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넉넉한 자
작성자명 [크리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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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23
2007-03-23 마가복음 (Mark) 12:18~12:27
한 중년남자와 아이들 셋이 전철을 탓습니다.
아이들은
전철 안에서 이리 저리 뛰고 소란을 피워
주위사람들의 인상을 찌프리게 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뛰노는데
어찌, 제제를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지
중년 남자에게 눈총을 줍니다.
드디어
남자가 말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아내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이들이 엄마를 잃은 슬픔을
저렇게 표현하고 있으니 이해 해 주십시오.
순간,
험악하고 살벌했던 분위기는 바뀌어
어떤 이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남의 형편과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현상만 가지고
이웃을 정죄할 때가 많습니다.
헛 똑똑이 입니다.
존재가 초라한 사람입니다.
사두개인은
조그만 지식을 가지고
감히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 것도 순수한 동기가 아닌, 올무를 뒤집어 씌우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2000 여년의 경력이 많은 사단은
할수만 있으면
예수님까지 넘어뜨리려
벼라별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음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용서하시며
왜, 그랬느냐? 고 물어보거나 정죄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목 마른 자 에겐
가까이 다가가시는 분입니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배고픈 무리들을
먹이시는 사랑의 주님 이십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세리 마태에게도 다가 가시고,
키가 작아 열등감에 젖어 있는
삭개오에게도 다가가시고,
약한 자에게, 굶주린 자에게, 목마른 자에게,
사랑으로 다가 가시는
존재가 넉넉한 분 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악한 지도자들에겐,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엄히 꾸짖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내면이
진리와 정의로 가득하면
이웃의 눈치를 보며 처신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던지 여유가 있고
담대합니다.
존재가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이
열등감으로 인해 배배 꼬여 있고,
시기, 질투, 원망으로 가득하여
존재가 초라한 자 들은
남들이 하는 일마다 못 마땅해 하며,
사사 건건 문제를 삼아
시비를 걸며 이웃을 괴롭힙니다.
자신의 내면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위장하여
그렇게 표현할 뿐입니다.
마치
열등감이 심한 자가
완벽주의로 표현함과 같습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커버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형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가진 조그만 지식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
그리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이웃에게
존재 넉넉한 주님 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