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금요일
제목: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에스겔 23:22-3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찌니라 하시니라.
질문
1.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는가?
묵상
게시물 때문에 갔지만, 막상 입을 떼기가 어려워 눈치가 보였다.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꼬리를 내리고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마저 말하지 못하고 다른 일만 추진했다.
다른 선생님들께 섭섭하고 서운함을 말한 게 걸리기도 하고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미네랄이 살았다는 유기농 설탕을 한 개씩 돌렸다. 사실, 함께할 수 있게 하신 것, 한솥밥을 먹게 하신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으면서 스스로 위로를 얻었지만, 꽁한 내 마음... 교무와 연구와는 맘을 트기 싫다. 말씀 적용과는 안 맞지만, 최소한의 복수다. 알 만한 사람들, 분별력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그랬다는 것에 대해 이해가 안 되고 괘씸하기만 하다. 배신이다.
아침에 함께 교장실에 가자는 제안에 나는 거절을 했다. 후배들만 가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어제 회의를 통해 결론은 난 것이다. 정말 아쉽고 섭섭하지만... 여기서는 물러나야 할 일이다. 그런 분별력이 생긴 게 감사하다. 일이 추진되든 그렇지 않든, 본질과 핵심에 있어서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잠시는 의기소침해지고 무력감에 어깨가 쳐질 수는 있겠지만... 한 언어를 사용하는 한 마음, 한 뜻인 공동체가 그립다.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인 공동체가 그립다.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외로울 수밖에 없다. 비슷해보이지만 끝까지 함께할 수 없는 다름과 차이! 그게 내가 가는 길,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이다.
9월 29 토요일
제목: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23:36-49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찌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니라.
질문
1. 나의 음란! 내가 담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묵상
어제 아침, 교장실에 갔던 동료들은 상처를 받고 돌아왔다. 정치색이라는 모함같은 왜곡, 큰 벽같이 굳어져 있어, 정말 잘해보고 싶은 열정과 순수한 마음으로 사정하러 갔던 동료들은 집단행위라는 말까지 듣고 왔다. 마음이 아프다. 관리자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입지는 분명 있지만, 후배들의 마음을 헤아려 들어보려는 마음, 본심과 본심끼리 마주하며 대하려는 노력이 아쉽기만 하다.
어제 중간 쉬는 시간에 교감 샘과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기독교인으로 일면 통하는 부분이 있고 서로를 신뢰하기에 이야기가 되어졌지만 결국, 변화의 주체는 성령님이시라는 결론이다. 그리고 계층 간의 골이 너무나 깊음을 본다. 지금까지 방법론은 많이 있어왔고 조금씩 모양은 달라져왔다. 그 가운데 취할 것은 취해가면서 또 버릴 것은 버리며서 배우고 성장해왔다. 그런데 어떠한 색깔로 국한해서 볼 때, 편협하다. 성장할 기회, 배워야 할 기회임에도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 게다가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외부적인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 나는 여전히 아깝고 안타깝다. 그게 나의 욕망이다.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야 하는 게 내 사명이다.
9월 30일 주일
제목: 녹슨 가마
에스겔 24:1-14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찐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일일이 꺼낼찌어다.
질문
1. 녹슨 가마,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못한 나의 죄는 무엇인가?
묵상
나는 여전히 섭섭하고 서운함이 있다. 12시에 만나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에 대한 논의 과정이 없는 것도 싫고, 12시에 못 와서 명절 준비가 늦어지는 것도 싫고... 일머리 있게 미리 준비할 것은 준비하고 함께 할 것은 함께하지 못하는 것 같은 일처리도 싫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건 나의 가증스러움 때문이다.
내 마음의 요동함이 없을 때가 이 생에서 과연 있을까? 얼마만큼이나 지나고 성숙해져야 가능할꼬~
10월 1일 월요일
제목: 표징
에스겔 24: 15-27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질문
1. 내가 보여야 할 표징은 무엇인가?
