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과 쫓을 것
(QT본문: 사 29장 15절~ 24절)
2012-09-15 토요일.
[본문: 사 29장 15절~ 24절]
[관찰]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1. 어두운 곳에서 몰래 음모를 꾸미고 있는 유다에게 재앙이 임할 것임을 선포하는 이사야 선지자.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누가 우리를 보며, 누라 우리를 알겠느냐?” 한다. (15)
2. 유다는 하나님을 자신과 같은 피조물로 여기며,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고, 부정하고 있으니 잘못되었어도 아주 잘못되었다. (16)
심판 후 받을 축복
1. 머지않아 삼림은 경작된 평원이 될 것이며, 경작된 평원은 삼림이 될 것 같이, 권세자들은 낮아질 것이며, 억압받던 백성들은 높아질 것이다. 귀머거리가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소경들이 눈을 떠서 보게 될 것이며,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다. (17~19)
2. 이는 포악한 자와 오만한 자들이 자취를 감추며, 악을 꾀하는 자들도 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20)
3. 남을 중상모략하고, 재판관을 괴롭히며, 거짓 증언을 하여 죄 없는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다. (21)
4.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야곱 족속에게 “수치와 수모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길 것이며, 마음이 삐뚤어진 자도 진리를 믿게 될 것이며, 불평하는 자도 가르침을 받으려 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22~24)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버릴 것과 쫓을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먼저, 버릴 것은 자신의 계획과 불신앙이다.
유다는 어두운 곳에서 몰래 음모를 꾸미며 하나님께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누가 자신들을 보며 알겠느냐 한다.
이런 유다에게 화 있을찐저라고 선포하는 이사야 선지자.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5)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
자기가 왕이다.
그러니 자기 마음껏 계획하며 제 멋대로 산다.
그런데 하나님을 벗어난 인간의 계획과 삶은 어둠이다. 도피다. 두려움이다.
아담이 그랬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창3:8~10)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로 숨었으며,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답변한다.
하나님 버리고 나 혼자 살아야 하니, 내 성 쌓고, 내 스스로 나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숨고, 향락에 숨고, 돈에, 명예와 권력에 숨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16)
창조주 하나님에게 나를 창조했다고? 하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의심하니, 그 꼴이 가관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화 있을찐저”라 말씀하신다.
인생에서 겪은 고난, 고통…이 모두가 내 중심, 하나님 불신 때문에 받은 “화”가 아니던가?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회개의 외침에 조용히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자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그리고, 쫓을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대한 열정이다.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18, 23, 24)
그 날에는 못 듣던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며, 불평하던 자도 가르침을 받으려 하니,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의 회복이다.
모처럼 터진 일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 아침 일찍 거래처에 나가 제안서 작성 팀과 협의를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맡은 부분에 대한 제안서 및 PT자료 작성에 몰두한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늦은 시간.
또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마주하여 음성을 들으며 내 마음을 아뢰고.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바쁜 중에도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열정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도록 내 마음을 붙잡아주시고, 피곤한 중에도 하나님과 대면하게 하신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40:29~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매일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게 하시니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릴 수 밖에 없게 하신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회복되면 따라오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포함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공의의 하나님
항상 이 둘이 균형을 이루며,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면서도,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의 의에 바르게 살아가는 태도가 옳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있을 때, 신앙은 불균형을 갖게 되며, 성장이 더딜 수가 있다.
이 때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구한다. 하나님께서 이 신앙의 균형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나를 붙잡아 달라고.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버릴 것과 쫓을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음의 왕좌를 자신이 차지하고, 하나님을 불신앙 하는 것이 버릴 것이며, 말씀에 열정을 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쫓을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 때, 주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삶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주님, 힘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