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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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16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13~14)
토요일에는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진안에 있는 마이산을 등산하였고 주일에는 부산에서 처가댁의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여행을 겸한 관광으로 소중한 동료들과 가족들 간에 사랑을 나눌 수 있어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결혼하는 동서가 60살에 황혼 이혼을 하였으며 다른 여자와 동거하며 살고 있는데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므로 결혼식에 아빠의 자격으로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20년간을 정이 들었는데 처형과 이혼을 하니까 남보다 거의 못하는 관계에 이르게 되었고 결혼식 내내 어색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를 아는 나로서는 그 곳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새로 가정을 꾸민 조카가정이 하나님을 믿게해달라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은혜를 많이 받지만 사정이 있어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새로운 감동이 다가옵니다,
그 교회도 시작과 끝을 은혜로운 찬송으로 함으로서 분위기가 밝고 기쁨이 충만한 예배였습니다.
사실 처형 부부네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부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습니다.
함 몸인 부부가 서로를 위한 배려와 노력들을 덜하다 보면 상대보다 더 좋은 이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축복된 자리가 되어야할 그 곳에서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소중한 사람에게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제 서로 이별을 한 이상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동산에서 가족들이 함께 주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달으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인생에서 목숨을 걸어도 되지 않을 일들을 만나면 때로는 양보를 해야겠지만 가정이나 공동체의 존재를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그 일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부산을 오고가면서 “초밥 왕”만화를 2권보았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인생의 의미들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습니다.(아이들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다면 참 좋겠습니다.)
함께 도우면서 서로를 세워나가며 어려움들을 이겨내는 인내와 인생의 목표들을 추구하는 열정들이 삶을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 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15~22)
발람은 메소포타미아의 선지자로 모압왕 발락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가다가 나귀의 입에서 나오는 경고를 듣고 오히려 이수라엘를 축복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메시아의 탄생도 예언을 할 정도로 대단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는 계교를 발락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결국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선지자 노릇을 하였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발람을 묵상할 때면 인간의 나약성의 극치를 보게 되며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주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멸망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음이 나에게 경고로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에 다시 더러움에 얽매이는 것을 돼지가 더러운 집에서 사는 것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돼지는 더러운 집에서 항상 자신의 몸을 씻고 살지만 주님을 믿는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더러운 것들이 깨끗하게 씻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의 더러운 생각과 욕심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