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남대문새벽시장에서 옷가게를 하시는 부모님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린시절 자고 일어나면 일하는 누나만 있었고, 초등학교 미술시간엔 매번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 지금도 미술이 제일 싫다고 합니다. 어렸을적 기억이 부모님께 벌 서는것, 반성문 쓰는것, 벌거벗겨 쫓겨나는 것 등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께 들으니-- 자식을 떨어뜨려 키우다보니 엄격하게 키우는것이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음란의 연고로 혼전임신하여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초기때부터 임신에,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남편은 살림의 대부분을 도맡아 해주었고 입의 혀처럼 저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려고 헌신하였습니다. 함께 교회에 열심으로 다니며 성가대, 금요예배, 새벽예배 등, 남편은 저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점점 남편의 모든 헌신을 당연시 여기며 한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며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칠순잔칫날 친척어른들이 모두 계시는 자리에서 남편은 열살 많은 형부와 주먹다짐과 험한 말이 오가는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스스로도 상처가 컷을 남편을 온몸으로 무시와 멸시를 해댔습니다.
그시절 저는 남편의 헌신적 섬김을 받으면서도 남편의 과장된 언행이 부끄러워 어떤 모임이든지 함께 가기가 너무 부끄러웠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랑받고자 남들보다 더 헌신하고 말도 오버스럽게 하는 몸부림이었는데 저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남편에게는 얼음과 같은 눈빛을 보내며 살았습니다. 행복하게 보이고 싶었고 남편을 노리개로 자랑하고 싶었던거 같습니다.
이사야는 사명때문에 삼년이나 벌거벗고 다녔는데 저는 남편이 부끄러워 남편을 너무 외롭게 했고 세상으로 나갈수 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작년 4월 남편의 외도사건으로 우리들교회에 왔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남편의 외도로 마음이 녹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마음이 낮아지지 않아 죽어지는 적용을 하지 못하고 있고 목장에서도 이정도 고난에 낮아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질기고 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외도 후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 남편이 며칠전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와서는 약을 먹는 동안에는 약의 부작용으로 성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며 힘들어 했습니다. 순간 제 입가엔 미소가 띄워졌고 하나님이 벌 주시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남편을 긍휼히 여기며 체휼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맘에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랑이 조금도 없고 남편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으로 지금까지 왔다는 저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살아왔던거 같습니다.
오늘, 이사야의 삼년동안이나 벌거벗고 다니는 순종은 제게 큰 충격과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는 말씀입니다. 수치속에서 복음을 위해 순종한 이사야를 생각하며 남편의 무시를 잘 감당하며 사건속에서 내 죄를 보고 낮아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남편의 구원을 위해 수치를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