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QT본문: 사 10장 16절 ~ 34절)
2012-08-21. 화요일.
[본문: 사 10장 16절 ~ 34절]
[관찰]
앗수르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1. 전염병과 불로 징계하시고, (16)
2. 비록 앗수르 군이 막강하고, 그 수가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단 하루 만에 병든 사람이 죽어가듯 그들을 모조리 진멸하실 것이다. (17, 18)
egrave; 혹시 살아남은 자가 있을지라도 그 수가 너무 적어 아이라도 수를 셀 수 있을 정도. (19)
남은 자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1. 살아 남은 자들은 앗수르를 다시는 의지하고 않고,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게 될 것이다. (20)
egrave;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들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 (21, 22)
2. 그러나 공의에 따라 파멸하기로 작성하신 자들은 반듯이 끝까지 멸하신다. (22, 23)
앗수르에 위축된 남은 자를 격려하시는 하나님
1.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 (24)
egrave; 비록 그들이 너희를 침략하고 공격할지라도
2. 내가 곧 너희에 대한 분노를 그치고 앗수르를 진멸할 것이다. (25)
egrave; 내가 그들을 미디안 사람들을 쳐 죽인 것처럼, 애굽을 벌한 것처럼 벌할 것이다. (26)
egrave; 기드온 300용사가 미디안 군대를 격파한 것처럼,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가 몰살한 것처럼 벌할 것
3. 내가 그 날에 앗수르의 압박에서 너희를 풀어주겠다. (27)
egrave; 너희에게 지워 준 멍에가 부러져 더 이상 너희에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4. 앗수르가 승승장구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교만을 좌시하지 않으시고, 나뭇가지 치듯 그들을 쳐서 멸망시키실 것이다. (28~34)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앗수르였지만, 교만하여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를 넘어 세상을 정복하려는 꿈을 꾼 결과, 결국 징계받기에 이른다.
전염병과 불로 앗수르를 하루 사이에 “전부” 징계하겠다 하나님 말씀하신다. (16)
그 결과 그렇게 막강하고 수가 많았던 앗수르였지만, 징계 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셀 수 있을 정도의 남은 자들일 것이라 말씀하신다.
유다가 하나님을 불신앙 하면서까지 그토록 의지하였던 앗수르였지만, 하나님께서 한번 징계를 결정하시고 치시니까 그냥 하루 아침에 없어져 버리고 마는 안개와 같다.
앗수르 하면 당대 최고의 군사력으로 천하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천 년이고 계속 세상을 다스릴 것 같았는데, 이렇게 하루 아침에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처럼 하나님 외에 믿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인데, 우리네 인생은 말씀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수도 없이 듣고, 깨닫는데도 어떤 때는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니,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또 참지 않으시면 우리 인생의 소망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귀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세상의 도구를 사용하여 징계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은 구원을 이룰 자를 남겨두셔서 계속 희망의 불씨를 이루어 가심을 본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다시는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신뢰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가신다.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여 징계를 주시고, 또 남은 자를 두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이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시고…
내가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하나님을 의심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징계나 받고…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내 수준이니, 무엇을 잘났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바울 사도의 탄식 앞에 내 힘으로 살 수 없다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내가 잘났다 네가 잘났다 서로 아옹다옹하며, 자기 위세를 자랑하고 있으니 우습기 짝이 없다.
이렇게 구제불능인 나를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부족하지만 이렇게 나마 하나님을 신앙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억지가 아닌 자발성으로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묵상하며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에 더욱 견고해지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을 구별하여 드리고,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오래있고 싶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는 사랑의 대화도 많이 하고 싶다.
그가 원하는 것도 해 주고 싶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와 같이 오래 있고 싶고, 대화도 많이 하고 싶고, 또 그 분이 원하시는 것도 해 주고 싶은 것인데, 내가 얼마나 그 삶을 양적으로 질적으로 잘 살고 있는지를 돌이켜본다.
더욱 깊이 내면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나의 시간과 마음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을 다짐해 본다.
2. 주신 고난의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한다.
징계 중에 있을 때, 왜 그 징계를 받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 기간을 겪는 중에 마음에 요동함이 적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왜 징계를 받게 되었는지를 모른다면 참으로 큰 고통 속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원망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대인관계에 자신과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까 내 삶의 고난에 대한 해석을 하지 못하면, 인생에 있어 총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성경은 계속하여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그것이 죄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다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고, 앗수르는 교만의 죄를 지어 징계를 받고 있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그런데 징계 중에도 징계의 의미를 잘 해석하여 고난을 이겨내고 남은 자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징계로 파멸에 이른다.
은혜로 남은 자와 징계로 파멸된 자.
어떤 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은혜 안에서 남은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은 자가 되려면,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주신 고난을 인내하며, 잘 감당해야 한다.
죄의 결과로 받고 있는 징계를 남의 탓 운운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남은 자로서 선택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지고, 끝도 없는 고난에 고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왜 고난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을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3. 하나님을 건강하게 두려워해야 한다.
엊그제 저녁때까지만 해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잠을 잘 때 열매야 현상이 있더니만,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계속 비가 오면서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다.
계속되는 열매야에, 이 지긋한 더위가 언제 끝나나 했지만, 이렇게 자연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처서(8월23일)가 성큼 다가오니 더위는 선선한 절기의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엊그제의 더위가 언제였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언제 선선한 바람이 불까 했지만, 자연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찾아오는 절기를 보면서, 영적 법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이 기승을 부리고, 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넘쳐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정말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때가 차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어김없이 찾아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악을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양한 축복된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이지만, 이들 또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오래 참으시는 중에 하나님의 때에 영적 법칙인 공의의 심판은 피해 갈 수가 없다.
범죄하면 어김없이 때가 되어 그 책임을 물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22)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신앙함에 있어 올바른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 좋다.
하지만 그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자신의 삶을 늘 돌아보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도 이와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내 할 것 다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한 후에 그리고 나서 할 수 있으면 하고, 하고 싶으면 하는 잠깐 잠깐의 삶을 받으시지 않는다.
또 하나님은 겉으로 잠깐씩 보여지는 약간의 종교활동들도 받지 않으신다.
주일에 교회 한번 오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알량한 봉사 조금했다고, 선행 조금했다고 신앙생활을 다 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삶 전체를 당신께 드리라 하신다.
내 인격, 내 시간, 내 물질, 내 건강, 내 재능, 내 계획… 이런 나의 모든 것을 드릴 때,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고 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며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어떤 글을 읽으니까, 하나님이 일관성이 없으시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하지만, 마냥 좋으신 하나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언제나 옹야 옹야 하면서 사랑만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과연 이 세상에 공평과 정의가 설 수 있을까?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렇다면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누가 씻어줄 것이며, 이들은 무슨 소망으로 누굴 의지하여 살 수 있겠는가?
세상 그 누구도 내 원수를 갚아주지 못하고, 갚아 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원수 갚는 일을 내게 맡기라며 반듯이 갚아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을 참고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되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세상 막대기와 몽둥이가 비록 너를 칠지라도 두려워 말라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래지 않아 그들을 진노로 멸하심으로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의 균형을 잃지 않고 옳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균형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신앙할 것을 다짐해 본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고난과 징계의 말씀 중에도 이렇게 소망을 갖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요
하나님은 고통과 멸망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징계와 고난을 주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징계의 사건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 되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섬기게 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겪는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또 균형잡힌 신앙을 위해 하나님 건강하게 두려워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오늘 하루를 살기 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신 말씀에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며 섬길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함께 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