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오픈 시리즈(살인자 부부의 사랑이 뭐길래)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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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06
33.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잉태한 태아가 낙태당하는 순간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었을까
어머니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민 오자 마자 우린 자연 피임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때 아가들이 8살. 6살,1살이였습니다
둘다 직장을 갖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었네요
한 사람은 벌어 렌트비 내고 한 사람은 벌어 생활비를 충당하며 살던 나날들이였네요
그때 우린 살인을 했습니다
가슴 아파요
가끔 그 아이를 생각해보아요
그 아이도 분명 사내였을텐데 컸으면 막내 아들이 훨씬 덜 외로왔겠지 라며.....
아이를 낙태하고 제일 힘든 것이 있다면 아가를 너무나 확연하게 죽었다는 그 죄책감이였습니다
용서를 아무리 해주신다해도 선뜻 용서를 구한다는 것도 괴로왔으며 또한 용서로 씻겨내려가기엔 오래도록 아팠던 기억!
태반속에 엄마의 양분을 받아야만 생명의 숨결이 유지되는 태아-
그러나 생명을 잉태케한 장본인들로부터 싫어버린바 되여 한순간에 엄마의 탯줄로부터 끊겨져 죽어지는 그 참담한 고통을 오늘 주님의 부르짖음과 함께 생각해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낳아 키우신 목적이 이렇게 살인자 부부를 위해 속건 제물이 되는 것이였음을 다시 확인하니 아버지 사랑을 마치 처음 만나는 첫사랑인양 낯설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 53:10)
주님께서 큰소리를 지르시며 운명하실 때 주님과 다른 공간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봅니다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것과 그분께서 가장 내게 주고 싶었던 것-
주님께서는 그 소원이 바로 유월절 마지막 만찬이였음을 보여주셨지요
내가 너희들과 함께 이 만찬을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고백하신 것을 보면....
그럼 나 역시 내가 원하고 원하는 것이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였을까?
그렇다면 왜 주님과 나는 그 간절한 원함이 있어야했을까?
그것은 지성소안으로 들어가고픈 나의 원초적인 영혼의 바램때문이였습니다
이생의 험산준령 온갖 시련 후 거기서 만나 영원히 나와 함께 살고픈 주님의 열망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지독한 삶의 열병을 앓으며 살아 온 사람입니다
지성소안으로의 출입이 왜 그리 중요할까요?
거기엔 아버지의 온갖 영광의 빛과 거룩한 성품의 빛과 영생의 빛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 앎은 얼마나 바닥을 치고
내 사랑은 얼마나 바닥을 기는 형편없는 몸부림인지요?
그런순간마다
왜 날 울 주님 거기로 안내하사
그 지존하신 자
그 거룩하신 자의 품안에 안기게 하셨는지
오직 사랑이였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새겨보고
그럼으로인하여
사람 사랑하는데 가면갈수록 투명해지고 순수해지고 거룩해지는 내안의 속사람을 보며
정녕 그분께서도 내안에 구별된 지성소를 만드사 내 맘 그윽한 향기속에 머무시기를 얼마나 사모하셨던 자이였는지...
그리
그리
내 영과 주님의 영으로 부등켜 안고 울다보면 세상모든게 왜 그리 초연하게 흘러가는지.......
이리 죽어도
이렇게 여기서 단숨에 숨이 막혀도 여전히 그 속사람으로 인하여 나는 다시 살리니...........
사랑이 뭐길래
도대체 내가 얼마나 울 아빠의 애물단지였으며 울 주님의 애끓는 사랑이였으면
그렇게까지 자기 몸을 찢고 찢어가며 지성소를 가리우고 있었던 그 두터운 휘장같던
내 억겹의 죄를 갈라 죄의 힘을 잃어버리게 하셨는지.......
나는 아직도 그 구속의 사랑과 인애엔 철부지인데 그럼에도 그 뜨거운 주님의 피와 살로
연합된 이 몸도 주님처럼 이 몸 떼어줌에 망설임 없는 것은 어인일인지요?
그래 나는 내가 아직 죄인이였을 때부터 날 위해 죽어주심으로 그 사랑을 여실히 확증해준
주님 말씀속에 죄인의 시절부터 연합되어졌던 내 몸을 한 조각씩 한조각씩 이렇게라도 떼어주고 있나봅니다
마지막으로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의미심상하게 설명해준 헨리나우웬의 글을
인용해 올립니다
1)가지사(take/took)
2)축복하시고(blessed)
3)떼어(broke)
4)주셨다(gave)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네 개의 동사를 근거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1)선택받은 자
2)축복받은 자
3)상처받은 자
4)나누어주는 자라고 선언하였다지요
선택
축복까지는 얼마나 좋은지요
허나 상처앞에서는 고개를 설레 설레 내저을 수 밖에 없는 나-
이런 내게 모진 십자가의 상처로 다가오시는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너도 나처럼 몸과 맘이 찢겨나가지 않으면 결코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없는 자라는 것을......
그런의미에서 제 자식 자기 스스로 죽인 이 아픈 가슴의 살조각과 그렇다고 그 아가없어 더 편한 삶이 아닌 오히려 휘어지게 더 곤고했던 삶의 등가죽을 이렇게 벗겨놓고 갑니다
보시고 마니 마니 때려주시고 그대들 속이 다 후련하도록 질겅질겅 밟아주세요
부탁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