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듣고 있는가? 이 얼얼한 함성을........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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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31
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내게도 베드로가 살고 있었지
완벽한 동지도
완벽한 배반자도 되지 못하는 베드로가...........
그런데 그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완벽함이 있었지
열정!
그것만큼은 완벽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감당할만한
믿음의 분량이나
이성적인 논리나
물리적인 힘이나 그외 사회적인 존망이나 재력이나 영혼의 내공이야 있건없건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증명해보이고자 함에는 주변의 제자들이 얼얼할정도로 숭고한 열정이 있었지
오늘 그 숭고했던 열정이 함성처럼 들리는 아침이군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31절)
그 말함에 얼마나 힘 다했는지
그의 혓바닥이 입천장을 때릴 때마다 다락방의 공기는 혼절하지 않았나 싶네
주님께서 그 저녁 주시던 떡은 일상의 떡이 아닌 일 년에 단 한번 주어지는
유월절의 떡이라는 것에 그 자가 수많은 신경 조직 중 단 한 개의 시 신경이라도
제대로 눈을 뜨고 묵상하기나 했을까?
주님께서 어느 길로도 우회하지 않고 단도 직입적으로
한 길
외 길
그 갈보리 십자가의 길만 바라보며
받으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나의 몸이니라
마셔라! 이것은 내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피 곧 언약의 피니라(22절-24절)
선언하실 때 그 자가
얼마나
얼마나
낯설게
낯설게
주님의 몸과 그 떡과 잔을 내미시는 손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에
입을 맞추며 그 떡과 포도주를 받아 마셨을까?
아니라 생각되네
그가 그렇게까지 고백의 대상이였던 주님께 집중적으로 마음을 열어두고 살았다면
그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주님의 머리위로 향유를 내리붓는 행위 앞에 무릎을 끓고 회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열렬한 신앙의 주로 고백은 했건만 그자조차 주님의 분초로 임박해오는 가파른 진통의
거친 숨결 한가닥 정도도 따라 잡지 못했으니.........
괴롬과 민망함에 주님 스스로 자동적으로 파열되는 숨결이 묻혀 나울 수 밖에 없는 말씀-
그럼에도 주님께 감긴 눈으로 인하여 지연된 회개는 결국 닭이 두번 운 후에야 가능하게 되었지
그것도 결단코 사나이에게는 있어서는 아니될 배반의 금을 자기 가슴 스스로 베어내어
오려 붙힌 후에야 가능했으니.........
이것이 무엇인가?
거룩한 혁명을 꿈꾸는 자들에게 만나지는 베드로는 무엇인가?
아하!
너는 기막힌 나의 동지로구나
밤낮으로 광대한 하늘 나라 혁명을 꿈꾸면서도 내 집 안마당 넓지못해
안타까워하는 내 심한 내적 분열과 어깨 동무할 수 있는 동지로구나
주님을 선명한 나의 주로 고백하고 그를 따라 살기로 작정한 나도 여전히 주님을 저주하기까지 배반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가장 거룩한 책속에 허용해 놓았으니 너는 얼마나 나와 가까운 동족이랴!
그리고
그러한 자네나 나같은 동족들을 위해 할 일이라곤
갈보리 십자가위에서 죽기까지 피를 흘려야하는 아버지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일찌감치 자네나 나나 가지고 있었던 성공과 야망의 집요한 세속적인 끈적거림을 아예
사단이라 내쳐버렸던 주님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모하는 동지임에도 끝까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나의 동족이 아닌가?
분명 그가 나와같은 동질의 육체로 오시여 나의 동족임에도
그를 맨발 벗고 좇아가도 만날 수 없는 이 괴리감-
이것이 그간의 나의 방랑이 아니였나 싶네
여기에 자네도 걸쭉한 목소리로 나도 그러하이 로 응답을 줄런지 아니 줄런지.....
그건 전적으로 자네 용기가 아닌가?
그런데
난 베드로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난다네
그에게 과연 비밀이 있었을까?
앞뒤 재지않았기에
힘 다해
고백할 수 있었던
나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군화 발자욱과 함께 진군하는
특수사단 같은 함성을 들으며 왜 그런 생각을 해보는지 모르겠군
그 열정의 비밀이 무엇일까?
가열되는 시간과 동시에 아무리 거둬내어도 여전히 부글 부글거리는 거품을 안고 있어야만
하는 사나이 -
한번쯤 자신의 불을 끄고 주님의 불인 그분의 말씀에 꽁꽁 자신을 냉동 시켜본 적이 있었을까?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주님께서 그렇게까지 신적 권위로 기록된바 선지자의 말씀으로
모두 다 흩어질 것을 예고함에도 그 말씀에 순복할 수 없었던 그 때 그 사람_
유다가 주님을 팔 자로 판정되고 나니 다들 한없는 안도감에 젖어
모두가 다 흩어지리라는 말씀앞에는 그 누구도 진정 근심된 얼굴로 질문하지 않는
제자들틈새를 비집고 근심과는 작별한 사람마냥 신념의 화포를 쏘아대는 열정의 비밀은
무엇이였을까?
그자를 보면서 나는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근심이야말로 내 신념보다 항상
앞장 세워야하는 것이 현숙한 믿음의 자세라는 걸 배우게 되네
그 자에게 있는 열정의 비밀은 분명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 체온이지 않았나싶네
허나 한번쯤 냉동시킬 필요가 있는 고열의 사랑-
이제 그 사랑이 얼마나 부질없는 독선적인 아집의 사랑이였던가를 알려주기 위한
한 계집종의 출현이 사뭇 기대되는군
그자에게 있어 한 계집종의 출현은 더이상 주님보다 앞장 서거나 혹은 저만치 홀로 피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열정이 되여 한없이 여유로운 배려의 숨결로 주님과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않았네 싶네
이 아침-
우리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살아 계신다는 것
베드로 이전 태초부터 베드로 이후 이렇게 최첨단 시대에까지 살아 그 진한 향기를 발하는
문자 멧세지가 되여 자네에게 한 장의 편지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공감의 마음으로 영접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조국교회에 대한 한없는 궁금함일세
내 조국 교회의 성숙함이 어느정도인지 그게 그렇게 궁금하다네
이리 질문하는 나에게 돌을 던졌던 자를 기억하기보담은 그 돌에 내 남은 날들이
온전히 죽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