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0;1-6
오늘도 유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로 이사야를 나의 종이라 부르시며(하나님께서 친밀하게 부르시는 음성를 들은 이사야는 잠시 수치를 당하지만 참 많이 기쁠것 같습니다.) 애굽과 구스와 앗수르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토록 지극한 것임을 다시한번 알게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때마다 나에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십니다. 어제는 그날에 되어질 일을 5번이나 보여주시고 오늘은 중요한때 곧 그때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때마다 말씀하여주시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잘 듣고 순종합니다. 단 한마디 ‘왜요?’도 없이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합니다. 세상적으로 수치와 조롱이지만 하나님의 예표와 기적이 된다는 것, 인간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유다의 죄 때문에 유다의 구원 때문에 당하지만, 나는 나의 죄 때문에 수치와 조롱을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온 것이 수치인지 조롱인지 분간이 안될정도로 억울함과 분함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나의 죄 때문에 나의 구원 때문에 온 것임을 내가 믿습니다. 깜도 안되는 사건이지만 다른 사람을 살릴 수있는 약재료로 쓰임 받으면 기쁘겠습니다.
조금은 나를 바라고 조금은 나를 자랑했던 친지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말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시골에 가거나 초중등학교 모임에 가서 내가 누구이고 어디 산다고 말하며 그들보다 조금 더 나은 나의 부와 명예를 부러워했던 그들에게 나는 이제 놀라고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릴때 살던 동네에 가면 예전에는 나를 소개하던 친구도 이제는 더 이상 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지만 가족 친지 모임에도 내가 참석하는 것이 부담이고 나의 안부에 답하려는 식구들도 불편할 것같다는 나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조그만 자랑이었는데 이제 큰 수치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런 이치로 돌아가는 것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주님 앞에 더 부끄럽고 죄송한 것은 내가 아직 다른 거민들이 깨닫고 주께 돌아올 수있게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가끔 자기연민에 빠져 자조적인 기분에 있을 때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늦어질지라도 나에게 그때가 와서 그대로 순종하는 주의 종이 될 수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삶이 다른 거민들에게 세상에는 믿고 바랄 것이 없고 도움을 구할 것이 없다는 것을, 주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역할을 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끝까지 안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을 보고듣고 가다보면
더디 될지언정 안되지는 않게 하시옵소서.
사명 때문에 와서 사명 때문에 살다가
사명 때문에 가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연한 가지를 잡아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