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씀: prelude (I, II, III) 막 14:27-31
작성자명 [정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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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31
[I]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가장 큰 이유 하나가
말을 할 줄 알고, 말을 들을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말”은 다른 동물들이 내 뱉는 “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자와 말 듣는 자가 같이 이해할 수 있는 약속의 표기로 바꾸어
의사전달 하는 것이 사람의 말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어라는 약속의 언어표기로 바꾸어서
미국 사람은 영어라는 약속의 언어표기로 바꾸어서
말을 하고, 그 말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꽁꽁 묶어 놓고 꽁꽁 가려놓고
입만 슬쩍 열어 놓아도
얼마든지 말로 “슬픔”을 표현하고
말로 “기쁨”을 나타내고
말로 “감사”의 표시를 전할 수 있으니,
말은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내려주신 가장 큰 선물일 법도 하다.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고, 적게 하는 사람도 있고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말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 잘하고, 못하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데
많이 하는 것이 좋은지 적게 하는 것이 좋은지
혹은, 말 잘하는 사람이 나은 사람인지
말 못하는 사람이 속으로는 더 나은 사람인지를 판단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말 많고 촐싹대는 “가벼운 자”보다
말이 없고 신중하며 듬직한 남자가 훌륭한 지도자감 인 것이
한국적인 가치관이고
말 않고 나설 줄 모르는 “따르는 자”보다
말 잘하고 능동적이며 솔직한 남자가 더 멋진 지도자감인 것은
미국적인 가치관이라 볼 때
말 잘하고 나서기 좋아하며 바른 말 잘하는 존 F. 케네디는
한국적인 잣대로 재어볼 때 낙제점을 줄만하다.
아브라함 링컨도 말이 너무 많고
죠지 워싱턴도 가볍기가 그지없다.
제 2의 케네디로 떠오르는 별이 되어
당장 대통령이 될 듯 반짝이던 게리 하트가
여자 비서와 선상에서 밀애 하는 사진 한 장으로
추풍낙엽이 되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하룻밤에 사그러 들었는데,
연일 터져대는 엄청난 성 추문의 폭풍 속에서도
끄떡 없이 버텨낸 빌 클린튼의 비장의 보검은
그의 현란한 말의 향연이었다.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클린튼의 말은
로드 스칼라로 다져진, 튼튼한 기승전결의 짜임새로 묶여져
도무지 찔러댈 틈새가 없다.
말로 나자빠지고 있는 사람이 우리 대통령이 아니신가 싶다.
말을 많이 하고 쉽게 내뱉는데
별 깊이가 없으며, 클린튼 식의 짜임새도 없이 들린다.
가끔 그 분의 말을 듣고 있으면
누가 급히 써서 보낸 이메일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인터넷 문화를 그처럼 숭앙하고 있는
유일무이의 지도자다운 독특한 맛이다.
한국적인 가치관으로 쳐다보는 지도자상으로 먼저 재어보고
미국적인 가치관으로 들여다본 지도자상으로 다시 재어보아도
도시, 클린튼이 더 나은 사람인지
우리 대통령이 더 나은 사람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II]
일월 초에 내가 큐티 나눔을 시작할 때엔
말이 별로 없었다.
누가 말을 하던 않던 꾸준히 올라오는 묵상에 동참해서
별 말없이 마음으로 감사해 하고
그 감사함을 마음으로 받는
조용히 떠오르는 동해의 봄 해 같은 고요함이 있었다.
근래에 큐티 나눔을 들어서면
말이 조금 많아졌다.
여기 저기서 밝게 인사하는 모습도 보이고
목청을 높여 격려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그만큼 신변잡담도 늘어났다.
환하게 내려 쬐는 퍼시픽 오션의 가을 해 같은 정겨움이 있긴 하다.
동해의 봄 햇살과
퍼시픽 오션의 가을 햇살이 어우러지고
동해의 고요하고 신선한 바닷물과
퍼시픽 오션의 환하고 따뜻한 바닷물이 한데 섞여
동서를 잇는 뱃길이
넘실 넘실 춤추면 좋겠다.
뱃머리에 앉으셔서
빙그레 웃으시는 예수님 곁에
팔짝 팔짝 뛰어다니며
소리지르는 베드로가 있다.
머리 위에서 한없이 내리는 햇살로 드리워져
앉으신 예수님의 정적인 그림자와
뛰는 베드로의 동적인 그림자가
절묘하게 뒤섞여 살아 튀어나는 저 갑판 위에
열 한 개의 그림자가 둘러서있다.
그 배가 들어온다.
노 저어 들어온다.
우리들 가슴속에 넘실 넘실 들어온다.
[III]
베드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펄쩍 펄쩍 살아서 서슴없이 내 뱉었다.
예수께서 앉아 조용히 물으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뇨”
베드로가 서슴없이 대답하되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하더이다,
혹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물으시기를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여기느뇨”
베드로가 서슴없이 대답하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말하시기를
“시몬아 복이 있도다,
너는 베드로라 즉 반석이라 부를 것이라”
베드로는 말을 아낄 줄을 몰랐다.
좌충우돌 우쭐대며 급하게 내 뱉었다.
예수께서 말하시기를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릴 것이라”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세 번을 말로 부인하였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베드로의 말이
주님께만 헌신하기 위한 성품이 되었을 땐
성령의 불 칼이 되어 번뜩였으나
베드로의 말이
“나”를 과시하는 우쭐대는 성품이 되었을 땐
사탄이 까불어대는
한낱 녹슨 단검이 되어 허공에서 떨어졌다.
You will all fall away, Jesus told them, for it is written: I will strike the shepherd, and the sheep will be scattered. But after I have risen, I will go ahead of you into Galilee. Peter declared, Even if all fall away, I will not. I tell you the truth, Jesus answered, today-yes, tonight-before the rooster crows twice you yourself will disown me three times. But Peter insisted emphatically,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And all the others said the same. (Mark 14:2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