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모습 그대로
(QT본문: 빌 03장 15절~ 21절)
2012-09-24 월요일.
[본문: 빌 3장 15절~ 21절]
[관찰]
푯대를 향해 달려감
1. 그러므로 바울처럼 푯대를 쫓는 경주자들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해 가야 하며, 혹시 다른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각자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든지, 지금까지 따른 법칙에 따라 계속 그대로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15, 16)
egrave;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성숙의 정도가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영적 성숙을 이루어 가야 한다.
하늘에 있는 시민권
1.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 하며, 자신을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라 권면한다. (17)
2.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다 말한다. (18)
3. 십자가의 원수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가며,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부도덕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즐기며,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세상적 가치기준에 따라 행동하니 그 마지막이 멸망이다. (19)
4. 하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자답게,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곳에서 오실 것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20)
5. 주님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이다. (21)
egrave; 여기서 '낮은 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있는 현재의 몸으로서 죄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 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육체의 연약성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썩어질 몸을, 당신이 부활하실 때 입으신 '영광의 몸' 즉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 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16절 말씀에 마음이 집중되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본문을, “우리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든지 지금까지 따른 법칙에 따라 계속 그대로 살도록 합시다.”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성숙의 정도가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나의 삶을 돌아보면, 어떤 목표를 세워 놓으면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 물불을 안 가리고 실행하며 달려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고 판단되면, 더 분투하여 그곳까지 가야 했고, 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꺼이 수고를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삶은 그런대로 남 보기에 결과 면에서는 부러워했을지 몰라도, 그 과정을 나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번 건강보험공단의 컨설팅 용역을 수주하는 과정에서도 나의 이러한 경향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처음에 입찰에 참여할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협력업체를 선정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하였고,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제안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말씀 묵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왜냐하면, 매일 저녁9시면 성경연구를 시작하여, 주석을 참고하고, 다르게 번역된 성경을 참고해 가면서 본문을 이해하고, 또 필요하면 관련 성구도 찾아가면서 말씀의 본 뜻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사용하였고, 이어 다음 날에는 늦어도 5시 경이면 일어나, 본문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애썼는데, 제안서를 쓰게 되면서는 마무리가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으니, 마음에 약간의 혼란이 온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 나는 저녁시간은 일 때문에 말씀연구를 하지 못했지만, 새벽에 일어나 묵상하는 것은 계속하였으니, 아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 잠도 안 자가면서 말씀을 붙들고 있으니 내 앞에서 피곤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은혜로 그렇게 열심히 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좋아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을 내 관점에서 아니, 저 분들은 왜 이렇게 못하지 하며, 그 분들을 판단하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모두가 마음에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열심을 내고 싶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육신이 약해서, 피곤해서, 또 무엇을 해야 해서 … 하는 이유들이 있어 그 모습을 부러워만 할 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저울질 하고,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얻고 누리고 있는 이 은혜가 이토록 좋고 귀한 것인데, 왜들 이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있어왔던 것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런 마음에 경종을 주시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시되 각각 서로 다르게 독특하게 창조하시고, 그들을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들에게 맞게 양육해 가신다고 말씀하신다.
또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에도 각각 다르게 사용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모두가 사도 바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다 스데반이 될 수도 없다.
어떤 이는 바울처럼 살다가 데마처럼 세상으로 나가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비록 선교를 하다 실패하고 돌아온 마가처럼 살지만, 다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복음서를 기록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마가로 복귀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다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그 사람에 대한 계획하심에 따라, 섭리에 따라 이렇게 사용되기도 하고, 저렇게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내 기준으로 바라보면 다양한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보다 내가 먼저 앞서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내가 은혜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루어 가시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손길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또한 그들을 위해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니던가?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내 안에 성령님을 보내 주신 예수님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다들 예수님의 핏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는 성도들이요, 성령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무슨 판단을 하고, 무엇을 더 낫다 할 것인가?
용납하고 수용하고 중보하며 함께 이 길,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리라 주님께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의 관점에서 연약한 지체들을 판단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저 자신도 세상가치와 혼란하여 살면서 세상 속에서 살았던 탕자였는데, 지금의 충만한 모습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며 비판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하셨는데, 저는 사랑도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왜 저렇게들 찌질한가를 생각하였으니, 제가 진정 찌질한 자임을 자백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덮어 주옵소서.
주님이 없이는 이렇게 사랑이 없고, 교만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모습이오니,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할 수 있도록 주님 오늘 하루도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