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3 : 16-4:1
택하신 예루살렘에 경고하신 구절들.
수치. :
시온의 딸들은 하나님의 딸이다. 자신의 딸을 온 세상에 내놓으셨다.
자신의 딸이니 모르시는 것이 없다. 발찌를 찬 채 속맘이 드러난 그 표정, 교태가 흐르는
몸짓으로 향하는 곳을 모를 리가 없어 이제 상한 속을 드러내 역사에 나눔을 올리신 하나님.
정수리로 금족, 급기야 하체로 수치의 절정을 외침.
치장한 예루살렘. :
이제 두고 보시던 것들을 낱낱이 세어 벗기시는 . 예쁘다고 주신 적도 있는데 본질은 없어진 채
딸 속의 처참한 허탈을 감추는 거짓일 뿐. 벗겨내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초긴장된 수술 시간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장신구들. 아름다움을 좇는 마음도 주셨으나 저속한 것을 취하길 원치 않으신다.
내 안에 하나님 없는 치장은 시간 낭비.
그 결론. :
하나님이 사라질 순 없다. 끝은 없다. 결론은 하나의 과정이다.
오직 그 속에 아버지를 잃은 하나님 부재, 물질 추구, 주어진 환경으로 인한 교만, 죄 무지는 자신을 잃은 것.
배부르고 화려한 금은 보석으로 입고 달고 정분 난 허탈한 창기처럼 오늘도 그 맘은 우울과 슬픔에 잠겨
밤그림자를 달며 오겠지. 계속적으로 그녀가 지니고 즐기던 것으로 비웃음과 조롱을 받아야만 하지만 결정적인
수치는 죽음, 사람을 잃는 것이다. 더우기 7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제발 우리 걸로 먹고 살겠으니
나의 수치를 면케만 해달라.
생각. : 나의 육적 수치를 드러냄으로 나의 영적 수치를 가리울 수 있는 우리들 나눔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 감사할 일.
그간 참 많이도 나의 궁핍, 찌질한 궁핍과 실업의 #46468;. 분노와 악을 악쓰며 드러내고 슬픔과 실망도 올렸다.
시온을 딸이라 하시는 것은 여성으로 표현한 , 그것도 딸로 표현한 아버지의 심정을 알리고싶으신것.
사랑받는 막내 아들, 오직 많은 딸들 후 한 아들을 보신 기쁨으로 뿌듯하신 부모 맘을 알기에
4학년 사직공원 앞 보도위에 자전거가 뛰쳐와 덮칠 때 막내를 밀어 내고 깔린 오른 발 상처 1달을 치료해야했다.
아버지 눈빛은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셨다. 생전 멋지고 시원하고 예술을 알게 해주신 수준이 남다른 아버지셨지만
중학교 내 반 애들처럼 아버지가 머릴 빗겨주신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 불가였지만 그 사고 후 바쁘신 아침마다
나를 친히 등에 업고 동네 외과 진료를 가주셨다. 아빠 등에서 황송하기도 했지만 기분 좋았다. 아, 아버진
그걸 위기로 보신거고, 외과의사는 괜찮다고 곧 낫는 상처라고 웃으며 꼬집곤했다.
5학년 어느 아침엔 아마 체했을까 화장실 급히가고싶었으나 어지럽고 잠시 기절.
보건실에 도착하신 아버지의 그 눈빛은 이전의 기억보다 더 심각햇다. 엄마는 대충 입고 달려오신 차림.
나는 멀쩡했는데 아버진 표정이 굳고 다시 등에 업으시고. 그 따듯하고 진지한 온기로 편했다.
나는 옷공주엿다 . 언니들은 백화점에서 산 옷들로 세련미와 은근한 품격을 입고 방학에 만났지만 난 구호품 미제를
혼자 뒤져 입고 코디햇다. 그걸 다~ 풀어 남김없이 고아에게 줬어야하는 걸 모르고 엄마가 서울가고 안 계신 주일
아침이면 그렇게 찾고 맞추고 뒤져 예배시간 끝에 가서 앉는데 전도사님이 나중엔 흘겨보시고 꼭 못생기고 꼬질한
애들에게(동네 애들도 왔엇다.) 웃고 친절하고 나완 그리 말도 많이 안한듯. 그 시절 철없는 탐욕이 깊이 배어
지금 당장 내게 재물 풀면 기막힌 샤핑이나 헤어 #49406;에서의 한나절로 치장 잘해 내는 귀신이겠죠.
결혼 후 역시 신혼에 철없는 옷 사입기 제 분수에 넘는 걸 수 차 하다 남편이 이제 다스릴 즈음 브레#51084;.
그 후 보증 빵! 가족들이 보낸 고급 옷과 장신구로 여전히 명품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걸고다니는데 옷장이 부족.
그렇게 잘 입고 빠지잖는 차림으로 교횔 다니지만 여전한 그 보증빚 이자와 불안, 대책 안서는 그 긴 불안.
큐티 책 수년을 끼고 보지만 죄문제를 구체적으로 묻고 나눌 데는 없었고 혼자 하는 것이 큐티로 여겨지고
말해봤자 ......실상. 말씀이 없는 리더쉽, 말씀 없는 나눔은 가관였다. 리더쉽은 개인 취향으로 주로 전개되고
일과 사역을 인내한 것으로 인정된 리더쉽에 화기애애하게 순응하지않는 나의 성질머리와 내 죄 보기에
명중하지 못한 채 황야의 울프처럼 외로운 울음소리.
시온을 이 땅의 포로로 두지않고 벗기고 벗겨 수치를 알고 나의 죄를 알게 하시려고, 궤도를 이탈한
예루살렘이 찾아야 할 레일은 말씀이고 하나님이심을 , 그리고 내 죄 보기, 내 안의 악이 목 베여야하는 긴 시간의
기근과 낮추심이 옳으심을 인정하며 함께 듣고 함께 나누는 진정한 지체들을 주심을
6월에 감사하고, 짜증내는 남편으로 아직도 징허게 죽지않은 나를 보며 8월 폭염처럼 죽어질 것을 바라고
9월엔 목사님 눈물 흘리신 그 아내가 돌아오고 제 남편이 다시 큐틴을 보고 , 개학할 우리 목장을 기다립니다.
할렐루야.