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 : 1- 7
고통하던 백성.
옛적.
흑암에 행하던.
그늘 진 땅에 거하던
스불론과 납달리.
예수님이 걸으시던 해변 길과 갈릴리.
수치와 소외, 탄압 받는 땅에 빛이 비추고 .
낮고 천한 이들에게 먼저 비추시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잘 되어도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정도로 낮아져 있기 #46468;문이라는 것.
언젠가 어릴 때 고생하고 가난을 겪은 이들에게 이제 남보다 잘 살고 누린다는 말씀 들으니
심통이 올라왔다. 최근에는 3년 째 8 번의 직장을 들고 나는 남편의 행동에 말 없음표로 반응한다.
언뜻 어릴 #46468; 호강 좀 했다고 이렇게 가야한담...? 하는 소리는 내 고백이면서 내것이 아니다.
오랜 탄압과 가난에 익숙해져버린 두 땅. 익숙해져버린.
힘이 날 싹이 짤려버린 것.
고집과 오만의 죄성을 두 살 이하에 잘라버려야한다고.
그래서 어린 날 받는 고통 슬픔이 눈으로 보기엔 안쓰러워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만 않음 살아가는 지혜를 알게 되는듯.
한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ㅇㅣ런 상황 저런 인생에도
한 아기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기묘자, 모사,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정사 ,, 평강, 공평, 정의 , 무궁.
만군의 여호와.
어제 목장에서 "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하는 얘기들이 오간다.
하늘 아래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오신 이래 이제 이 사건 , 이 삶은
힘들고 지겨워도 , 삼림을 잡고 흔들어대듯 강타한대도 그 영존에 ,
그 기묘자에 타격을 줄 수 없다. 이유가 있어 실업을 허락하시고 이유가 있어
긴 보증의 후유증을 겪게 하신다.
어린 날 아빠 사랑을 못받았나, 어린 날 고운 옷을 못입었나, 어린 날 반짝이는 차 옆에
작은 얼음 공주 말간 옷입고 말없이 서 있다.
이제 참된 한 분 거룩한 아버지의 양육은 헤헤 웃으며 말간 드라이브만 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 잘 마치자.
사랑, 공감, 체휼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