 올 것입니다. 우리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남을 해하고 금강석같이 마음을 굳게하고 있다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지... 기도해 주세요.
그날 밤 남편의 입에서 처음으로 ‘니가 날 정말 잘 안다고 회사나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해 주는 말들을 들으면 정말 다 맞다고,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이 든다고, 그냥 와이프로 아이의 엄마로.... 믿고 싶은 말.. 여자는 없다고 돈, 시간, 여유가 있어야 바람을 피는데 자기는 이 세가지가 모두 없어서 바람을 필 수가 없다고... 그러나 나도 고치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무슨 지혜가 있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 들은 것으로 조금씩 해 준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두려움이 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극적으로 남편이 예수님을 만나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교회에 올 지... 어떻게 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또 말씀을 폅니다.
회개가 없는 것이 환난이었습니다.
제발 여기서 더 사건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어집니다.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분량까지 자라고 싶었습니다.
완전하고 확실하게 주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힘들다하면 그냥 달려가 주고 싶습니다.
여기서 우리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고 진정한 로얄 패밀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깜깜한 세상에서 나오고 싶습니다.
남편을 사랑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냥 내가 너무 모르니까 십자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셨을 것 같습니다.
내 죄가 그대로 있지만 그냥 덮어주신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오늘 스가랴 8장 1, 2 말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시며 사랑을 나타내는지 그 사랑이 무엇인지... 저도 그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목자 목사님.... 정말 닮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계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