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창녀가 아냐? 진짜 창녀는 바로 이 바보 아나라구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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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3.22
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어제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잠시 쇼파에 앉아 있는데
뜻밖의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였습니다
지난번 제 큐티난에 정아님을 위해 전화 번호를 잠시 올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 전화번호를 기억하신 분으로부터 받은 전화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말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드님(김종묵)을
이제껏 돌보아 주길 35년이라 하십니다
35살된 아드님의 눈빛과 늘 무언의 대화를 나누시며
아드님의 온갖 시중을 드시는 그분께 이 아침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그리고 38년된 병자를 찾아가 고쳐주셨던 그 주님이 너무나 그리운 아침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주님의 보혈을 통해
마음을 주님의 보좌로 고정시키시고
단 일초라도
김종묵과 그 어머님을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요
전화를 끓고는 그분만의 그 고유한 삶의 무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보게 되였습니다
나는 이제껏 뭐 그리 힘든 삶을 살았다고 떠버리는 군중이 되여 살았을까?
그분은 고독한 그 한 자리를 이제껏 지키며 사셨는데...............
눈물이 흐릅니다
참 가소롭습니다
참 경박했습니다
어젯밤도
그렇게
그런 모양으로
어김없이
절 찾아와
그 분을 통해
나의 가소로움!
나의 경박함의 수치를 드러내시는 주님의 강력한 펀치-
그래 이 아침까지 뭔지모를 멍멍함에 정신을 못차리겠습니다
레몬 티를 마시고
컴앞에 오늘 묵상을 올려놓은채
눈 감고
머리만 뒤로 재켜 의자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살펴봅니다
허나
나는 내 영혼을 살펴 볼 혜안조차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시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옵니다
홀짝 홀짝 어느새 잔은 비었는데
영혼엔 아무 소리도 안들립니다
이럴땐
영낙없이
주님 그 한 분만을 더욱 더 부르는데
오늘은 주님이 마치 35년동안 말못하고 사는 김 종묵님인양 침묵만 흐를뿐입니다
그래
나는 또 다시 어쩔 수 없이 딩굽니다
어떻해하면 저 주님의 침묵을 해독할 수 있으며
아울러 그 해독과 함께
한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태고적의 종을 맘껏 울리게 할 수 있을까?
침묵의 뇌관을 깨뜨려야만 울리는 그 소리
에덴의 그 종소리~~~~~~
오늘 나는 내 영혼의 거리이며
동시에 주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어 건설된 이 광속의 거리에 한 침묵의 님을 명패에 새겨
달아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김* *종* *묵*
주님의 침묵은 대단히 의미가 깊습니다
이사야는 수난의 종을 기록할때
그분이 침묵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침묵은 우리들의 죄를 고발하지 않기 위한 의도적인 침묵이셨습니다
이곳에 오픈되어지는 죄악들외에
수많은 죄악들이 침묵속에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보고 싶은 얼굴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나로인하여 수모를 당한 창녀입니다
창녀라도 얼마든지 주님을 믿으면 새롭게 살 수 있다는 혁명의 깃발을 꽂아주고 싶은데
창녀라는 자신의 연민에 갇혀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얼굴-
하루는 그 얼굴을 보다못해 그만 그녀의 뺨을 억세게 후려갈긴 나-
이제는 나마냥 중년이 되였을 그녀를 다시만나 그녀앞에 무릎끓고 빌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내 컴 뒤로 식탁이 있는데 거기엔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 노인의 사진이 놓여져 있습니다
남편이 얼마전 토론토 스타에 나온 기사를 가위로 오려 놓은 것입니다
그 울먹이는 할머니 사진은 나로하여금 가슴을 욱쬐이게 만듭니다
거룩한 사랑보다는 거룩한 혈기로 왕성했던 내 오래된 수치를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때린 따귀로 그녀는 얼마나 울었을까?
반면 나는 얼마나 까막히 그녀의 상처로 우는 소리를 기억도 못하고 살았을까?
강권적인 주님의 개입으로 그 잘못을 뉘우칠때는 이미 그녀는 내곁을 떠났는데.....
이제 한시라도 빨리 만나 무릎 끓고 빌고 싶은 이 괴롬 뒷면으로
내가 그녀를 만나 사죄함으로 나는 홀가분할지모르나 그녀는 다시한번 젊은 날의
창녀된 수치를 또다시 기억해야만 하는 아픔을 상상해보노라면 나는 이대로 나의 괴롬을 안고 살아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
정부는 해마다 봄이오면 직업적인 윤락여성들에게 교양강좌를 배설합니다(지금도 그런지모르지만...)
그때 나는 시로부터 초청된 강사와 함께 그 자리에 가 강의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강의가 무르익을 무렵 난데없이 기자들이 현장에 몰려와 기사를 실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그순간 일제히 고개를 떨구던 그녀들의 모습은 거대한 충격으로 아직도 내 망막에
남아 있습니다
그 모습을 알기에 나는 그들을 더욱 더 잊을 수 없으면서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였습니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는한 나는 그들의 과거사를 기억케하는 율법일뿐이기에........
그런의미에서 나는 대 속죄일에 광야로 버려지는 아사셀이란 한 마리 제물처럼
그들의 면전에서 할 수만 있으면 멀리 사라져 생명있는 날까지 괴로운 기억의 피를 흘리며
살아야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침묵하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아픔 그들의 죄를 고발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조국을 떠나게 되고 이민의 삶은 만만치 않아
그 창녀는 그래도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았지만
나는 생계보다 더 세련된 문화적인 삶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순간 맘몬앞에 내 양심과 영혼을 팔며 살았던가?
흐느껴
흐느끼며 그들에게 내가 지금
속삭여 주는 말이 있다면
너는 창녀가 아냐
진짜 창녀는 나야!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습니다
아빠!
오늘의 묵상을 올려놓고는 내 경박하고 초라한 삶의 몰골을 보느라
아침부터 오늘 하루를 다 소비한 기분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수치를 고스란히 덮어주신 아빠!
그 아빠의 얼굴에 입을 맞춥니다
아빠가 덮은 수치 있어
나도 나의 입술을 덮고 침묵을 배웁니다
묵상하지못한 오늘 말씀 그대로 영혼에 담고
가이사의 거리로 나갑니다
이 가이사의 거리에서도 하나님의 거리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