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금요일
제목: 이러므로 그러나
이사야 30:18-33
질문
1. 이러므로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으나 그러나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려 기다리시고 긍휼히 여기려 일어나시는 일은?
묵상
근 한 달 만이다. 계속 큐티를 정리하고 내 삶을 돌아보고자 하면서도 마무리가 안 되고 안 되고... 미루고 미룰수록 가라앉고 가라앉아, 무거워진 맘에 우울감까지... 털어내지 못한 찌끼들이 뭉쳐진 큰 덩어리들에게 눌렸다.
난 본래부터 안 되는 인생이었다. 내가 내가 내가~ 뭔가를 하고 싶은 주체자이자 주인이고 싶은 나의 욕심, 내가는 본래부터 안 되는 인생임을 전에도 알고 있었으나 무지한 나, 또 잊고 있다가 다시 알게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인간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가? 내가 아들들 양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내가 생색내지 않고 남편 섬김을 하겠는가? 내가 말씀을 제대로 읽고 인생의 해석이 가능한가?
나의 한계를 만나는 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만나니 내가 객관적으로 보인다. 나는 오로지 주의 은혜로 오늘을 사는 인생임을 다시 깨닫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찬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안 되는 원망이 숨겨져 있었다.
복음 팔찌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겼다. 왜냐면 불평과 원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 내 삶의 결론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지만 가슴으로는 인정이 안 됩니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봐야 하나요? 내가 말씀이 없었나요? 사랑이 없었나요? 내 삶의 결론이겠지만,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밑마음에서부터 나는 인정이 안 되고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슬픕니다. 인생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그리고 인생이 무섭습니다. 감당이 안 되고 힘이 듭니다. ”
모태 신앙, 나는 그 생태를 알 수가 없다.
이사야서를 지나오면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 자기 이익만 찾는 것 같은 직장 동료, 겉도는 듯한 상담, 뭔가 불편한 목장, 오차원 숙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기,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큰 동생네, 늘 바빠서 무심한 것 같은 남편, 정신 차려서 공부하지 않는 것 같은 아들. 고모부의 2차 수술, 시아버님의 결핵과 방사선 치료, 남편을 통해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아들을 방치하지 말고 잘 가르치라는 간섭같은 지적, 반 아이의 이혼, 그런 모든 것들은 인간관계의 부딪힘이었고 나의 게으름이라는 병이었다. 생색에서 나오는 서운함,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갈급함, 소통하며 관계를 깊게 맺고 싶은 깊은 유대감, 채워지지 않는 것들로 인해 무거운 우울감에 질척이며 외로웠다.
그리고는 그의 끝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었다. 하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간 것을 싸울 때 사용되다니.... 다 아시잖아요. 다 아시는 분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막아주실 수도 있었잖아요~ 허물을 알고도 덮어주셨던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 그것 역시 오히려 나의 원망이 되다니... 봐주었던 게 잘못이었던가? 참 잘도 싸운다. 남탓을 하자니 끝도 없다.
주일날 아침에 새벽 기도를 하러 가는데 멀리서 보니 한 할머니와 5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싸우고 있었다. 아들이랑 가면서 “왜 싸우신대?” 하며 약간 불편함으로 그냥 지나가야 하나 끼어야 하나 살짝 망설이는데 느닷없이 50대 여자분이 벽돌을 집어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가 말리는데 가지를 따가다 걸려서 할머니가 뭐라 그러자, 내가 어디 가져갔냐 저기다 놓지 않았냐 반말은 물론, 욕설도 과감하게 쏟아낸다. 그러면서 이제는 멱살을 잡았으니 물어내라고 소리를 지르고 갑자기 안경을 벗어던지더니 내 안경을 왜 훔쳐갔냐고 소리를 치는데... 말리러 들어간 나도 어이가 없어 그 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 안경 있지 않냐고 왜 그러시냐고 하니까 내가 원래 안경이 2개 였다나? 결국 또 벽돌을 집어드는 아주머니를 붙잡으며 지나가는 아저씨를 부르고... 할머니는 봉변당할 뻔 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시지만 나는 혼을 다 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남 탓하며 핑계대는 게 꼭 나같다. 하나님 앞에 억지 부리는 내가 그 아주머니 같다. 미친 척 하며 난동을 부린다. 하나님이 어쩌면 내게 그러실 수 있냐고? 그런데 그렇게라도 한 번 하고 트집을 잡아보는 게 마음이 시원하다. 괜한 트집인 줄 알면서도... 내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해야 좀 마음이 편하고 꼭 미친 아주머니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나! 그 아주머니 그렇게 난동을 부리더니 순한 양이 되어 아파트 주변을 하염없이 돌더라. 꼭 나같이 하나님 앞에 난동 부리다가 맞습니다. 하고 내 힘이 빠져서 걷듯이... 그리고 그렇게 꼭 나같이 그러는 사람들이 싫다. 칼과 창으로 받아치며 내지르는 것, 자기들 멋대로 자기 기준에, 자기 기분에 내키는 대로 막 해대는 무례함이 싫다. 낫과 보습이 그립다.