묵상
추석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자녀들을 옆에서 지키라고 하시는 말씀에, 내 속에서 원망이 나온다. 남편 자취하는 7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반찬을 보내주시지 않았던 분, 같은 시기였음에도 큰 아들, 둘째에게는 반찬거리며 찾아가서 뒤치다꺼리를 자원하셨던 분. 나는 솔직히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섭섭하고 서운하다. 어쩌면 그렇게 무심 하셨을꼬~ 온순해서 자기 요구조차 표현할 줄 모르고, 뭔가를 해주면 감사나 하지 자기 감정을 잘 만나지 않고 살아왔던 남편, 그나마 자기를 표현한 게 집을 떠나 엄마 멀리 취직한 것이 전부였다. 짠하고 안타깝다. 여전히 내 안에서는 홀대받은 것 같은 남편에게 밀착되어 어머니에게 서운함이 있다. 그런 것 생각하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그게 나의 악이다. 잘 해서 부모인가? 자신을 있게 한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인 걸!!
며느리가 넷이나 있음에도 설거지를 돕겠다고 서성이시는 어머니~ 나는 싫다. 어머니가 하실 역할이 설거지라고 생각하시는 어머니께 일할 사람이 이리 많은데 이 때에는 뒤로 빠지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려도 자유하지 못하고, 그게 당신의 역할인양 옷에 물을 묻혀가면서 서성이시니 나는 그 뒤에서 기다려야 한다. 설거지하는 것, 부엌일 그게 무슨 큰 일이라고 며느리 넷이 움직이는 부엌일에도 상관하셔야 한다. 게다가 여기는 어머님 집도 아니고 형님 집 아닌가. 당신 집이라면 또 다른 상황이겠지만... 막무가내 당신 뜻만 옳다고 생각하시며 전혀 듣지 않으시는 것 같은 모습이 싫다. 하지만 하루, 이틀... 괜찮다. 며칠 그냥 넘기면 될 테니까. 그러나 나와 같은 공간에서 매일 일상을 그렇게 함께 생활하라면 나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명절 며칠이야 그까잇것~ 그냥 넘길 수 있다.
일하시는 것도 거칠다. 부추를 다듬는다고 펴셨는데 밑바닥에 찌끼가 떨어져 있어도 안 보인다. 형님 역시 마찬가지다. 바닥이 더러운 건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모른 척 하고 싶다. 내 몸만 고달퍼지니까... 그런데 녹슨 가마, 나의 녹이라고 생각되었다. 판단은 하면서도 그 악이 보이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피하고 싶은 내 안에 깊어진 녹! 그나마 타협한 게 물티슈다. 형님네 걸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걸레 빠는 건 피했다. 결국 물티슈 한 통을 다 썼다. 식탁 밑, 바닥, 싱크대 문짝... 우리 집에 있는 묵은 때처럼 잘 벗겨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적용, 닦을 수 있는 만큼은 닦았다. 녹슨 가마처럼 잘 닦여지지 않는다. 시작이니까 그렇겠지.... 판단은 여기까지. 몸을 움직이니까 좀 낫다. 몸이 고되기는 해도 정죄는 덜하게 된다.
큰 형님이 아프셔서 수술하는 기간에 둘째 형님네 가 계시겠다는 말씀이 들리니 나는 답답하다. 로마에 학회 참석차 가신다는데 그 기간 아이들 때문에 가신다는데 큰 형님 입장에서 얼마나 서운할까 싶다. 아버님도 편찮으신데 이런 저런 생각 안 하고 당신 것만 찾는 것 같은 둘째 형님도 섭하지만, 당신이 하셔야 할 것과 안 하셔도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은 어머님의 태도에 무척 아쉽다. 어머님과 둘째 형님이 앉아서 하는 그 얘기를 듣고 큰 형님이 섭섭하시겠네요~만 말씀드리고 그 자리를 피했다. 며칠 입원은 안 하신다지만.... 친정 엄마도 아프셔서 못 오실 상황이실 텐데...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는 둘째네에 가계시다면... 그러고 보면 두 분이서 서로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해왔던 것 같다. 두 분이서 의존하다보니 이 집, 저 집일을 봐주다보면 꼭 겹쳐지게 되고 그 때 도움을 못 받는 한 쪽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그로 인해 불편했던 것 같다.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보니 그 중간에서 어머니가 중심을 못 잡고 계셨었구나 싶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그대로 적용하고 살았던 에스겔, 나는 그렇게 보여주는 삶을 산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나님 말씀이 내 하루 하루에 그대로 드러나게 하며 살아가는 삶! 잎만 무성하지 열매는 안 보인다. 하지만 말씀을 하루 하루 보며 큐티하는 문화속에 내가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공동체에 속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적용, 말씀을 보고 적용하려 하는 과정! 그게 소중하고 그게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10월 2일 화요일
제목: 열국 중에서
에스겔 25:1-17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붙여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 끊어 버리며 너를 열국 중에서 패망케 하여 멸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질문
1. 나는 심판의 사건 앞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가?
