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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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26
그러나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막>13;1~8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리라...
하셨습니다.
때문에 난리와 난리 소문이 들려와도
#65378;두려워 말라!#65379;하십니다.
지금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요 끝은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내게는
지금은 재난의 시작이고 끝은 아니지만
시작에는 반드시 #65378;끝도 있는 것#65379;이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랬습니다.
해, 달, 별이 떨어지는 사건을 겪은 지난밤은
첫사랑을 회복하는 뜨거운 은혜의 밤으로 지냈지만...
현실로 돌아온 지금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시적인 현상은 드러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아침이 되니 배가 몹시 고픕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보낼 일에 또 앞으로 살아갈 일로
그저 캄캄하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무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그런데도...이상하리만치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걱정과 근심, 염려로 가슴이 쓰리고 아프고 해야 했는데
마음속에는 평강으로 그득합니다.
신기할 정도로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고 주님의 임재가 느껴졌습니다.
#65378;염려는 근심을 몰고 오지만 기도는 응답을 낳는다.#65379;는
좌우명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염려하기보다는 기도에 주력하겠다는 #65378;골방#65379;이 다시금 시작되었습니다.
너는 내게 구하라고~~렘33;3로도 말씀하셨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알라고도 하셨고
비록 더딜지라도 속히 이룰 것이니 너는 기다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연신 뱃속에서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고
차에는 기름 달라고 빨간 불이
주머니는 빈 바닥을 보인채로 달랑달랑...먼지만 풀풀
그러나 현실은 절망적인데...내 심령 안에는 평강과 안식이...
일단은 차를 버릴 수는 없었고
때로는 발이 되어주고
때로는 잠잘 곳이 되어도 주고
때로는 나의 골방이 되기도 해 주는 나의 #65378;애마#65379;였기에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가 아직 몇 장에 천 원짜리도 몇 장 있고...
그게 나의 시작의 밑거름이 될 최종액수입니다.
먼저 강변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
주유소에서 만원어치 기름을 넣고 김밥을 한줄 사서 물과 함께...
배가 부르니 기운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요금을 안내서 발신이 정지된 폰...
그동안 기도원에 있느라 꺼 놓았던 폰을 다시금 켰습니다...
여러 통의 문자 멜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멜을 확인하라는 애들 엄마의 문자도 있었고
과외 학원을 문 닫았다는데 지금어디냐고
문자 확인하는 대로 연락 달라는 학원 친구의 문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친구에게로 갔습니다.
그 친구 내 몰골을 보고는...
아무 소리 안하고 주유소로 함께 가서는 내 차에 기름을 채워줍니다.
그리고 점심을 사 주고는
과외자리를 알아봐 줄 테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절했습니다...
수업을 하려면 강의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쫓겨난 상태에서, 머물 곳도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는...도저히...
그리고 그 친구는 가버렸고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봉투가 하나 남겨져 있었습니다.
만 원짜리 열 장이 든....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PC방에를 들어갔습니다.
세통의 멜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한 통은 ‘지겨움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애들 엄마의 멜
내용은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고 적고 있었습니다.
애들도 이혼에 동의 하였고...애들도 만나기를 거부한다고 적고 있었고
애들 학교로 애들을 만나러 오거나 하면
찾지 못하는 곳으로 멀리 숨어 버리거나 접근금지 가처분을 내겠다. 고도 하였고
내가 어디서 죽었다 해도 안 찾아 갈꺼라는 매몰찬 이야기로 끝나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난리의 소문은 또 있었습니다.
막내 동생에게서 온 멜이었습니다.
집사인 동생이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물질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자라온 막내 동생입니다.
내용인즉...#65378;이혼에 동의#65379;해 주었다고
안 찾아 왔으면 좋겠다고...
다른 형제들도 내가 찾아가서 민폐 끼치게 될 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조카들 보기에도 부끄럽고 창피하니 찾아오지 말고 연락도 말라고 하는
내용의 난리와 난리의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통의 멜은 내 카페를 통해 보내온 내용이었습니다.
아주 우연하게 내 카페를 알게 되었고
나의 청소년 사역과 같은 비젼으로 품고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과
충남 당진에 있는 개척교회인데...한번 와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길 한 번 가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서 그곳을 탐방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장소는 제공하되 모든 것을 다 내 자비로 해야 하는데...
지금은 몰라도 그 때는 도저히 내가 지닌 한계로는...
그래서 기도 좀 해 보겠노라고 하면서
그 교회에서 제공한 전기장판과 얇은 이불하나에 의지하며
찬 교회 바닥에서 밤잠을 자며 며칠을 지냈습니다.
역시 아니었습니다.
기쁨도 없었고 평강도 없었으며...
또 다시 정처 없는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나와야 했습니다.
아직은 시작일 뿐...재난의 끝은 아니기에
그 끝은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다시금 그곳을 떠나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금요일이었으며....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