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죄
(QT본문: 사 22장 1절~ 14절)
2012-09-04 화요일.
[본문: 사 22장 1~ 14절]
[관찰]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1. 네가 어찌하여 지붕에 올라가느냐? (1)
egrave;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앗수르가 퇴각하자 이를 지켜 보기 위해 백성들은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갔다.
2. (위험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고는) 흥청망청 떠들어대며 즐거워하던 성이 (또 다시 위협을 받게 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egrave; 이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전쟁에서 적과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2)
egrave; 지도자들은 자기 몸을 보전하려 활을 팽개치고 도망치다가 붙잡혀 결박 당하고, 멀리 도망한 자들도 붙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3)
3. 에루살렘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 민족을 위해 슬피 울며 모든 위로를 거절했다. (4)
4.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5)
5. 엘람과 기르 사람이 포함된 바벨론 (or 앗수르) 군대는 활을 찬 궁사들과, 전차부대 그리고 기병대와 마병대로 구성되어, 그 날 예루살렘을 둘러싼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하고, 마병은 성문 앞에 늘어섰으니, 그들을 본 예루살렘 거민들은 서둘러 병기고에서 무기를 꺼내 싸울 준비를 할 것이다. (6~8)
6. (그 동안은 다윗 성을 무너질 수 없는 견고한 성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그 날에 그들은 예루살렘 성에 무너진 곳이 얼마나 많은 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포위당할 때를 대비하여) 아래 연못의 물을 모을 것이다. 또 성읍 안에 있는 집을 조사하여 일부는 헐어서 그 돌을 성벽 수리하는데 사용하고, 충분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옛 연못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둘 저수지를 성 안에 만들 것이다. (9~11)
7. 그러나 너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11)
egrave; 위기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한다고 해결될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시다.
8. 그 날에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통곡하고 슬퍼하며 머리털을 뜯고 굵은 베를 허리에 매고 겸손히 행하라 하셨으나, 너희는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소와 양을 잡아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12, 13)
9.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친히 이 장면을 보시고 진노하여, 너희들의 죄악은 너희들이 죽을 때가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14)
[교훈 적용]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앗수르가 퇴각하자 이를 보기 위해 백성들이 서로 앞다퉈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이사야 선지자는 조롱섞인 어조로 “네가 어찌하여 지붕에 올라가느냐?” (1) 한다.
이어지는 흥청망청 떠들어대며 즐거워하는 예루살렘. (2)
죽음의 위험까지 겪었으니, 대적들의 퇴각은 절망에서 생명으로 바뀐 것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정말 위험은 끝난 것일까?
성경은 도망치다 잡힌 자, 심지어 멀리 도망친 자까지 모두 붙잡혀 결박된 채 포로가 된다고 기록한다. (3)
그러니까 끝난 것이 아니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멸망의 날은 도적같이 이렇게 슬며시 다가와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포승줄에 결박되어 비참한 포로의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끝내셔야 끝이 나지, 눈에 보이는 끝난 것 같은 끝이, 실상은 끝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런데 다시 올 그들의 뒷 모습을 보고 좋다고 흥청망청 떠들고 즐거워하고 있으니, 선지자의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하는 조소섞인 소리는 당연하다.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가득할 것인데, 그 사실도 모르고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슬피 통곡하고 모든 위로를 거절하는 선지자 이사야를 본다. (4, 5)
한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니, 흥청망청 떠들어대며 즐거워하지만, 다른 한편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며 애통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듯 살고 있는 세상의 흐름 이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보지 못하면 살았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내가 내일 죽게 생겨, 살 궁리를 해야 하는데, 썩은 동아줄 붙잡고 있으니 살 수가 있겠는가?
드디어 심판의 날, 모든 병기와 전열을 갖추고 공격 앞으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벨론(or 앗수르) 군대 앞에서 나름 성을 정비하고 필요한 준비를 하지만,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다. (6~11)
아직도 그 환경을 만드신 하나님을 깨닫지도 보지도 못한다.
결국 끝까지 그들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11)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한 죄를 애통하며 통곡하고 통회자복하라 하셨는데도, 그러기는커녕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리라 하며 소와 양을 잡고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느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어찌 피할 수 있으리? (12, 13)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는 추상 같은 하나님의 선포가 떨어진다. (14)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마음을 닫고 하나님의 회개의 초청을 거절한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이 진노의 심판 외에 무엇이 있으리오.
계속되는 재난을 경험하면서도 아직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문제의 원인을 보아야 하는데, 그 결과에 대해서만 주목하니 여전한 예루살렘의 영적 무지를 본다.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여 성을 보수하고 전쟁을 대비하지만,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섬함이 허사” (시127:1)인 것을 모르는 처사일 뿐이다.
아무리 파수꾼을 세워 지키고 애쓰고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지 않으시면, 그 결국이 파멸인데, 그 수고와 노력이 어떻게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줄 수가 있겠는가?
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잠16:9) 이들의 작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모습인가?
회개하지도 않고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리라는 태도가 언약백성으로서 합당한 모습인지? 이 모습으로 열방에 하나님 백성의 모델을 보여주며, 그들로 열방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징계의 몽둥이가 또 작렬하신다.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시고 몽둥이를 드신 것 같다.
얼마나 그 행위를 참지 못하셨는지, 죽기까지 용서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분노를 본다.
회개하자 예루살렘아! 회개하자!
선지자의 뜨거운 가슴이 나에게도 전달된다.
말씀을 통해 나의 죄를 보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만, 민족의 죄악을 보고 통회자복하지 않은 나의 죄를 본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나 나나 다 한가지로 주님 앞에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의롭다 하셨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경영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보지 못합니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매일 내 문제 내 할 일에 빠져, 주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의인이면서도 여전히 죄를짓고 있는 이 연약한 당신의 자녀, 주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더 무릎 꿇게 하시고, 더 통회자복하게 하시며, 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앙망하라 하나님을 존경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의 계획, 나의 수고를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과 함께 계획하고 주님의 성령 안에서 수고하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 안에 있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주님 앞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