묵상
아침 일찍 부여에 혼자만이라도 다녀오겠다고 하고서는 한 번 더 잠이 든게 9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엄마는 내가 도착할 시각이라고 생각할 시간인데.... 남편은 아들들 시험기간이라고 옆에서 좀 봐준다며 가고 싶으면 나라도 가라 한다. 그렇게 늦게 출발했음에도 12시 쯤에는 도착해서 맛있는 엄마표 밥을 먹었다. 맛있다. 늘 젊은 엄마인 줄 알았는데 이제 울 엄마도 늙어 보인다.
복음 팔찌를 보며 엄마가 반가워한다. 성당에서 하는, 불평하면 팔찌를 다른 쪽에 옮기는 감사팔찌로 아신 거다. 물론 그렇게도 쓰이는데 복음을 한 눈에 보이게 만든 거라고 복음을 말씀드리니까 어떻게 말도 잘 만들었다고 하신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아빠가 쓰러지는 심판의 사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아빠가 만나시고 그리고 등록한 게 성당이셨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아빠의 타협점이 성당이었던 거다. 개신교의 이성적이지 못하고 치우치는 것 같은 교회 생활에 대한 반감이셨다. 늘상 남편은 복음, 말씀 훈련이 취약하고 혼합된 천주교인인 엄마, 아빠에 대한 걱정에 친정에 갈 때마다 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제시한다. 정말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 같은 아빠가 예수님을 인정하게된 것만으로도 나는 감지덕지! 평생 성실하셨던 모습 그대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약한 내 모습!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전폭적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잘 돕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목사님 책도 사다드리고 읽어보라 했지만, 아직 읽어보시지는 않은 것 같다.
엄마에게 혼자서라도 달려간 건 나만 사랑받고 싶은 이기심이었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나만 있는 것도 좋고, 엄마의 금붙이를 나에게 얼마 동생에게 얼마 준다는데 아무 말은 안 했지만 나에게만 다 줘도 좋겠다. 이것 저것 싸서 주시면서 엄마 죽고 나면 굳이 친정집에 올 필요 없다고 하신다. 얻어갈 게 없는데 가겠는가? 얻어갈 게 있으니까 빠지지 않고 다녀가는 나의 인간적인 이기심을 엄마, 아빠는 이미 알고 있다. 새벽 일찍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한 우리 집, 차 안 가득 이것 저것 싸주신 것들을 들고 들어가는 나를 맞이하는 아이들은 너무도 반긴다. 할머니가 챙겨주신 음식, 처음 맛보는 듯한 맛있는 국과 불고기라며 입이 찢어지고 할아버지가 전해주신 용돈에 신난다. 아침 일찍 서두른 보람이 있다. 아침상이 든든하다.
내 보기에 지혜로우신 엄마, 아빠지만 신앙에 뜨거움이 없다. 너무나 이성적이다. 큰 고모부, 막내 고모부의 사건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계시기에 감사하며 이 모든 게 구원의 약재료가 되기를 기도한다. 열국 중에 심판을 말씀하신 사건 앞에, 돌아오라는 주님의 메시지.....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10월 3일 수요일
제목: 영원히
에스겔 26:1-21
내가 너를 패망케 하여 다시 있지 못하게 하리니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질문
1. 영원히 망해야 할 나의 악은 무엇인가?
묵상
아들의 예약한 병원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와서 피곤한 가운데 잠을 자다가 깨어서 병원에 다녀오는데, 아들 시력이 그대로다. 원시라는 판정을 받고 계속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는데.. 이대로 변동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하시는 말씀에 그럼 이 안경을 평생 써야 하나요? 하며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어쩌겠어 이 상황에 순종하고 지내야지 말하니까 아들은 수긍을 한다. 살짝 촉촉해지는 눈시울을 보며 마음이 짠하다.
