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복으로 바꾸는 원리
(QT본문: 사 5장 13절 ~ 23절)
2012-08-11. 토요일.
[본문: 사 5장 13절 ~ 23절]
[관찰]
하나님의 심판 예고
1. 백성은 무지 때문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지도자는 굶어서, 백성은 목말라 죽을 것. (13)
2. 사치와 방탕을 탐닉하던 자들은 음부에 이르기까지 낮아질 것. (14, 15)
3. 그러나 공평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함을 나타내실 것. (16)
4. 유다가 멸망하여 황폐해 질 때, 어린양들은 거기서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풀을 뜯어 먹을 것이며, 이방인(나그네)들도 그러할 것. (17)
화 있을찐저
1. 대담하고 뻔뻔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임할 것. (18)
egrave; 이들은 거짓된 지식과 언변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불법을 합법화시킴으로써 악을 행함에 있어 더욱 담대해 진다.
egrave; 이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며 “하나님이여 속히 우리를 벌하소서. 우리는 당신이 계획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 (19)
2. 도덕을 파괴하고, 가치 전도(顚倒)에 앞장서는 자들에게 임할 것. (20)
egrave; 이들은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오히려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된 논리를 펴고, 선과 악의 구별을 왜곡시킨다.
3. 자기 자신을 지혜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 (21)
egrave; 자기 중심적 논리를 펴고, 자기 위에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훈계나 경고도 잘 듣지 못하고,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모른다. 참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1: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9:10)
4. 술에 젖은 불의한 재판관들에게 임할 것. (22, 23)
egrave; 이들은 용감하고 힘이 넘치지만, 기껏해야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용감함이며, 독주를 겁 없이 마구 퍼 마시는 힘이다.
egrave; 하나님께서 의와 공평을 위해 사용하도록 주신 용감함과 힘이 엉뚱하게 사용됨을 본다.
egrave; 또한 이들은 뇌물을 받고 범죄한 자들을 놓아주며,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다.
[교훈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화를 복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본문 13절에서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라 기록하고 있다.
유다는 영적 무지로 포로가 되고, 기근과 갈증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습관이 되어 인생을 변화시키는 인격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아는 지식에서 출발한다.
지식적으로 알아야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야 행동을 하고, 행동을 계속함으로써 습관이 되고, 이것이 인격이 되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따라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95년 10월 신앙생활을 처음 했을 때, 처음부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성경에 관심이 많았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여, 개천절 다음 날인 10월 4일부터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신앙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새벽기도를 가서, 성경본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여 하루 몇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직장선교모임에 출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ccc교재에 대한 연구는 기본이고, 새벽기도에서 강해하고 있는 책별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서서히 쌓여갔다.
관련 성경에 대한 낱권으로 된 주석서를 구입하고, 또 좋다고 하는 주석전집을 두 질이나 구입하면서 참으로 남다른 열심으로 성경을 공부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성경지식을 많이 안다고 하여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성경공부를 계속하며, 새벽기도를 다니면서도 지식적으로는 뭔가 알겠는데,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하자,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갈급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96년 3월경, 말씀을 들으면서 여전히 내가 내 마음의 왕좌에 내가 앉아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이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지면서 회개가 되고, 이러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하루 몇 시간씩 성경연구를 하고 묵상을 하지만, 당시 성경공부를 하면서 쌓았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
알지 못하고 생각할 수는 없다. 또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할 수 없으며, 행동하지 않으면서 습관을 만들고 인격이 변화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지식을 쌓자. 더 많은 지식을 쌓자.
나를 자랑하고 나를 드러내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더 많이 알아야 그 분이 어떤 분이시며,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또 나를 위해 하신 것이 무엇이며, 또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요해야 한다.
성경은 백성들이 사치와 허영을 추구하고, 방탕과 쾌락을 탐닉했던 것은 영적 무지 때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들의 영적 무지는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우신 일에 대해 악의적으로 무관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했던 민족이다. 그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으로 생활했으며, 가나안 전쟁을 치르면서 수도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받은 십계명을 삶의 기준으로 하여 살았고, 각종 제사와 예배를 통한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삶은 자손들에게 전승되었다. 지금 사치하고 방탕한 자들도 다 그 조상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왔던 자들이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머리로는 알지만 애써 회피하고, 그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본다.
