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의 잣대가 아닌 말씀의 자로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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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12
2007-04-12 스가랴 (Zechariah) 2:1~2:13 ‘이분법의 잣대가 아닌 말씀의 자로’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아침에 참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주보 인터뷰 기사 올리느라 끙끙대다 오후가 되니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어차피 주님이 불기둥으로 지켜주실 텐데 장광을 척량하면 무엇하나?
그리고 같은 핏줄의 백성과 육축만 사는 게 아니고
강권하여 데려올 이방 민족과 그 소유도 있을 텐데
경계선을 미리 그을 필요가 있겠는가?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포로 생활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영적인 순간에...
예를 들면 목장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서 리뷰를 하면
몸이 나른해지고 허탈감이 밀려올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시원한 막갈립니다.
포로 시절에 濁 불문하고 마셨지만 소주는 생각하는 자체로도 죄스럽고
막걸리는 우리 조상들이 먹던 밥이라는 생각에, 생각만으로도 침이 솟습니다.
포로 시절에는 참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이익이 남느냐 손해를 보느냐로 구분되는 생업이 그랬고
가까이 할 사람과 멀리할 사람의 인간관계도 그랬고
먹고, 즐기고, 가끔 베푸는 일상은 늘 이분법의 원칙 속에 돌아갔습니다.
당시 내가 잘 했고 많이 했던 일 중의 하나가 소송이었습니다.
민사 소송에는 조정 제도가 있긴 하지만
언제나 승패를 봐야 하기에 내 생리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돌아와 머리가 깨이고 가슴이 뎁혀지고
자유 의지마저도도 성령의 감찰을 받으니,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성령님께 물어보지만 이해하기 힘들 거라 생각하시는지
시원한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불쑥 불쑥 올라오는 무엇이 있는데, 혈기는 아닙니다.
그냥 꼬인 꽈배기 같은 감정...그 때마다 주시는 말씀은 ‘입을 잠잠히 하라’
말을 많이 하면 경망스러운 사람이 되고
글을 많이 올리면 실업자라 정죄 당하고...백수는 글 올리기도 어렵습니다.
남의 말을 옮기면 안 되는데, 그 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분별이 어렵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힘을 좀 실어 말하면 가르치는 것이 됩니다.
목자가 되니 교만과 겸손에 대한 권면으로 귀가 따갑습니다.
분별이 안되고 지혜 없음을 느낌에 내 안에 하루 속히
포로 생활의 잔재를 씻어줄 영의 성전에 대한 소망이 간절해집니다.
오늘 본문의 성전을 묵상하며
내가 지을 영의 성전과 공동체의 육의 성전과
그 성전에 벽돌 한 장 보탤 내 상업과 밭을 간구함에
영의 성전은 장과 광을 무한히 넓혀 주시고
육의 성전은 알맞게 허락하시고
내 상업과 밭은,
이분법의 잣대가 아닌 말씀의 자로
늘 재단하고 감찰해 주시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