처음 아들이 원시라는 것을 알고 또, 양쪽 시력의 차이가 커서 조절하기 위해 안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나는 퍽 낙심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 한 쪽에는 안대를 하고 가려야 하는 처방을 잘도 따랐던 아들, 답답하고 불편했을 텐데도 잘 따라왔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건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자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달랐다. 핀을 삼켜 병원에 달려가기도 하고, 눈을 찔려서 또 검사하기도 하고, 여러 날 열이 펄펄 끓어 탈수 증세로 링거를 맞기도 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써야 하는 아들, 하나는 근시고 하나는 원시다. 발가락이 부러져서, 팔꿈치의 뼈가 골절되어 깁스를 하고, 입술 안쪽이 찢겨 꿰매고, 중이염으로 여러 날 병원약을 먹어야 했다. 백반증 진단으로 치료받으러 다니기도 하고 뇌수막염의 증상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친구와의 싸움으로 주먹에 골절이 와서 수술도 했다.
아들의 수고로 내가 연단된 게 맞다. 상황과 사건이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컹했는데... 이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넘어가지니까 공부 안하고 못하는 것으로 인해 괴롭다.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 자유함이 없다. 믿음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가 내 주제가이다. 나 같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있을 수 있을까. 학생의 때에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공부에 소홀히 하는 아들을 용납하기 힘들다.
김치 담그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잠시도 쉬지 못한 하루가 짧으면서도 길다. 그런 수고를 보면서 올라오는 생색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조롱, 아들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다. 앞으로 사지로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남편의 말에 감동을 받지만, 그건 순간일 뿐이다.
아들들이 그나마 수고하지 않았다면 얕보고 거들먹거리며 멸시하는 나의 죄를 어디서 용서받겠는가. 지금도 때때로 올라오는 멸시하고 자랑하고 싶은 나의 허울들, 두로가 받을 심판은 나의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심판을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나의 신랑되신 주님으로 인해 살 수 있는 인생임을 안다. 어마어마한 두로의 심판을 보며 내가 탕감받은 은혜로 인해 감사, 감사다.
10월 4일 목요일
제목: 나를 위한 애가
에스겔 27:1-3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지으라.
질문
1. 온전히 아름답다라는 나의 교만함, 심판받아야 하는 나의 교만함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의 말씀에 내게 임하여 들려진 말씀대로 순종하는가? 내가 애가를 지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묵상
여름 이불을 정리하기 위해 이불을 빨고, 청소를 하고 호박죽을 쑤기 위해 쌀을 담그고 호박을 삶고, 점심 준비를 위해 수제비를 준비하고, 말린 사과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사과를 썰고.....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나? 하는 온전히 아름답다라는 나의 교만함... 거기에 아들들까지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나의 교만함은 더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아들들이 수고함으로 부모 역할에 대한 한계를 알고 엎드릴 수밖에 없다. 어제, 형님과 동서에게 아들로 인해 괴로움을 얘기하며 기도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한결 낫다.
나를 위해 애가를 불러야 한다. 생명수의 원천, 상수원인 하나님을 망각하기에 교만함이 올라온다. 말씀이 내게 임하여 들려진 게 감사다. 그렇기에 나의 심판을 통해 깨어지고 슬퍼해야 한다.
10월 5일 금요일
제목: 네 마음이 교만하여
에스겔 28:1-10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찌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였으니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서 살육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찌라
질문
1. 내 마음에 교만함은 무엇인가?
묵상
씁쓸하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게 너무 많았던 충돌이다. 그 중 가장 큰 건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거다.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동료 모두가 동지여야 하는 게 핵심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이쪽도 저쪽도 무척 불편하다는 현실이 난 괴롭다. 그래도 내가 딛고 살아야 하는 삶의 터, 쇠잔한 마음에 오늘 이혁규 교수님이 기대된다. 주사 한 방, 큰 힘이 될 것 같다.
