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오픈 시리즈(배반의 키스)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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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4.02
1999년 봄-
하나님께서는 남한의 동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남해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각각 그 해안마다 파수하는 파숫꾼들을 또한 보여주시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내려주시는 은총의 비라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 그 은총의 비에 감사는 하면서도 하나님께 심중으로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더 보고싶은게 있다면 저 북녁에 내리는 은총의 비인데 왜 북녁은
보여주시지 않나요? 아직 때가 안되었으니 좀 더 기다리라는 싸인인가요 라고.....
주님은 여전히 제게 대답이 없는데 마침 조국에서는 어게인 2007 평양 대부흥을 사모하는
영적 기류가 형성된 것을 지켜보며 이 영적기류가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밖에는 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마악 빠져 나간 푸른 새벽으로 텅빈 공간에 새싹처럼 돋아나는 아침의 연한 빛들과
함께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어게인 2007년 평양 대부흥회 를 사모하던 주님의 남여종들의 기도소리를 듣는듯하네요
그 사모했던 뜨거운 열기들이 사모하는바 그대로 다시 부흥의 파도가 평양에서 일어나기까지
기도하기보담은 역사적인 그 날이 지나가듯 지나가는 기도나 행사나 경건의 모양으로 끝내버린다면-
아~아~
나는 얼마나 나를 더 용서할 수 없을 것인가?
진정 내가 내 죄로인하여 분단의 비극이 온 자라고 오픈한 사람이라면......
내 죄로 인하여 이런 민족적인 비극이 일어났나이다 라며 저마다 자기의 죄속에 잉태된
분단의 비극을 인정한다면.........
어찌 이 비극속에 생명들이 그냥 죽어가도록 마냥 방관만하고 있을 것인가?
엘리야가 구름 한조각에 장대비를 보았다면
나는 어게인 2007 평양 대부흥회 를 사모하며 형성된 영적 기류를 보며
무엇을 보는가?
주님께 늘 무언의 심연으로 간구하는
갑절의 영감이여!
나로 알게 하라
나로 보게 하라
이곳에 들어와 제가 가장 다운되었을 때
제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한나 라는 한 사람이
제 묵상란에 격려와 위로의 글을 남겨 놓은 것을 보았답니다
전 그 리플을 마치 엘리야가 구름 한조각에 민족의 하늘을 보는 양
유심히 바라보았네요
한나님!
어제 교회에서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바울이 디모데를 그 현장에 남겨둔 것을 공부하며 제가 함께 공부하는 그룹들과 함께 나눈 말이 바로 부산 지역이였답니다
부산과 경상도 일대가 양반 족보에 착념하여 얼마나 복음화가 어려운 지역인지
바로 그러한 지역일수록 디모데가 필요한 곳이라고.......
그리곤 오늘 컴을 여니 어제 제 묵상난에 한나님께서 자신의 거주지가 부산이라 하시니
그래 그랬었구나 하나님 하시는 일이니 그럴 수 밖에 없지 하면서도 가슴만 아니라 영혼까지
두려워 떨리는 아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1999년)남해안을 보여주실 때 그 땅이 점점 물속에 가라앉는 것을 보여주셨답니다
제 발이 물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한나님!
함께 기도합시다
조국의 최남단 남해안이 침륜에서 벗어나 과감히 북으로 믿음의 돌진하는 역사가 나타나도록.....(전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의 피를 이어받은 고신이야말로 북의 직진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어야 된다고 확신하는 삶중의 한 사림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적인 신앙관을 좇아 형성된 고신 교단 소속 교회들이 부산을 비롯한 그 남해안 일대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남편이 주기철 목사님께서 평양으로 가시기 직전 목회하시던 마산 문창교회에서 코흘리개로 그 교회 유치원을 졸업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단호하고 매섭고 무섭답니다
그 성정은 남들이 다 예스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명에 연연하여 진리를 거부하기
보담은 진리를 위해 생명을 내놓으면서도 노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지요
어떤면에서 제게 예수 다음으로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어떻해 저런 사람하고 사냐고??
