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
(QT본문: 사 19장 16절~ 25절)
2012-09-01 토요일.
[본문: 사 19장 16~ 25절]
[관찰]
그 날에 있을 회복
1. 그 날에 애굽인들은 여호와의 심판으로 두려워 떨 것이다. (16)
egrave; 유다라는 이름만 들어도 애굽인들은 두려워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애굽을 벌하실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17)
2. 그 날에 애굽의 다섯 도시가 히브리어를 말하고 전능하신 여호와께 충성하겠다고 맹세할 것이며, 다섯 도시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도시조차도 그렇게 할 것이다. (18)
3. 그 날에 애굽 땅 중심부에 여호와를 섬기는 제단이 세워지고, 국경에는 여호와를 위한 기둥이 세워질 것이다. (19)
egrave; 이것은 애굽 땅에 전능하신 여호와를 섬긴다는 증거와 상징이 될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자들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를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구하실 것이다. (20)
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당신을 애굽에 알리실 것이며, 이로 인해 애굽인들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 제물과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고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원을 하고, 그 서원을 지킬 것이다. (21)
egrave; 여호와께서 애굽을 쳐서 벌하실 것이지만, 그런 다음에는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실 것이다. (22)
5.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가는 대로가 열려서 앗수르 사람과 애굽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게 될 것이며, 애굽 사람이 사람과 함께 여호와를 경배할 것이다. (23)
6. 그 날에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 이 세 나라가 온 세계에 복이 될 것이다. (24)
egrave; 이는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그들로 축복하시며, “내 백성 애굽이여, 내가 창조한 앗수르여, 내가 택한 이스라엘이여,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5)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그 위에 흔들림을 인하여 떨며 두려워 할 것이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 (16, 17)
애굽은 과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떠나려 할 때, 이를 거부하여 하나님의 손의 능력, 열 재앙을 체험하였고, 홍해 바다를 건너는 이스라엘을 진멸하려다 도리어 모든 애굽 군대가 전멸하는 역사를 체험하였다.
하나님의 손의 위력이 얼마나 큰 지 그들은 역사를 통해, 전승되어 오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자신들을 벌하시려고 흔드시는 것을 보니, 처절했던 과거의 역사가 이제는 자신들이 경험해야 하는 현실이기에, 떨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유다라는 소리만 들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며 벌벌 떠는 애굽의 모습을 본다.
그런 애굽이 하나님께 충성하겠단다.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 (18)
그러니까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바로 그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의지했던 태양신 우상도 버리고, 지혜도, 세상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충성하겠다는 것이다.
모세로 인한 재앙을 경험하였을 때는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모셔, 회복시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충성함으로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태풍 볼라겐과 그 뒤를 이은 덴빈 소식으로 사람들은 이를 대비하느라 호들갑도 떨었지만, 잠시 잠깐 동안 자연재해의 위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도 느꼈고, 약간의 두려움과 공포도 느꼈다.
이때 사람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과거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려 소지품을 모두 빼앗긴 채, 어린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건강한 자와 병자를 구분하고 누구는 독까스 실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고 소각되고, 또 누구는 운 좋게 살아나지만 조금의 틈만 생기면 언제든 죽음이 예고되는 두렵고 떨리는 현실 속에서 하루 하루를 그렇게 숨죽여가며 살았으나 죽은 자 같이 살아가는 그런 일이 혹시라도 나에게 생기면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해 보지 않았을까?
꼭 이런 공포스러운 일은 아닐지라도 무슨 재난을 당해 처참한 지경에 이른 대상이 자기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겠는가?
무딘 사람들이야 당장은 내 일이 아니니 아무 관심도 없을 수 있지만, 자기에게 그런 현실이 닥쳤을 때,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고민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애굽이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애굽이었지만, 자신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교만하고 자랑하고 내가 왕이라 하고 세상의 가치가 다라 하였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니, 이제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거기에 내 것을 다 내려놓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따를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 하며, 말씀이 안 들어 온다 하며, 게다가 삶이 뒷받침 되지 않는 입으로만 하는 믿음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답은 있다.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찼을 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무시로 말씀에 따라 살 때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따를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이제 이 얻은 영생의 축복을 목숨처럼 여기며,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하나님께 꼭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 하나님 안에 있는 쉼과 안식을 얻고 누리며 살리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2. 하나님께 예배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 (19, 20)
태양신과 각종 우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세우고, 나라와 나라를 구분하는 국경에는 여호와를 위한 기둥을 세워, 애굽이 전능하신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는 곳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 아들 이삭도 그랬고, 또 이삭의 아들 야곱도 제단을 쌓았다.
출애굽 지도자였던 모세가 제단을 쌓았고, 여호수아가 그렇게 하였다.
믿음의 계보를 잇는 선조들은 이렇게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 드렸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약속들을 믿었고, 그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키시며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믿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 신앙고백으로 제단을 쌓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이다.
이제 애굽이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있다.
제 힘으로 살아보겠다며 성을 쌓고, 자신을 지켰지만, 자신을 지키는 것은 성을 쌓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때에만 가능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은혜 베풀어 주신 것이 감사하니,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언약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주시는 언약으로 애굽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다.
“~ 그들이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0)
이제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헌신의 결단과 그에 따른 행동이 필요하다.
“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19) 란 기록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게 "나 하나님의 백성이요"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나 허풍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요 구주되시니, 이제 나는 그 분께 헌신을 결단하며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상처입은 사람이 낫기 위해서는 우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랑을 받고 돌봄을 받고 휴식을 취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치료만 받고 끝나서는 건강을 유지할 수도, 더 나은 건강을 가질 수도 없다.
상처입은 치유자의 자격으로 헌신하는 자리에 나아갈 때 건강도 유지하고, 더 나은 건강도 가질 수가 있다.
나의 삶에도 매일 이렇게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 헌신을 결단하고 행동하는 충성이 계속 있어야 한다.
어제는 이른 저녁부터 마음에 감동이 있어 기타를 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영혼이 맑아지며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이 너무도 깊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찬양을 틀어놓고 말씀을 관찰하는데 너무 감격이 되어 손을 들고 함께 찬양을 하였다.
아내에게 이 찬양들이 감동이 안되느냐 물었는데, 그냥 좋게 듣고 있단다.
나는 이렇게 마음에서 기쁨이 쏟아 오르고, 감격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몸이 피곤해서인지 그 감동이 전달이 안 되는가 보다.
몇 시간을 그렇게 하였는데도 감격이 멈출 줄을 모른다.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나는 또 기타를 들었다.
작은 소리로 기타를 치며 또 그렇게 하나님께 찬양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은 내 속에서부터 기쁨으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하였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이 삶이 제단을 쌓는 예배로, 기둥을 세우는 헌신으로 계속 드려져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충성하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며 인도하여 주실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둥을 세워 주님께 헌신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네 부르짖음을 듣고 너를 건지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동안 믿음이 없어, 주님을 외면하며, 애써 주님을 멀리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다시 주님의 품 안에서 넓고 깊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샘솟듯 받고 있아오니 참으로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며 감격하며 살게 하시며, 동시에 이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는 통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준비시켜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하는 가운데 제단과 기둥을 세우는 예배와 헌신의 삶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