모든 게 하나님, 생명의 근원 하나님 보좌에서부터 라는 걸 인정하고 알면서도 내 현실이 인정 안 되는 나. 나의 불신이다. 15년 삶의 결론이라고 말하는 자식 고난도 괴롭고 우울하고~ 교직에 2-30년 몸담고 있는 선배와 후배들 사이의 갈등의 골도 참기 어렵다.
내 마음에 두로같은 교만함... 남편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자녀를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거기에 대한 감사함도 있지만, 내가 한 것 같다는 실오라기 같은 내 의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내 삶의 결론이라는 자녀, 오늘 내게 말하는 그 자녀의 행실이 불편하다. 나만큼 했으면 잘 했지 더 이상 어떻게 잘 해! 라는 내 의가 있다. 하나님의 자리에 어느새 내가 앉아 있다.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공급받아 그 날 그 날 사는 인생이면서도 내가 신 인양 살고 있는 나를 보라고 오늘 말씀하신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다. 결국, 심판으로 바다 가운데 바다 중심 가운데 죽어야 하는 인생이다. 내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내 영화를 더럽혀야 마땅한 교만한 인생이다. 말씀으로 해석 받으니 내 삶의 결론에 수긍이 되고 인정이 된다.
내가 다만 구할 것은 긍휼히 여김 받기를 바라며 심판으로 죽어야 할 인생, 예수 그리스도로 새 삶을 주신 것에만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야 할 인생 되게 하신 은혜에 감사, 감사할 뿐이다. 낙심한 중이지만, 오늘도 내게 찾아와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은혜 감사하며, 또 홀로 떠돌다 죽을 인생, 귀한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해석 받으며 살 수 있게 하신 인생에 감사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본질의 변화는 성령님으로 말씀으로만 가능함을 인생 중에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낙심하고 관계와 믿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내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③ 매일 낙심하고 우울하고 슬플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순간순간 기쁨으로, 영원한 기쁨으로 찾아와 위로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④ 귀한 지도자들을 세워주셔서 멘토로 세워주심에 감사하고 내가 혼자 가는 길이 아니고 함께 가는 길, 먼저 가신 분들을 따라 갈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⑤ 여전히 마음의 허무함을 좇아 로맨스 소설과 잠에 빠져 있는 나의 악과 음란함의 뿌리를 또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나의 현실을 인정하며 주님께 엎드려 살겠습니다.
3. 아들에게 부모의 때로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겠습니다.
10월 6일 토요일
제목: 고토
이사야 1:21-3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열방에 흩어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인하여 열국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토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할찌라
질문
1.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며 나는 내 고토에 거하고 있는가?
묵상
찬 기류에~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한 주! 말린 사과를 동학년에 나누고 함께 연수가는 후배들과 나눠 먹었다. 좋아하고 사모하는 강의, 이혁규 교수님이 오심에 고대하던 강의다.
또. 힘을 얻는 말씀 참 맛나게 말씀하신다. 에너지가 많이 쓰였던 한주, 만땅으로 다시 에너지 충전이다. 나 혼자 안 쓰면 불편해져서 저절로 따라 가게 되는 문화라는데, 그 말에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이미 가본 사람들도 있는데 이제는 길이 된 그 길, 게다가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 갈만하잖은가! 이 땅의 바른 생활 소년 같은 이혁규 교수님! 또 한 분의 아름다운 사람, 따뜻하고 감사한 만남이다. 교수님께 목사님 책을 선물로 건네니 더 기분이 난다. 여러 차례 만남에도 못 찍었던 사진도 찍었다. 찍길 잘 했다. 미소도 아름답다. 기분 내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초밥 뷔페집에도 들렀다. 배도 만족스럽고 다소 무거웠던 마음이 가붓해졌다.
