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성도”만이 누리는 특권
(QT본문: 사 12장 1절 ~ 6절)
2012-08-23. 목요일.
[본문: 사 12장 1절 ~ 6절]
[관찰]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
1.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위로해 주심을 인해 감사하며 찬양할 것이다. (1)
2.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니, 내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노래요, 나의 구원이시다. (2)
egrave; 그러므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마름이 없이 샘솟듯 넘쳐날 것이다. (3)
3. 그 날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고, 그가 행하신 일을 온 세상에 알리며, 그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라. (4)
egrave; 여호와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그를 찬양하여 온 세계가 그 소식을 듣게 하라. (5)
egrave; 기쁨으로 외치고 노래하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다. (6)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구원받은 성도만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생각해 본다.
1. (내적인) 감사와 기쁨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1, 3, 4)
나의 범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른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백성의 범죄한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반듯이 그 책임을 묻고 징계하신다.
사람의 편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구원하신 백성에 대한 사랑의 매다.
사랑이 없다면 위로도 없다.
하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 화를 내셨었나 할 정도로 냉큼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그 분이 나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 내 힘과 지혜로 살았던 시절, 그 시절에 무엇이 나의 기쁨이었고, 누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졌나를 돌아볼 때,
불행하게도 난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지위, 재물, 그리고 명예에 기뻐했고, 그렇게 하기까지 수고한 내 자신에게 감사했다.
결혼해서 직장생활을 하며 따낸 회계사 자격으로 나는 지난 과거의 수고를 한 순간에 보상받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없이 살면서 친척집에 얹혀 눈치 밥 먹어가며 그렇게 구박받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엔 친척집에서 학비 얻어 쓰면서 또 얼마나 서러움을 당했는지, 동생들하고 살면서는 도시락 한번 제대로 싸가지고 학교를 가본적이 없었던 암울했던 학창시절이었으니, 그 과거의 서러움과 한숨들이 얼마나 상처가 되고 씻어보리라 했던지,
회계사가 되는 순간, 이 모든 아픔들을 한 순간에 다 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대견했던지, 정말 잘했다, 참 잘했다 하는 나에게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그 감사와 기쁨의 대상이 바뀌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과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수고한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죄의 문제, 사망의 문제, 천국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 기쁨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을 모를 때에는 죄책감의 문제가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죽으면 그만인데 뭐 그렇게 움켜쥐고 사나 하며 노새 노새를 외쳐댔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인정받고 또 인정 받으려 이기고 또 이기는 싸움을 하면서 가는 곳곳마다 승전보를 울렸으니 자랑과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보니, 죄책감의 문제에서 자유하지 못했었고, 영생을 바라보니 한 없이 절망뿐인 내 자신을 보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인생이 다가 아닌 것을 알게 되니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는 그래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내 인생이 처참하다고 느꼈으니, 이모든 것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케 하신 그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내적으로 기쁨이 넘칠 수 밖에 없었다.
2. (하나님께) 찬양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놀라우신 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고 이것이 찬양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찬양을 묵상하는 가운데, 나는 2천여 년 전,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매를 맞고 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다 자는 고요한 그 한밤중에 찬양했던 사도 바울과 실라가 떠올랐다.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런 상황을 실제 내가 겪는다고 했을 때 과연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었을까?
무슨 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님이 맡겨주셔서,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그것도 친척이나 지인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는 먼먼 이역만리 타지에서 주님 한 분 바라보고 그렇게 모진 고생 다해 가며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환경을 만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에게 오해나 받고, 핍박 받고 매나 맞고 있으니,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지켜 보호하여 주시기는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쳐 찬양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찬양하였다.
“~~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1~25)
지금 바울과 실라는 채찍으로 매를 맞아 등짝은 피로 뒤엉켜 옷인지 살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고, 일반 감옥도 아니고 특별 죄수들이나 갇히는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감옥에서, 발에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착고를 차서, 제대로 앉지도 누울 수도 없는 그 지경이지만, 일반 감옥에 있는 죄수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그렇게 기도하고 찬양을 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한 밤중에.
깊고 어두운 감옥,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절망,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차디 찬 감옥에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찬양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공의와 정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신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반듯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한밤중에 찬양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니 내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노래요 나의 구원이시라. 기쁨으로 외치고 노래하라 너희가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시다”(2, 6)는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이 그들의 고백이요, 그들의 확신이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마름이 없이 샘솟듯 넘쳐날 것이라는 기록처럼 그들은 그렇게 소리쳐 기도하며 찬양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바울 사도처럼 주어진 문제 이면의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자.
그래서 현재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
이 믿음을 갖도록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하도록 매일 간구하자.
참 평안과 위로는 오직 하나님께 있으니, 고난 중에도 언제나 함께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게도 이런 절망의 환경가운데서도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언제나 찬양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실 것이다.
3. (이웃에게) 전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본 지켜 본 간수는 결국 구원을 얻고자 하였고, 바울 사도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여 간수와 그 가족은 구원을 얻게 된다. (행 16:31)
겉으로 보기에는 복음 때문에 바울과 실라가 고난을 받았지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본 불신자 간수는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본다.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는 나를 향한 기대이시다.
오늘 본문 4절은 “그 날에 ~~ 그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내면의 깊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외적인 찬양으로 표현되고 이러한 삶이 있을 때, 세상은 나를, 우리 믿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고, 아니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저렇게 살 수 있나 궁굼하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의무적으로도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 정도로는 바리새인의 외적인 모습 밖에 보여 줄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진정한 전도는 내 삶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인한 변화된 삶, 변화된 언어, 변화된 표정, 변화된 행동이 뒷받침 되었을 때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매일 말씀을 통해, 깊은 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고, 그것이 가족으로 이웃으로 전염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데 쓰임 받도록 준비하자.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만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구원의 감격은 기쁨으로 감사로 찬양으로 나타남을 바울과 실라의 삶 속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은혜가운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게 하시며,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 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의 삶을 통하여 그 놀라운 기쁨과 감사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도록 하여 주님께 인도하는 구원의 통로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구원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감사하는 복되고 귀한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