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수요일
제목: 죽는 것도
빌립보서 1:12-26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질문
1.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는가?
묵상
김우현 감독님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봤다. 재완씨와 창희씨... 하나님 앞에 내가 살아서 주님의 기쁨이 되겠다는 고백, 온전한 몸이 아니지만 ( 그 온전함이란 누구의 기준이던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그의 고백에 감동이 온다. 특히 감독님.. 작고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그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그의 영상은 감동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영상으로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면 그게 기쁨이고 기쁨인 것을... 나는 내가 죽는 게 섧고 내가 늙는 게 서럽고... 나만 찾고 볼 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천국 소망을 가진 재환씨와 창희씨, 김우현 감독님은 그리스도를 노래한다. 사나 죽으나 삶의 현장에서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노래한다. 아~ 나에게조차 감동인 것을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떠하랴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어제 아침에 내가 도착하기 직전, 그 찰나에 사건이 생겼다. 장난치며 뛰다가 사물함에 부딪히면서 귓볼이 찢긴 것이다. 꿰매야 했다. 나는 생각해서 어느 병원에 가서 처치 받기를 원하냐고 물었는데... 경황이 없고 놀라서였겠지만 반응이 퉁명스럽고 싸늘하게 느껴진다. 애 봐준 공은 없다고 섭섭하고 서운하다. 나는 뭘 그리도 바라는 게 많은것인가. 그걸 갖고 서운함을 느끼는 내가 미성숙해 보여서 또 싫다. 낯선 이들과 함께 병원가야 하는 입장을 생각해서 다른 분에게 부탁하고 따라나서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허하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늘 들어왔지만 한 쪽 마음에서 어떻게 내게 그렇게 대할 수가 있는가? 라는 섭섭함이 번져온다. 억울하다. 내가 어떻게 했다고... 그러고 보니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밑바닥에 쌓였던 찌끼들이 하나, 둘, 올라온다.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다. 나만 보인다. 내가 섭섭해서 속상하고 나를 안 알아줘서 억울하고. 입으로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라지만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나는 무너져있다. 저녁에 본 재완씨, 창희씨, 김우현 감독님의 일상과 너무도 대조된다. 사랑하며 노래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아름다움! 세상은 내가 영향을 주어야 할 대상임에도 거꾸로 세상이 내게 대접해주는 대로 나도 세상을 대접하려 하고 있다. 진정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사람이 맞는 것인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대접받지 못함도 내가 죽는 수치를 당해도 유익함이다. 내가 미완성인 채 어찌 되었든지 그리스도 한 분이면 완전한 100점짜리 인생!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는 거니까.
제발! 현희야, 그리스도를 보자. 너를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보자. 어느 순간이 되었든지 그리스도만 바라보자!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신우회 2학기 첫 모임을 갖도록 한 사람을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② 얼굴이 아니고 귓불이 다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치게 한 게 아니고 혼자 뛰다가 다친 것도 감사합니다. 두려움에 울다가 잘 진정되어 참는 가운데 잘 처치받을 수 있도록 옆에서 코치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③ 비록 연약하여 그리스도만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④ 온유한 자는~ 을 통해 아름다운 하나님의 걸작품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로 모두 유익함을 알고 죽게 될 때에도 서운하거나 섭섭해하지 않고 감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