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본성이 톡톡 튀어 나오십니까?
작성자명 [안나 하]
댓글 0
날짜 2007.03.27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
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10.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미혼시절
상관앞에 나는 종종 불러 들어갔다
너만 예수 믿냐?
네 독선이 싫다
성수 주일이란 명분아래 나는 한달에 두번있는 주일 근무를 할 수 없었다
대신 주중에 밤당직을 자원해서 했다
2년후 지속적인 밤당직으로 인하여 나는 말할 수 없이 연약해졌고
주님께선 성수 주일을 할 수 있는 평안한 곳으로 날 인도해주셨다
자연히 그분과 나는 헤어졌야만 했다
그렇게 헤어진지 3년후
그분은 내 결혼식때 자신의 직속 부하 2사람을 통해 축의금과 함께 축하한다는 카드를
보내주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예수로 인하여 항상
다른 차원의 삶을 선택하도록
끊임없이 공급받는 하늘의 열정 즉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본성이 주는 육질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할 내 영혼의 지성소가
내 본성의 선악과로 혼잡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주님께서는 멸망할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하신다(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여기서 멸망 할 가증한 것 이 무엇일까?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나의 본성 이다
나의 본성은 멸망당해야만 하는 가증한 것이다
세상에 무엇이 부정하며 무엇이 가증하겠는가?
내 본성만큼 부정하고 가증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값주고 사신 결과로 걸어다니는 성전이 된 내 몸에 그렇게 멸망당해야만
하는 본성이 뻐젖이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 심각함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복이 될까?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에게 도피성을 제공해주신다
왜?
멸망당할 가증한 것과 함께 멸망당하지 말라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도피성은 산으로 떠남이다
여기서 도피성이 산이 아니고 산으로 떠나는 그 행위에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가 지상에 사는 한
나는 산으로 떠나는 노정에 있는 나그네임을 인정하며 나그네로서의 홀가붐을 유지하기
위해 늘 이곳에 편안히 안주하고자하는 본성의 가지를 치며 사는 사람임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정확히 파고들어가면 그 산으로의 떠남은 곧 뒤로 돌이키지 않음 이다(16절)
이것은 산이 주는 모든 상징성을 가차없이 벗겨버린다
말씀안으로 들어가는 것
기도에 몰입하는 것
예배에 제물이 되는 것
이러한 경건한 행위보다 더 근원적인 해답을 주님께서는 말씀해주시는데
그것은 뒤로 돌아가지 말라 는 것이다
즉 본성으로 돌아가지 말라 는 것이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가증한 본성의 종말이 어떠한 것인지 보여주는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
산으로 도망가고 있음에도 그 한순간 뒤를 돌아 보았다 는 이유로 소금 기둥이 되였다
왜 하필 소금기둥일까
돌이나 그외 다는 질료로 형성된 기둥이 아니고
하필 왜 소금으로 뭉쳐진 기둥이였을까?
본성을 멸망시키는 작업환경으로 주신 일상과 사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외면한채
말씀과
기도
예배속으로만
자꾸만 몰입해 들어가면
우리도 얼마든지 소금은 소금이되
일상밖으로 버려지는
사회밖으로 버려져 밟히는 소금이 되거나
혹은
아직까지 녹아지지 않는 소금 기둥같은 자아를 무의식적으로
형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모자람보다 못할 때가 있다
주님의 말씀은 한 마디를 알아도 그 한마디를 내가 진정 실현하는데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많이 아느냐 조금 아느냐가 문제 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말씀이 아무리 작은 겨자씨알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 겨자씨 한 알만한 말씀만으로도 능히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말씀은 더욱 더 위대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66권의 성경으로 탄생된 사람이 아니다
그외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그러하다
기도 역시 많이 하느냐
덜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기도의 인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51686;은 순간일지라도 하루도 쉬지 않는
기도의 일상성과 지속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예배 또한 그렇다
진실로 산 제사는 삶속에 있는 것이다
한나는 날마다 성전에 가 예배드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왕정시대를 여는 인류 역사상 딱 한번 나오는
기도의 인물
그리고 그가 있는한 블레셋이 40년동안 얼씬 못할정도로
고도로 강력한 영적 무기 사무엘을 탄생시켰다
나는 조국교회가 소금기둥이 되지 않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거리에 밟히는 소금이 되지 않기를 소원한다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열심으로 스스로 분리되어 졌듯이
조국 교회가 거룩성으로 인하여 조국과 분리되어지는게 아니라
종교적인 열심으로 분리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조국 교회를 보면 멸망해야 할 가증한 본성들이 거룩한 성전에 뻐젖이 보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착하고 우매한 양들은 그 또아리를 튼 성공과 야망의 자아들을 부러운듯 숭배하며
예배 드리는 것을 볼 때 나는 양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운다
나는 우리들 교회와 묵상하는 나와 여러 님들이
이런면에서 정결할 수 있기를 끊임없이 소원할 것이다
오직
멸망받아야 할 가증한 본성으로 인하여가 아닌
예수로인하여(9절),
예수 이름으로 인하여(13절),
고난과 미움을 받는 팔복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이 아침 소원해본다
이런 자들이 고난 중에 할 말이 무엇일까?
나를 예수로 인하여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릴 말외에 무엇이 있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