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3;15-21
나는 뒤의 일을 잊어버리지 못하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잊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온갖 감정이 섞여서 올라옵니다. 그리움이 가장 절절하지만 미움과 원망도 올라오고 인생에 대한 회한도 섞여 옵니다.
인본적인 감정에 묶여 나가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낭만적인 감정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 온전히 이룬 자가 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뜻에 달리 생각하는 자인 것 같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지 못하는 지금의 나에게 하나님이 분명하게 나타내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내시어 분명하게 정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환경과 감정이 지금 어디에 이르렀든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나타내시는 그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거듭나기 전의 모든 환경 지위 권력 부와 명예를 다 잊고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앞으로 달려갔던 것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뒤엣 감정에 낭만적으로 감상적으로 혹은 자기 연민에 잡혀있지 말고 바울을 본 삼아서 그대로 행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일 수있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나의 연민에 쩔은 모습과 신세한탄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과 긍휼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나는 반도덕주의자도 영지주의자는 아닐지라도 나의 감상적인 사사로운 감정에 묻혀있는 모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고 외면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멸망에 대한 경고이고 하나님께 나의 욕심대로 채워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드러내기 부끄러운 생각이었고 아직도 땅의 일을 많이 생각하고 인본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입니다.
나의 인간적인 관계들이 객관화가 되지 못하니 내 뜻대로 이루어 내려는 욕심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 욕심대로 채워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땅만 바라보며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입니다.
천국에 가야한다고 가고 싶다는 바람은 있지만 내가 천국시민권을 가진 천국백성으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부딪치고 고민해야하는 것이 세상인지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기다리는 인내에 취약한 자입니다. 작은 유혹에도 합리화하며 모른 척하며 잘도 넘어가는 자입니다.
단지 내가 버티며 인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환경이 지지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종케하시는 환경을 주시고 사건을 주시는 역사로 연약한 나를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영광입니다.
결국에는 나의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낮은 몸을 영광의 몸으로 변케하시려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권이 있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틀에 갇혀 땅만 바라보는 자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바울이 편하고 안락한 권력과 부를 버리고
오직 주님께만 잡혀 좇아가는 그 모습을
내가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에 비하면 버릴 것도 별로 없는 자입니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