하나님 알게 되면,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삶의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쌓여갈 때, 자연히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며,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을 언제나 생각하게 되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게 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지구의 종말을 다룬 아마겟돈이나 딥임펙트 등의 영화를 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여, 사치하고 방탕하여 천 년을 살 것같이 사는 유다 백성들을 보면서, 늘 깨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마음으로 깊이 그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어제는 시간이 있어 어느 목사님이 설교한 사도행전의 바울과 실라와 관련된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절망가운데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라고 묵상을 하였는데, 바울과 실라에 대한 설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언제든지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유다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안다.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으면서도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지 못해 세상에서 살았었던 나였기 때문에 또 언제 이런 미친 짓을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말씀을 붙잡고 산다. 하루 몇 시간씩 이렇게 살지 않으면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할 지, 또 무슨 나쁜 행동을 할 지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말씀에 내 목숨을 건다.
신앙은 목숨 걸고 해야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것 같다.
대충 하고, 이거 아니면 거저 하고, 이렇게 양다리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절대 만나주시지 않는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만 하나님께서는 새 힘을 주시고, 붙잡아 주시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축복을 주신다. 이것이 비밀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없이 어떻게 이렇게 힘든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어제 마눌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신앙의 길이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 정말 힘들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좁은 길이다.
그래서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허다한 무리가 있었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순교까지 할 수 있었던 자들은 열두 제자(가롯 유다 제외)뿐이었다. 이 들을 통해 온 세계가 복음을 듣고 나에게 까지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었다.
하루 하루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감정적으로 경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요해 지고, 그래서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싶다.
3.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여해 졌다면 그 다음은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 모두는 동시에 경험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각각 경험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 화있을찐저라고 말씀하시는 대상들을 보면,
대담하고 뻔뻔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
도덕을 파괴하고, 가치 전도(顚倒)에 앞장서는 자들,
자기 자신을 지혜자라고 자처하는 자들,
그리고 술에 젖은 불의한 재판관들이다.
이들을 가르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들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처음 믿음생활을 하면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지만,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지 못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화가 나에게 임한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임한 화에 대해 남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한다고 예전의 삶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빠져 술에 취하고 쾌락에 취한다고 행복을 찾을 수도 없다.
나 또한 이것 저것 다 해봤으니 지금 하는 이 수고가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님을 본다.
하지만, 이 재앙을 축복으로 바꾸는 묘수가 있으니, 재앙을 구원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인식이다.
이 인식의 전환을 통해 다시 나를 바로 세우는 출발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믿음을 경주를 다시 할 수가 있다.
성경은 신앙생활이 쉬운 길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좁은 길이 라고 하며, 믿음의 경주라고 한다.
바울 사도는 운동장에서 상 받기 위해 달음질 하는 자와 같이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 수 없으며, 재앙을 받는 자가 복을 받는 자로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하게 믿음의 경주를 함에 있어 함께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12:1, 2)
허다한 증인들, 그러니까 믿음의 경주를 다 하고 천국에 간 아브라함, 다윗, 바울, 실라, 폴리갑, 주기철, 이런 믿음의 선조들이 이 믿음의 경기장에 둘러 앉아, 나의 이 믿음의 경주를 잘 하도록 박수 치며 격려하며 이겨내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홀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의 경기장에서 응원하고 격려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셔서 내 길을 도우시며 인도하고 계신다.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화되지 않는다.
또 재앙이 하루 아침에 축복으로 변화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믿음의 우군들이 이렇게 격려하며 응원하고 있는데,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고 계신데, 이 믿음의 경주는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제 이 길을 선택했고, 상을 받기 위해 최선으로 경주하는 경주자 되어 경주를 하고 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 동족들에게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을 알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 또한 이 길을 걸어 가고 싶다.
믿음에의 견고함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기도의 골방, 말씀의 골방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고, 삶의 현장에서 지식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갈등하며, 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요해 질 때, 내 마음 속에 끼어 있던 불신의 구름들이 점점 옅어지면서, 견고한 믿음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요해지며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이 믿음의 경주가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좁은 길이며, 고독한 길이며 외로운 길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결코 외롭지 않은 길이라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허다한 증인들이 믿음의 경기장에서 나를 응원하며 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말씀에 큰 위로와 도전을 받습니다.
과거 어리석어 하나님을 배반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무가치한 삶을 살지 않도록 주님 붙잡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 착하고 충성스런 종아 잘하였도다 하는 말씀을 듣는 그런 지혜로운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힘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