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
(QT본문: 사 29장 01절~ 14절)
2012-09-14 금요일.
[본문: 사 29장 01절~ 14절]
[관찰]
유다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
1. 한 때 다윗이 살았던 성, 해마다 절기를 맞아 하나님을 예배하던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내리실 심판으로 슬퍼하고 통곡할 것이며, 번제단처럼 불에 타버리고 말 것이다. (1, 2)
2.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보내셔서 예수살렘 사면으로 둘러 진치게 하시고, 대를 쌓아 그들을 치게 하실 것이다. (3)
3. 장기간의 포로생활로 그들은 극도로 쇠약해질 것이며 멸시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4)
4. 그러나, 그럴지라도 예루살렘을 치는 적군의 무리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 (5~8)
무시된 경고와 그 결과
1. 하지만 하나님의 경고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로서 올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여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은 지도자들의 눈을 감기고, 머리를 둔하게 하실 것이다. (9, 10)
2. 이로 인해 유다 사람들에게는 모든 묵시가 마치 봉쇄되어 버린 책처럼 되고 말았다. 읽고 쓸 줄 아는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영적 통찰력이 없어서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무식한 일반 백성들은 글을 알지 못해서 그 책을 읽지 못했다. (11, 12)
3.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경외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오래 전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말았고, 형식적으로 외식적인 종교언어 만을 지껄여대고 있으니, 이것이 예루살렘의 모습니다. (13)
4. 결국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자로부터 지혜를 제거하시고, 명철자로부터 총명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14)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 2, 13)
유다의 영적인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나, 이는 겉만 번지르르한 위선적 경건의 모습일 뿐이며,
또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가르침을 받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이 안 계시니, 몸으로 드리는 제사가 형식적일 수 밖에 없고, 입술의 고백이 진실할 수가 없다.
그저 종교용 형식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이에 선지자를 통한 말씀의 선포 속에서 하나님의 애통함이 느껴진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한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겼던 다윗의 영광이 있던 곳, 예루살렘 성이건만, 백성들의 예배(제사)가 그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절기의 하나일 뿐, 마음과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이를 어찌하여야 좋단 말이냐? 하시는 하나님의 절규를 듣는다.
이어서 각종 짐승들의 피와 살로 드렸던 희생의 번제단을 백성들의 피와 살이 드려지는 처절한 번제단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음성을 듣는다.
아벨과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지만,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백성들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시는 것이다.
왜?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해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니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11: 4)
그러니까 아무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과 만나 교제를 하며 종교용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라면, 그 모든 것이 종교활동은 되지만, 헛수고일 뿐이라는 것이다.
교회 나온 것으로 위로를 받고, 안심을 해도 그것이 자기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심으로, 전인격으로 제사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6, 7)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아벨에게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다루신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이어서, 네가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언제든지 기회를 틈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죄를 다스리라 말씀하신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그의 죄 때문이었으며, 결국 자신의 회복된 전인격을 하나님 앞에 드리지 못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마음도 떠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으니,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활동과 종교언어가 판을 친다.
삶의 현장에서, 교제에서, 예배에서 이런 모습뿐이니,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에 맞을 수 밖에…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내 마음을 때린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전심으로, 전인격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넘치는 은혜를 받아 누리는 인생이 되어야겠다.
오늘도 주께서 내게 은혜를 주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벨과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전심으로, 전인격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가인과 같이, 믿음도 없고, 범죄하였음에도 이를 회개하지 않고, 믿음을 회복하지 못한 채 드리는 예배와 제물은 하나님 앞에 헛수고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지은 죄에 대해서는 무시로 하나님께 회개하게 하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어느 곳에 있든지 살아낼 수 있도록 주님 힘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진행중인 제안서 작성과정에 함께 하셔서, 지혜주시고, 힘주셔서, 하나님의 은혜과 평강을 풍성하게 경험하는 귀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