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목요일
제목: 행음 이것을 보고도
에스겔 23:1-21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
질문
1. 오홀라의 행음을 보고도 음욕을 더하며 더 부패한 모습은 무엇인가?
묵상
슬프고 섭섭하고 서운하다. 속상하다. 아~ 그럴 줄 몰랐네!의 고백이 나다. 내가 믿어놓고는 내가 배신감에 서럽고 원망스럽다. 누가 믿어달라 한 것도 아닌데... 분별력이 아직도~이다. 내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한 것이었다. 시스템상 충분하게 받쳐준다는데도 싫단다. 그런데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기회에 나도 배우며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세우고 교육이 이런 것이야~ 하고 세상에 뽐내고 싶었다.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 말 타는 자들, 준수한 소년을 연애했다. 교실에서 티격태격, 표시나지 않는 에너지를 쏟으며 남이 알아주지 않는 교육 현실에서 뛰어 넘어보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그게 나의 음욕이었다. 세상에서 누가 뭐래도 그게 나에게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 않아~ 라는 교만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담그고 있는 그 곳이 이런 호기를 통해 변화의 핵심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참 달콤했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게 깨졌다.
간절함이 더했던 만큼 실망도 크고 슬픔도 크다. 결정이 어찌 나든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먼저는 사람들에게 원망도 들었다. 그리고 보니 결국 하나님께다. 하나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좀 봐주시지요.~ 그러면서도 혁신은 하나님 뜻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문화를 바꾸는 건 공동체를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변화를 통해서다. 함께 동시에 이뤄진다고 하면 말할 수 없이 효과가 극대화 되겠지만, 지금 여기는 아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미련이 있다. 하나님, 오늘 어떻게 안 될까요?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다. 내 맘같이 상대도 그런 마음일 줄 알았다. 나는 분별력이 없다. 덜컥 내가 선택해서 그러려니 믿어놓고는 화들짝 놀라고 쓴맛을 보고야 그때 배운다. 기운이 빠지지만, 왜 안 되었을까 싶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 하나님이 실패를 통해 더 배우게 하시는 게 있다. 싫어하신 게 뭐였을까? 하나님이 싫어하신 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시스템을 더 의지했다. 그 시스템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더 잘 하는 걸 원하시는 게 아님을 알겠다. 하나님은 자색 옷을 입은 준수함을 원하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정결함, 회개하는 영을 원하신다. 행음을 보고도 더 큰 음욕을 품으며 부패함을 사모했던 내 삶의 결론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내 신앙의 현주소를 사건을 통해 보고 드러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행음을 보고도 더 사모했던 나의 악과 음란, 나의 야망과 욕망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상한 마음에 말씀으로 어루만져주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깨지고 분열됨을 통해 내가 속한 세상의 실상을 보게 하시니 나는 하나님만 좇을 수 있는 공동체를 통해 분별함을 얻게 하소서
3. 한 번 더 찾아가 말씀을 드릴 때, 내 안에 남은 실오라기 같은 미련과 아쉬움, 오히려 생각하지 않도록 하나님 한 번 더 막아주시고 뜻이 아님을 확신하게 하소서
4. 인본주의적인 나의 세상 가치관을 도말하시고 말씀이 기준이 되어 십자가가 길이 되어 말씀대로 적용하고 순중하게 하소서
5. 나의 서운함과 섭섭함의 실상...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어쩌면 저럴 수가! 라는 그 말이 쏙 들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