토요일 아침, 구원과 회복을 말씀하시는데 화요일부터 시작한 덩치 큰 우울감이 점점 희석되더니 수요 예배와 목요 모임, 그리고 토요일 말씀을 들으며 점점 회복이 되었다.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원치 않고 도망하여 남은 자는 산꼭대기의 깃대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하셨다.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다시 숨기지 않고 스승을 보고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말소리가 귀에 들려 정로,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다.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그 날! 달빛은 햇빛같고 햇빛은 일곱 날의 빛과 갈 것이다. 그 날에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것같이 노래하며 악기를 부렴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여전한 상황과 환경이지만, 말씀의 힘이다. 밝은 빛,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로 마음이 즐겁다. 나를 보는 객관적인 눈, 말씀으로 조명하며 나의 악들이 드러나게 하시니 오히려 마음이 즐거워진다. 상처네~ 아프네~ 하니 더 이상 상처도 아픔도 아니다. 이제 싸매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을 누리면 된다. 여전히 가야 할 길, 또 무거워졌다고 늘어져서 투정도 하겠지만 공동체에 묶여서 한 걸음, 한 걸음 성령님 인도하심으로 걸어가는 길! 기다리시고 일어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에 매여서 저 천국에 갈 그날까지, 내가 순교할 그날까지 걸어가겠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말씀이 들리는 상황과 환경 주심에 감사합니다.
② 귀한 공동체에 묶여서 함께 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③ 쇠잔할지라도 또 걸어갈 힘 주시고 기다리시며 일어나시는 주와 함께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④ 내 삶의 결론이지만 그러나 주께서 은혜로 싸매 주심에 감사합니다.
2. 아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겠습니다.
3. 남편의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며 순종하겠습니다.
9월 18일 화요일
제목: 그리스도의 심장
빌립보서 1:1-11
질문
1. 나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는가?
묵상
빌립보서 어느 말씀이었는지 모르겠다. 떠나시는 전도사님이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말씀이 빌립보서였다. 나는 슬픈데 기쁨을 말씀하시며 가셨었다. 빌립보서를 펼 때마다 그 전도사님이 떠오른다. 복음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걸 기뻐하셨고 그렇게 고백하셨다.
나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무리가 없다. 그냥 사랑할 뿐이다. 내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으면 사랑하고 그게 아니면 내 문제에 촉급하여 보이지 않고... 그게 반복이다. 그게 남편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고... 그게 나의한계이다.
오늘 빌립보서 말씀을 읽으며 심히 은혜를 받는다. 바울의 사랑이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그렇게 못하고 있지만 바울의 그 사랑을 받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귀하고 기쁘다. 복음 안에서의 교제는 시대를 초월하는구나! 그 사랑,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모하는 그 사랑은 지금 살아있는 게 마땅하구나! 여전히 그 사랑은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자들에게 전달되겠구나! 너무도 감사하다. 내게 그런 사랑을 들려주는 바울!
아직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내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는 그 말씀에 내게 희망을 본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해주시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음에 감사하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귀한 믿음의 동역자를 말씀 가운데 만나고 교제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신앙 안에서 교제했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예수님을 알려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③ 나의 연약함보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망을 보고 확신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2. 오늘 있을 신우회의 교제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나누는 사모함이 있는 나눔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아들과 남편과의 교제가 복음 안에서 감사하며 기쁨으로 간구하는 아름다운 교제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4. 교회 공동체와 목장이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