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꿈과 비전
(QT본문: 사 24장 1절~ 13절)
2012-09-07 금요일.
[본문: 사 24장 1~ 13절]
[관찰]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1.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 여호와께서 땅을 뒤엎어 황폐하게 하시고, 그 백성을 흩어버리실 것이며, 계층과 신분을 불문하고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완전히 평등한가운데 재난을 당할 것이다. (1~3)
egrave; 이 모든 일이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 그 때 온 땅과 세상이 시들어가며 힘을 잃고, 위대한 지도자들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4)
3. 땅이 죄로 더렵혀졌으니,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고,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5)
4. 그래서 하나님은 땅에 저주를 내렸고 사람들은 그 죄의 대가를 받아 소수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6)
5. 하나님의 법을 떠난 땅엔 즐거움과 희락의 노랫소리는 그치고 탄식만 늘어간다. 땅이 포도에 열매를 내주지 않으니 흥이 나지 않았고, 노래와 연주와 춤이 사라졌다. (7~9)
6. 도시는 온통 혼란 속에 빠져 집집마다 문이 닫히고 출입하는 자가 없으며, 거리에서 포도주와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성읍이 폐허가 되며, 성문은 부서지게 될 것이다. (10~12)
7. 이런 일이 앞으로 온 세계에 일어날 것이다. 감람나무 열매를 흔들어 떨어뜨릴 때 그 꼭대기에 몇 개가 붙어 있음 같이, 그리고 포도를 수확하고 난 뒤 이삭 줍는 자의 몫으로 얼마가 남겨짐 같이 심판의 날에 세계 민족의 운명이 이렇듯 적은 인원만 남게 될 것이다. (13)
[교훈 적용]
심판이 임하는 날, 온 땅과 그 안에 존재하는 나라와 백성들은 어느 나라, 어느 백성도 예외 없이 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이며, 그 때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도 다 제거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실까?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꿈꾸시는 나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나라는,
1.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시는 나라다.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짚어 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1~3, 5)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결과 땅이 뒤 엎어지고 사람들은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날에는 온 땅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지려고, 지키려고 했던 모든 것들은 다 파괴되고, 파괴될 것들을 믿고 추구하며 이 땅에 살던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지극히 적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진멸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아,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말씀을 지키라, 언약을 지키라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말씀을 지키고, 언약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꿈과 비전이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먼저 말씀이 무엇이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생각할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
따라서 개인예배는 물론, 공예배, 목장 예배, 삶의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삶이 수반되어야 한다.
요즈음 나와 아내는 말씀에 푹 빠져 산다.
아내도 말씀이 너무 좋단다. 그래서 내가 성경관련 무슨 이야기를 해 주면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 그런 말씀도 다 있느냐 하며 말씀에 대해 욕심을 낸다.
최근에 아둘람 공동체와 라마나욧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도피한 곳들인데, 이 두 공동체의 모델을 교회에 잘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마음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여, 자기보다 잘난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이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자객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 하지만,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자객까지도 라마나욧 공동체에 가기만 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언을 하고, 언제 죽이러 왔느냐는 듯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준 공동체가 라마나욧 공동체다.
이에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사울이 이제는 자기가 직접 가서 다윗을 처단하겠다고 가지만, 그 또한 라마나욧 공동체에 이르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니, 참으로 기가막힌 공동체다.
살인을 교사한 자나, 살인을 실행하려는 자까지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공동체가 라마나욧 공동체이니, 어떤 자인들 치유되지 못할 자가 있겠는가?
이 공동체의 진정한 치유의 본질은 주의 성령이 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의 삶에 있었다.
아내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존재를 늘 인정하고, 그 분의 세밀한 음성을 들으며, 인도하심을 받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어느 곳에 있든지 살 것이며,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힘쓰며 지키며 살아가자고 다짐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정죄함이 없는 나라다.
“그러므로 ~~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6)
심판의 원인은 죄다.
그런데 그 죄가 없는 나라가 있으니 하나님의 나라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살아서 누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셔서, 내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신 사실을 믿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실 때 나도 그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사는 이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영생,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고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죄책감 때문에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나 교인들을 이야기 할 때 ”죄인” “죄인”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죄인이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무엇인가? “죄를 지을 수 있는 의인”인 것이지 “죄인”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나의 죄의 값을 치르시려고, 이렇게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온갖 치욕과 멸시를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가시면류관 쓰시고, 손과 발이 못에 박히시며, 창으로 찔려 온 몸의 피와 물을 다 쏟고 돌아가셨는데, 내가 왜 죄인이란 말인가?
롬8:1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라고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죄가 없다고 판결하셨는데, 누가 나더러 죄인이라 하겠는가?
성경을 제대로 모르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인된 내가 여전히 죄를 짓고 계속 죄를 짓고 있으니, 내가 이토록 벌레만도 못한 놈인데,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고맙고 감사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그래서 어떻게든 이 사랑에 보답해야지 하니까, 내가 변화되고 내 주변이 그것을 보고 감동하고, 그도 변화의 전염이 되는 것이다.
또 내가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내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니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 분의 사랑이 너무 귀하고 감사하여, 오늘은 또 무슨 사랑의 말씀을 해 주시며,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실까를 생각하니, 나의 육신의 피곤과 한계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 앞에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정죄함 없는 내 인생, 하지만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자꾸만 죄에 노출되는 나의 모습.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자에게는 갈등이 있는 것이다. 죄의 유혹에 따르려는 옛 습성과 성령안에서 살려는 새 생명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충만, 말씀충만은 끊임없는 갈등충만으로 이어진다.
갈등없이 어떻게 고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분의 것을 선택하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의 간절함을 아시고, 가장 좋은 최선의 사랑의 길로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이 삶을 지키리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시는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정죄함이 없는 나라가 하나님이 꿈꾸시는 나라임을 묵상하면서, 저는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말씀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이 간절한 소원을 지키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마음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며,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