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11;1-16
누구나 믿음의 시작은 참으로 미약합니다.
한 싹이고 한 가지의 연약함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신 것도 그랬습니다. 시골 깡촌의 강씨들이 많이 사는 마을의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온갖 우상과 잡신이 많은 시골 마을의 가운데 집안이었습니다. 거기서 배다른 누님 2분포함 10남매의 막내인 내가 제일 먼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너무 어려서 어떻게 다니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전도사님이 있었던 기억은 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어서 성인이된 지금도 걸어서 30분 이상은 족히 걸리는데 빠지지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엄하신 아버지의 큰소리 한마디면 못다녔을텐데 아무소리 안하신 것 같습니다. 연약한 싹이고 가지이지만 여호와의 신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이 확실합니다. 딱딱한 마루바닥에 무릎꿇고 예배했던 기억은 여호와를 경외하였던 어린 마음이 있었고, 그때 드렸던 예배가 후에 서울에 와서 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생각하고 찾게 되었습니다.
내안에 서서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즐거운 마음이 자라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공의로 정직으로 성실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그 입의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 후반으로 가고있는데 천국을 소망하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더욱 충만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충만하여지고 그 아는 지식대로 사명을 감당하여 마치게 되면, 이리와 사자가 어린양과 뛰놀며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상함이나 해함이 없는 곳에 이를 것입니다.
그 소망을 잃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깃발을 잘보고 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건과 환경으로 싸인을 주시고 경고를 보내시는 것을 잘 분별하여 가면 남은 자가 될 것이고 결국 주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계속 기를 세우시고 #51922;긴자와 이산한자를 모으시고 투기를 없애시고 괴롭히던 자를 끊어 내십니다.
내 자아가 앞서고 혈기와 세상욕심을 내세우면 주님의 깃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고 갈길을 잃고 헤메이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흔드시는 깃발을 바라보고, 나의 환경과 사건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부르며 가는 자들은 반드시 남은 자가되어, 여호와께서 바다를 말리시고 대로를 만들어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충만할 수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밟힐 수도 부러질 수도 있는 자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충만하여
주님의 깃발아래 모이는 남은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