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작성자명 [안나 하]
댓글 0
날짜 2007.03.19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14.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도 해야 할 때가 있음을
오늘 배웁니다(6절)
한번은 예배중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부정한 곳을 떠날지어다 라는 말씀이 하도
강하게 들려 결국 그 현장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현장을 떠남으로 그 현장에 머무는 사람들과도 떠나게 되었고요
그후
그 현장엔 크고 작은 징벌들이 지속적으로 한 삼년간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왜 떠나라고 명했을까?
그리고 우리가 떠나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떠나지 않고 같이 있으면 주님의 진노를 그들과 함께 받을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바울이 내게 주님의 이름으로 떠나라고 명령한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유심히 살펴봅니다
의외로 바울은 종교적인 경건의 대열에서 이탈된 자를 지목하여 그들로부터 떠나라 하지 않고
노동과 휴식의 두 바퀴가 돌아가는 사회적인 삶의 일상으로부터 이탈된 자들을 지목하여
그들로부터 떠날 것을 명하고 있음을 봅니다
내가 몸이 마악 안좋아질 무렵
아마 작년 연말이 아닌가 해요
한 자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도하니 주님의 일만 하라고 해서 일을 안하고 있다고........
그리고 덧붙혀 내 몸이 아픈 것도 주님의 일만 하라고 아픈 것이니 속히 사업을 정리하라고.....
그래
내가 할 주님의 일이 무엇인대요
라고 되레 반문하니 그거야 본인도 모르고 주님께서만 아신다하니......
그분의 말이 지워지지 않아 잠들기전마다 그분 이름을 주님께 불러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이주 지나서인가?
본인이 다시 일을 하게 되였다고 제게 와 말을 하는 것이였어요
참 감사하더라고요
내가 알기로 가장 확실한 주님의 일은 노동입니다
그 확실한 주님의 일이 노동이라는 것을 자각하기까지
우리들은 무수한 기도를 올리기도하고 수많은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자기의 노동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엔 그는 자신의 손을 쉬임없이 놀리며 목회의 경건성에
노동의 경건성을 병행하여 심어놓은 사람입니다
제가 아이 셋을 키우며 가장 많이 해준 말이
일하기 싫으면 먹지 말라! 였습니다
울 주님께서는 게으름과 악을 달리 구분지어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리고 부지런함과 착함(선함) 또한 달리 구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바울은 주님의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자신의 몸으로 친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본받으라! 말할 정도로 자기 몸을 주님 몸에 연합시킨 자입니다
이제 그가 또 말합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치말라 고.........
내게는 사랑하는 오빠가 있습니다
그 오빠가 대성목재 다닐적에 그만 손가락이 잘리웠습니다
그 오빠가 대청마루에서 철없이 뛰어노는 막내 여동생인 제 귀에 크게 들리도록
시를 #51014;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슬퍼하거나 노하지마라 는 푸시킨의 시였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선 또한 종교적인 선 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그 선은 바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노동과 휴식의 일상적인 선 이라 보는 것이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무너뜨리는 예리한 검이 아닐까 하네요
그래야만 종내는 생활 현장속에 드러내야하는 주님의 임재 즉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열매가 맺히지 않을때 찾아오는 설움과 분노-
그것은 낙심으로 낙찰되여 살고픈 욕망마저 앗아가 버리지요
바울은 그러지 말라 합니다
제가 얼마전에 한국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30년을 부부가 맞벌어도 내 집 장만이 어렵다는 한국 경제를 진단한 전문인의 말을 듣고......
허나
바울은 말합니다
일상적인 사회궤도를 순히 도는 그 선한 행위에 낙심치 말라 합니다
집을 사고 못 삼이 경제에 달려 있는 것 같아도
실은 그게 아닙니다
왜 그게 아닌지 바울은 다음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16.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그 이유인즉 우리들에겐 경제 전문인만이 있는게 아니고
평강의 주 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평강의 주 는
어떤 특정한 때
어떤 특정한 일에만 급히 나타나 손보아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평강의 주 는
때마다
일마다
다시말해 일상이란 시간과 공간속에 담겨지는 우리들의 모든 선한 노동에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평강을 주시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성전이나
거리나
시장이나
공장이나
감옥이나
빈들이나
그어디나 그분의 거처가 되여 평강의 집일뿐입니다
그분이 필요하면 집주지요
나는 내 성격에 집사고 건물사는 성격이 아닙니다
허나 그분이 필요하니 그분이 사도록 하시더라고요
가진 돈 없이..............
먹고 남는게 헌금이다라고 살았으니 무슨 돈이 수중에 있겠습니까?
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이제 저도 오늘의 묵상을 마감해야겠네요
실은 오늘 묵상을 거의 다 올렸는데 자판기를 또 잘못 눌러 날아가버렸답니다
치워버릴래다가
행여
기다림으로 기다리는 자 있을까 싶어
나를 위해서가 아닌 목마른 자를 위하여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더니
벌써 마감할 때가 되였네요
부족한 나이지만 넘어지고 깨지고 자빠져 죄와 얼룩 가득한 상처투성이로 살았어도
주님이 날 떠나지 않고 날 붙잡고 살았기에 주님으로 인한 표적이 글마다 묻혀있으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내가 누리는 이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흘러들어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공유한 연합의 평강이 넘쳐나길 간절히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