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처한 상황, 매 순간 직면하는 현실의 비천과 암담함..을 기록하는 대신
부드러운 플#47361; 선율에 몽상 같은 가상을 기록했담 그를 알아줬을까..
벌거벗은 그의 치열한 생이 적나라히 열려져 한 줄기 빛으로 임하지 않았을까?
그는 엄동설한 감방의 추위 속에도 한 장 한 장 기쁨의 빛을 쬐고 있엇다...
시온을 조롱하듯, 끓어오르는 사랑의 진노를 세세히 딸의 부패를 지적하며 만방에 알려주신
의도는 무엇일까?
친히 자기 고백, 내면의 부패한 내 딸의 진상을 드러내는 분은 아버지가 아니다
무서워도 참담해도 그렇게 무서울 수 없는 만군의 주, 거룩만이 다가설 수있는 심판주로
어떻게 인간적인 부성애에 비하겠나. 우리에게 캄캄한 밤중을 주시고 부르고 찾아도 안계시고
답하지 않으시는 부재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
이사야 5 : 13-23
사로잡힌 이유는 " 내 백성이 무지함을 인해 사로잡힐 것이요."
한없는 음부의 욕망은 탐욕스런 인간의 것과 닮아 거룩을 모르는 무지한을 삼킬 것.
거룩하신 분을 인식하는 때에만 초장에 누운 양처럼 평안하리라.
고난으로 가치관이 변해야만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변화는 말씀으로만 가능하다고.
인간(나)의 죄는 하나님만큼 절대적인 부패성이므로 하나님이신 말씀이 싸워 건지시는 것.
왜 그렇게 흉하고 창피한 자신의 백성, 그 유다야 말로 온 세계를 주님꼐 인도할 제사장인데
무자비하게 진상을 드러내시는 의도를 이사야에 들어와 생각한다.
하나님이 드러내시는 것은 타락한 딸의 치부다. 부친의 피를 쏟는 것일까.
친히 모델이 되셔서 토해내라, 네 무지를 토해내, 벗기지 말고 벗어, 안되면 안벗고 체면 한 자락 쮜고
버둥거려요 말해. 하나님 대신 무가치한 개털모자 쓰고 진상을 스스로 모르니 거짓 말더듬이로 뽀얀 몽상에
빠져 있다오, 말도 못한다. 말 못해 그 어둠이 입을 열어 삼키는 거다. 100% 부끄러운 인생 말하면 조금 가벼워.
먹니 못먹니 궁상도 괜찮지만 그 어려운 내 죄 말씀에 부대끼면 썩어빠진 시궁창 냄새 모신채 우상으로 꺼덕거리질 않아.
오늘도 한 썽질 , 밥만 하는 한 여름 썽질은 나지만 부러워하진 않겠소 .
창조가 다 고갈나는 소리가 들려도 나의 가치가 아직 때를 못 벗고, 자아의 핑크빛 거짓 환상에 침흘리는 교태는
목졸라 죽여버리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