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요구하는 질문은 어디로 가나?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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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23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There is no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To love him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understanding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s
*more important than* all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주님 당대 하나님의 율법을 보다 더 잘 지키고 보다 더 잘 가르쳐야한다는 명분아래
존재하던 신분중의 하나인 서기관-
나는 오늘 그 서기관이 나처럼 얼마나 하나님께 목마른 자였을까?
그사람 사이드에서 묵상하고 싶습니다
그는 사두개인들과 주님께서 변론하는 것을 듣고 그냥 무감각하게 스쳐지나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어떠한 용기?
그것은 주님을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적어도 그는 주님이 왜 옳은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자기안에 갖추어진 정형적인 율법으로
빌드업된 하나님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였습니다(33절)
그는 아직 주님을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선생님으로는 부르지는 않지만
그나마 주님을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32절)
아시다시피 그 역시 백성들로부터 선생이란 호칭을 듣는 서기관입니다
선생이 또 다른 선생을 인정함에는 선생된 자격여부를 자신의 인식 체제안에서
검색한 후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나 보고
선생님!
선생님!
하지 않지요
그는 주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답변하시는 것을 들으며 주님이 옳다는 타탕성에 신뢰를 두고
질문을 던집니다(28절)
그는 자신의 소신을 다시한번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을것입니다(33절)
그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28절)
그의 소신은 나의 소신이기도 합니다(33절)
주님 당대
그 사람처럼
나도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명분아래
수많은 말씀들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는가운데 무엇이 가장 큰 것일까?
왜 아니 그 큰 것을 붙잡고 싶지 않겠습니까?
쫄망쫄망한 것들에 구속당하느니
어디 좀 시원하게 확 트인
대도
대의
에 구속당하는게 훨씬 더 낫지않을까 싶으니...........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크고 작음이 없음에도 보다 더 잘믿고자하는 인간의 의가
발동을 걸면 그런 질문하게되지요)
더구나 주님 당대 그 서기관은 육백가지가 넘는 율법조항을 지키며 가르쳐야 할 상황이니
그 질문은 결코 우연이 아닌 그 시대적인 필연성의 소산물일 것입니다
오늘날
나 역시
시대적인 상황이 요구하는 필연성의 질문이나 할 줄 아는 사람일까?
질문이 없는 사람을 어떻해 생각하시나요?
질문은 적어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주님께 질문을 하며 살렵니다
울 주님
사두개인의 질문에도
서기관의 질문에도 답을 주시는 분이신데
하물며 우리일까?
서기관이 주님께 질문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지렛대는 주님은 옳다는 것이였습니다
주님이 옳다면 내가 무슨 질문을 하든 내 질문에 상관없이 옳은 답변을 주실 것입니다
그 옳으심이
어떠한 궤변이나
어떠한 가설이나
어떠한 시티콤처럼 난발된 우연성으로 생긴 사건들이나
어떠한 문학이나
어떠한 영화이나
어떠한 자살이나
어떠한 전쟁이나를 막론하고 그 사건에 개입하사 옳다 인정받는
열쇠를 지니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분의 처사라면 능히 우리들의 비극을 쓸어주고도 남음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옳음의 능력입니다
지금
우린 다변화된 사회
언제 어떻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국제 사회속에
휘청거리는 경제와 물가
휘청거리는 사랑과 가치관
취청거리는 학문과 학교
휘청거리는 나라와 권력
휘청거리는 건강과 의료
휘청거리는 과학과 살생무기
휘청거리는 남편과 아내
휘청거리는 자녀들과 그 미래
휘청거리는 상관과 직장 등등..............
모든 것들이 버블버블 거품화되어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일수록
내가 가져야 할
대도
대의로부터 기초한
자기소신 하나는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대한 모든 저항의식을 비롯한
불분명한 의혹의 찌기들을 내버리고
삶의 오장육부 온 전신을 이끌고 갈 수 있는
단 한가지 소신을 분명히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그 한 서기관이 되여 질문합니다
주님!
이렇게
수많은 정보와 지식과 큐티와 쏟아지는 물품들사이에서
내가 붙잡고 소신껏 살아야 할 가장 큰 것을 무엇입니까?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이렇게 답해주시는 주님앞에
서기관의 반응은 나도 깜짝 놀라만한 소신을 이미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
(종열 형제님이나 그외 다른 분들이 제게 털어논 리플들을 읽었을 때
저는 그분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삶의 소신에 저으기 놀랐답니다)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To love him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understanding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s
*more important than* all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주님은 자신의 답변을 옳다고 인정하는데에서 더 나아가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이다 라고 윤택을 더하는 서기관의 말을
지혜롭다고 평가해주십니다
이미 그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진정한 제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허다한 제사와 예배보다 더 낫다라는
소신을 지니고 살았던 사람이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주님으로부터 찬사를 듣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적인 질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입니까?
가 아닐까 하네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가는 곳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이겠지요
휘청거리는 모든 기존체제들 너머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그 나라
그 견고한 성으로
우리들은 가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