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주일
제목: 푯대
빌립보서 3:1-14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질문
1. 나는 오직 한 일은 잊어버리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가?
묵상
내가 한 일은 잊어버리고 예수님만 자랑하는 줄 속고 살았다. 일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태도에는 내가 한 일이라는 생색이 숨어 있었다. 우리 교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헌금 조회가 가능한데, 확인 차 들러본 것이 이제는 계수되는 헌금 총액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뿌듯하고 좋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이라는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전에는 아예 볼 수 없는 구조였기에 잊어버리고 산 것이었고 굳이 내 생색이 날까 떠들어보지 않았기에 모르고 지났던 것 뿐이다. 나는 여전히 예수님보다 나를 자랑하고 싶은 수준인 것이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내게 유익했던 이전 것을 다 해로 여기고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 그것이 나의 적용이어야 한다.
토요일에 결혼식을 갔는데 얼굴만 인사하고 밥만 먹고 나와서 내 볼일을 보려고 했는데 밥이 식이 끝나야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점심을 먹지 않고 허기진 배로 가긴 했지만, 늦어진 점심으로 폭식하고 있는 나! 가방 안에 교회 주보는 잔뜩 넣어 갔지만 우리 테이블에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주보를 나눌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최소한의 전도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오는 길에 친목회에서 준비해야 하는 물건을 사고 배달을 시켰는데 증정품을 준다고 했다. 국수 6개와 율무차 2개를 줬다. 그 때서야 나는 줄 것이 무엇일까? 싶은 마음에 복음 팔찌와 주보를 챙겨서 건넸다. 오는 버스 안에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서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흔쾌히 내 짐을 들어줄 때, 그 때서야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예수님이 생각나서 복음 팔찌와 주보를 챙겨 주었다. 나는 내가 먼저 주기보다는 먼저 받고서야 여유가 생겨 내가 줄 것을 찾는 것을 발견했다.
증정품으로 받은 국수를 들었다 놨다... 마침 받은 게 6개인 것이다. 처음 받았을 때는 직장에서 하는 심부름이니 동료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주일이 다음 날이니 망설임이 들었다. 목장 식구들 6명에게 나눠 주면 딱 맞을 것 같은 것이다. 삶 속에서 정직함을 강조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직장에 가서 나눠야겠다는 처음의 적용으로 내려놨는데 주일 말씀에서도 정직함을 말씀하신다. 그리 적용한 건 잘 한 것 같다.
내가 가야할 푯대를 종종 놓치고 잊어버린다. 좇아가다가도 내가 보이면 멈칫 거린다. 에수, 푯대를 놓치지 않고 달려가게 하소서~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고모부의 수술 경과를 지키시고 또, 수술 과정 가운데 고모부가 신앙 체험이 있게 하셔서 주님을 드러내는 간증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나도 속고 있었던 나의 자랑을 말씀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고 회개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잎만 무성했지 최소한의 적용, 교회 주보 나눔 할 생각도 배고프다는 이유로 잊어버리고 폭식만 한 나를 보고 회개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④ 나의 본질은 받았을 때에야 비로소 줄 것을 생각하는 편협함과 속 좁음 가장 좋은 소식을 듣고도 흔쾌히 전하지 못하는 수준없는 믿음의 현실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⑤ 증정품에 대한 적용에 대한 기준에 분별력과 지혜 주심에 감사합니다.
2. 교회 주보를 최소한 내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에게라도 전하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3. 고모부 병원과 교회 오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교회 주보를 돌리겠습니다.
9월 24일 월요일
제목: 천국 시민권
빌립보서 3:15-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자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질문
1.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살고 있는가?
묵상
아침에 교회 가면서 앉을 자리를 찾아가다가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앉으려 하기에 멈춰서 있는데, 짐을 들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앉으라고 한다. 아니라고 서있는데 뒤에 할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앉으셨다. 또 한 정거장 지나니 자리가 났다고 내게 앉으라고 일러주신다. 고맙다. 주보를 챙겨서 어떻게 갖다주나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다음 칸으로 지나신다. 망설이는 사이에 전할 기회를 놓쳤다. 최소한의 적용도 하지 못했다. 앉아 오면서 잠이 들었는데,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껌을 파는 할머니시다. 껌을 사면서 예수님 믿으세요? 하며 주보를 드렸다. 읽긴 하실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스스로 위안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이제는 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단지를 돌린다. 하나님을 믿는 분 같기도 하다. 돌리는 그 분에게 주보와 함께 2천원을 드린다. 그런데 정말 장애인을 위해 사용될까? 싶은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적용이라 여기며 안위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장애인에게 기부를 한다. 그 사람에게 주보를 전해야지~ 하는데 그 사람도 일어나서 내린다. 선행을 베푸는 몇 명에게라도 전하리라했던 나의 적용은 하나도 못했다.
이제 나와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전해야지 하는데 용기가 안 난다. 몇 번 망설이다가 내가 왜 무엇이 두려워서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민망함... 무색함... 그게 아직도 두려운 거다. 그리고 거절감... 무섭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임에도 나는 아직도 땅에 것이 두렵고 무섭다.
아침에 확인하는 문자, 작은 양말 선물에 고맙다는 문자에 흐뭇함, 고마움... 고모부가 아침에 갖다 준 멜론을 아주 맛있게 잘 드셨다는 그 말에 너무 감사하고.... 상대가 그런 표현을 안 해도 되지만, 안 한다고 해서 서운하지는 않지만 그런 표현에 나는 특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통하고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교제가 된다는 생각에 흥분한다. 홈페이지 댓글도 마찬가지다. 목사님 말씀에 대한 댓글도 늦게라도 올리는 게 사랑의 표현이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무척 의존적인 나는 사랑의 언어 가운데 말에 대해서도 민감하고 예민한 것 같다. 의존적인 사람이 지향하는 소통에 있어 말이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남편의 말에 뿅~ 가고, 말씀이신 주님! 하나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전율한다. 그래서 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말로 잘 표현한다. 그렇게 말로 잘 표현하는 사람과 교제를 잘 한다. 그렇지만 아직 분별력과 지혜가 없어서 그렇기 때문에 받는 상처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주는 상처 또한 있다. 나의 그런 것들을 보게 하시는 말씀의 구조, 공동체가 있어 감사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말로 표현이 되지 않더라도, 내 감정에 있어 소통되고 잘 통하는 사람의 언어를 상대가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의 언어를 배워서 천국 시민권을 받을 자답게 요동하지 않고 사명 감당하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서 전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표현이 달라지는 얕은 사랑이 아니라 성전답게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나의 약한 부분, 말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장점이 단점일 수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말씀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시고 공동체에 묶여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말씀이 곧 주님이신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 말씀에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표현하겠습니다.
④ 천국 시민권자 답게 성전으로서 사랑해야 함을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⑤ 남편의 사랑 표현, 나의 언어를 사용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 복음 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거절감, 민망함, 무색함도 뛰어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3. 나의 독특성, 민감한 반응력이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잘 사용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