허나 저는 한번도 남편이 무서워 본 적이 없었어요
제게는 늘 편안함과 관용으로 다가와 오히려 남편의 그 매서운 성정은 제 영혼의 순결과 신앙의
지조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오늘날까지 동행해 준 예수님 다음의 은인이랍니다
한나님!
재생산을 기다리신다고요?
울 하나님 한나님 못지않게 한나님의 재생산의 날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중에
하잘 것 없는 제 자판기를 두드려가며 한나님께 대한 그리고 조국 최남단 남해안의 영적
부흥을 기다리는 그분의 역력한 기다림의 숨결을 쏟아 놓으시는 아침-
어느새 내리던 봄비는 멈추고 신선한 아침 햇살이 비치는군요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의 손에 팔릴 것을 친히 오픈하시며 자고 있었던 제자들을 깨워
일어나 같이 가자고 말씀하실 때에 예수님의 오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묘사되여 있는 것을
봅니다
나도 나를 열어 오픈 할 때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그 인물들을 묘사할 때 하나같이 가감없이 묘사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 그보다 더 목쪼이는 것은 나를 가감없이 묘사할 재간이 있는가?
인간적으로 나 이상으로 이해가 가고 불쌍하고 처참해 도무지 그 사람 이름을 들먹이고
싶지 않은데 나를 오픈 시키려면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유다 그리고 배반의 키스
그렇다
나는 내가 얼마나 유다인가?
유다를 찾아내기 힘들다면 배반의 키스를 찾아내 보아라
나는 수없이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는가?
주님 말씀을 또락 또락 읽고 쓰는 그 순간만큼 주님의 입술에 맞춤형 키스가 따로 있을까?
그분의 입 벌림에 같이 벌리고 그분의 입 닫음에 같이 닫는 주님 입따라 똑같이 맞추어지는
내 입술...........
그러나 나는 얼마나 그 입맞춤을 배반했던가?
얼마나 주님 입술로 나온 말씀에 배반의 키스로 응답해주었던가?
내가 주님 말씀대로 살기보담은
전도의 열정이 식어지고
기도의 열정이 식어지고
사랑의 행위가 줄어들고
구제의 손이 오그라들고.......
그러는 사이 주님의 말씀은 단단이 오랏줄에 묶어져 사단의 손에 넘어간 격이 되여
도무지 말씀의 역사가 줄어드는 이 현상.
나는 예수님의 오픈속에 등장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로마 군병들 그리고 제자들과
벌거벗은채 도망가는 마가보다 더 비열한 유다야말로 내가 아닐까? 끝없이 추적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렇게
아침 묵상으로 주님 말씀에 입맞춘 뒤
일어나 세상으로 나가면 여전히 세상은 풍요와 성공의 바알에게 입맞추는 현장으로
치밀히게 셋팅되여 있으니 그렇게라도 유다를 추적하지 않으면 나는 얼마나 더 주님을
배반할 것인가?
끔찍하다
나여!
내 모진 자아여!
주여!
주님의 오픈속에
유다를 봅니다
배반의 키스로 당신을 넘겨준 자를.......
저는 그 자가 저인줄 꿈에도 모르고 살았던 자입니다
얼마나
가소로운 저인지........
얼마나
소경이었던지.....
주님과 함께 아버지의 말씀의 떡을 늘 떼어 먹으며 신령한 기쁨에 젖어 살면서도
막상 말씀에 입맞춘대로 나를 죽이기보담은 말씀이신 주님을 파는 데 급급했던 저-
결국 배반의 키스 자국을 주님 볼에 선명하게 남긴 세월들-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 때 그 모든 현장을 성령의 조명아래 숨김없이 오픈시켜준 은혜에
진정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