전에 근무했던 동료들,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기분 좋다. 그러다가 한 사람, 움찔 굳어지는 나를 봤다. 내게 남아있는 서운함! 그 찌끼가 여전히 있다. 언젠가 길에서도 한 번 봤는데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고 가던 길을 갔었는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연수가 끝나고 어떻게 갈 거냐고 함께 가자는데, 저녁 약속이 있다는 내 태도에는 후유~ 안심이 묻어있다. 핑계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와는 같이 가고 싶지 않다. 나의 속좁음이다. 자기 기분에 따라 달라져서 언제는 상대가 보였다가 자기 문제에 빠져서는 보이지 않는 그 태도, 그것을 용납 못하는 건 나의 미성숙이다. 그 때는 한 공간에서 봐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가면같은 발랄함이 싫다. 마지막 떠나면서 정리하는 마음으로 목사님 책을 선물로 돌렸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 이야기 없는 그를 보고, 섭섭함과 괘씸함에 내 핸드폰에서 번호를 삭제했다. 그리고는 혼자서 얼마나 시원해했는지.... 상대는 모르는 나만의 복수를 한 거다. 신우회 내내 전혀 의지할 수 없었던 사람~ 기독 단체에서 신앙 훈련을 받았고, 교회에서 순장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력에 비해 내가 겪은 그는 신우회, 동학년에서도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인정하고 한 언어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믿지 않는 다른 동료가 더 편했다. 나의 신앙에 문제다.
지금 이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 점심 시간에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고 신우회 기도 제목에 기도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지만, 그의 행실은 너무도 거슬린다. 자꾸 안 보려고 하지만 보이기만 한다. 어제 연수에도 왔지만, 연수 참석의 이유는 단 하나, 자기 집과 좀 더 가까운 곳이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예상했던 것처럼 그는 갔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나 그의 행실에는 눈을 감고 싶다. 오히려 믿지 않는 분들의 철학이 기독교에 더 가깝게 보인다. 그럴 수도 있구나! 혹자는 양심에 거리끼지 않겠는가하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 그 책임감이 내게도 전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면서도 그의 주님이시기도 하기에.. 인간 관계, 참 힘든 부분이 많다. 나는 왜 그리 거슬리는 게 많은지 나의 예민함이다. 말씀 앞에 예민해야 할 나의 촉각이 사람에게 서있다. 어쨌거나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참 힘들고 어렵다. 나의 잇속, 나의 불편함의 뿌리 역시 돈이고 나의 잇속이지만 상대와의 마찰 역시 같은 뿌리다. 그들의 잇속만 챙기는 듯한 태도에 내가 과하게 반응하는 건 그게 나의 잇속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저녁에 집에 오면서 통닭을 사가지고 기분 좋게 아들들에게 건넸다. 저녁에 국을 먹었다면서 고마워한다. 아들들이 먹는 동안 청소, 빨래,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한데, 나도 모르게 라면을 사서 끓여 먹은 눈치를 알아차리고 물으니 그렇단다. 나는 특히, 먹거리에 있어 신경을 많이 써왔고 최소한 허락이라도 받고 먹기를 원한다. 순간, 배신감에 열이 오른다. 추석 명절이라 용돈이 두둑한 게 발단이다. 게다가 속이려고 했다는 게 싫다. 아들들 아무 말도 못한다. 생각하면 라면 하나도 지 맘대로 사서 끓여먹지 못하는 아들들에게 연민이 들기도 하지만, 미성년자이니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쁜 놈들~ 꼭 악을 행할 때만 마음이 맞아서 일을 도모한다. 다만, 엄마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가 아들들의 궁금증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해서 들킴의 축복이 있는 아들들이야~ 라고 말하니 우리들 교회 버전이라나 하면서 그게 어떻게 축복이냐 말이 안 된다고 꼬투리다. 근데 우리 아들들은 참 잘도 들키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한 번 일을 저지르면 꼭 들킨다. 오래 가지를 않는다. 그게 감사다. 더 좋은 건 그런 악을 도모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악한 인간이 그럴 수 있겠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기에는 나는 너무도 멀다. 순간 순간 하나님의 고토에 머물며 감사하며 천국을 누리지만, 역시 순간 순간 나의 죄 가운데 좌절하며 나의 악과 음란 앞에 무너진다. 특히 인간 관계~ 본심을 만나며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만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요동하는 나의 실체! 혈기 안 내는 게 순교라는 걸 알지만, 아는 대로 순교하기에는 너무도 멀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 순교한 적이 있었을까 성품으로 참았을 뿐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되기 위한 순종은 없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나의 고토에 거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들킴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인간 관계를 통해 나의 악을 보고 나의 실체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아름다운 분,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힘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④ 말씀보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남편 생일 준비를 해서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 갖도록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