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사 7;10-25
아하스는 이미 앗수르에게 마음이 가있었습니다. 마음이 떠나면 그어떤 진리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완악하고 완고함입니다. 앗수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에게는 여호아께서 말씀하셔도 들리지 않고 어떤 성경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시험치 않겠다는 말로 하나님과 관계를 끊으려는 변명을 하며 마음이 떠나갑니다.
과거에 예배시간은 달콤한 졸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집중하려고해도 말씀이 전혀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설교하시는 분의 탓으로 돌립니다. 내용이 강약이 없이 단조롭다느니 감동이 없다느니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느니... 누가 추천해준 신앙서적을 읽는데 한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돈벌 궁리와 재미있게 놀 궁리로 가득찼습니다. 마음을 세상에 빼앗겨 버린 때였습니다.
안들리는 아하스에게 이사야는 들으라고 또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다윗집안이고 구원을 위한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택함이 있는 사람이 들리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참으시고 징조를 주십니다.
믿는 자는 임마누엘의 징조를 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연은 없다 합니다. 나에게 온 사건과 환경은 임마누엘의 징조로 받아들이고 깨달아야합니다.
사건이 왔어도 생각지 않고 헤아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곧 머지않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뻐터와 꿀을 먹을 줄 알기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참으로 많이 괴로우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많은 경고를 무시하며 지냈습니다. 또 나는 지금의 환경과 사건이 영원할 것처럼 두려워하며 낙심하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에 맡겨버려 그릇 행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잠시라는 것을 잊고 살때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아하스도 안타깝지만, 아하스보다 더 많은 예조와 징조와 증거들을 보고 듣고, 또 예수님이 오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보고도 아하스처럼 행하는 내가 더 안타깝고 슬픕니다. 참으로 이슬픈 나의 인생은 언제까지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당하는 일밖에 없고, 그래도 안돌아오면 망하는 것입니다. 10지파의 에브라임이 그랬습니다. 생각 할수록 기가 막힙니다. 오늘 유다마저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 기가 막힙니다. 얼마나 더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는지,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매일 매시간 넘어지고 자빠지고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 수없을 지경입니다. 인간의 잘난 교만과 불순종은 죽을 줄을 모릅니다. 그래도 끝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있고 그사랑을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니 살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아하스가 하나님과 맞서고 있습니다. 결국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는 것은 내 삶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맞섰던 나의 죄악의 결론입니다.
인간의 돌이키지 않는 교만이 그날에는 앗수르를 부르고 온 지경이 파리와 벌로 망하게 되고 온몸의 털이 밀리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끝이 없는 구원의 사랑은 그날에도 남아 있는 자를 두시어 뻐터와 꿀을 먹이십니다.
그날에는 세상가치가 전혀 쓸모없이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질려와 형극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지되고 도움이 되던 재물이나 보습도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 됩니다. 그날에 세상은 소와 양이 밟는 곳이 될 뿐입니다. 세상은 잠시이고 영원을 품고 사는 인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주님.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설득을
아하스처럼 멸시하며 살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은 반드시 오는데
그날에는 남은 자로 뻐터와 꿀을 먹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망할 세상에 매달리지 말고 그날을 준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